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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經國風(시경국풍) 周南(주남) 關雎(관저) <1>물수리가 우네
우현 띵호와
2023. 2. 4. 00:15
詩經國風(시경국풍) 周南(주남) 關雎(관저) <1>물수리가 우네
關關雎鳩,(관관저구) : 끼룩끼룩 물수리는
在河之洲.(재하지주) : 황하의 섬에서 우네
窈窕淑女,(요조숙녀) : 요조숙녀는
君子好逑.(군자호구) : 군자의 좋은 짝이네
參差荇菜,(삼치행채) : 올망졸망 마름풀을
左右流之.(좌우류지) : 이리저리 헤치며 찾네
窈窕淑女,(요조숙녀) : 요조숙녀를
寤寐求之.(오매구지) : 자나깨나 구하네
求之不得,(구지불득) : 구해도 찾지 못해
寤寐思服.(오매사복) : 자나깨나 생각하네
悠哉悠哉,(유재유재) : 생각하고 생각하니
輾轉反側.(전전반측) : 잠 못 자며 뒤척이네
參差荇菜,(삼치행채) : 올망졸망 마름풀을
左右采之.(좌우채지) : 이리저리 뜯어보네
窈窕淑女,(요조숙녀) : 요조숙녀를
琴瑟友之.(금슬우지) : 금슬좋게 사귀려네
參差荇菜,(삼치행채) : 올망졸망 마름풀을
左右芼之.(좌우모지) : 여기저기 뜯어보네
窈窕淑女,(요조숙녀) : 요조숙녀와
鍾鼓樂之.(종고락지) : 풍악 울리며 즐기려네
제1장
關關雎鳩 在河之洲로다 窈窕淑女 君子好逑로다
○흥(興)이라. 관관(關關)은 자웅(雌雄)이
서로 응(應)하면서 화답(和答)하는 소리다.
저구(雎鳩)는 물새이니 일명(一名) 왕저라고도 한다.
형상(形象)이 오리와 같고, 지금(只今)은 강수와 회수 사이에 있어
태어날 때 부터 정(定)한 배필(配匹)이 있어 서로 난잡(亂雜)함이 없고,
늘 짝을 지어 서로 노닐고 서로 친압(親狎)함이 없다.
그러므로 모전에 이로써 지극(至極)하여 분별(分別)이 있다 했고,
열녀전(烈女傳)에서는 사람이 일찍이 그 승거함은 보았으되
외짝으로 처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 하니,
대개 그 성품(性品)이 그러하다.
하수는 북방(北方)에 흐르는 물을 통칭(通稱)한 이름이고,
주는 물 가운데 가히 거(居)할 만한 땅이라.
요조는 그윽하고 한가로운 뜻이라. 숙은 선함이라.
女는 시집가지 않음을 일컬음이니
대개 문왕(文王)의 비(妃)인 태사가 처자일 때를 가리켜서 말함이고,
군자(君子)는 곧 문왕을 가리킴이라.
호(好)는 또한 선(善)함이고, 구는 짝지음이라.
모전의 摯자는 至와 통하니 그 뜻이 깊고 지극함을 말함이라.
○흥(興)이라는 것은 먼저 다른 물건(物件)을 말하여서
읊을 바의 언사(言辭)를 일으킴이라.
주나라의 문왕(文王)이 날 때부터 성덕이 있고,
또한 성녀(聖女) 사씨(姒氏)를 얻어서 배필(配匹)을 삼으시니,
궁중(宮中)의 사람들이 그 처음 이름에 그 그윽하고 한가롭고
바르고 정숙(貞淑)한 덕(德)이 있음을 보았으므로
이 시(詩)를 지음이라.
저 끼룩끼룩하는 물오리들은 곧 서로 더불어 하수 위에서
화목(和睦)하게 울고 있거늘 이러한 요조숙녀(窈窕淑女)라면
어찌 군자(君子)의 좋은 배필이 아니랴!’ 하니,
그 서로 더불어 화락(和樂)하면서 공경(恭敬)함이
또한 물오리의 정(情)이 지극(至極)하면서 분별(分別)이
있는 것과 같음을 말함이라.
뒤에 무릇 흥을 말한 것은 그 문장(文章)의 뜻이 다 이와 같음을 이름이라.
한나라의 광형이 말하기를, “요조숙녀가 군자의 좋은 배필이라는 것은
능히 그 정숙함을 이루고, 그 지조(志操)를 바꾸지 아니하여
정욕(情慾)의 감정(感情)이 몸가짐 사이에 끼어듦이 없으며,
즐기는 사사로운 뜻이 움직이거나
가만히 있을 때에도 나타나지 않느니라.
저 그런 뒤에야 가히 지존의 짝이 되어 종묘(宗廟)의
주인(主人)이 될 수 있는 것이니,
이는 강기(綱紀)의 머리요 왕교(王敎)의 실마리이다.”라 하니
가히 시를 잘 설명(說明)한 것이다.
제2장
參差荇菜를 左右流之로다 窈窕淑女를 寤寐求之로다
求之不得이라 寤寐思服하니 悠哉悠哉라 輾轉反側하노라
○흥(興)이라. 참치(參差)는 장단이 가지런하지 않은 모양(模樣)이라.
행(行)은 접여니, 뿌리가 물 밑에서 나와 줄기는 비녀다리와 같고
위(位)는 푸르고 아래는 하얗고 잎사귀는 붉은보라이며,
둥글고 길이가 한 마디 남짓 되니 수면(水面)에 둥둥 떠 있음이라.
혹(或) 왼쪽으로 하고 혹 오른쪽으로 하는 것은
방소(訪蘇)가 없음을 말함이라.
유(油)는 물을 따라 흐름을 취(取)함이라.
혹 깨고 혹 자는 것은 때가 없음을 말함이라.
복(福)은 그리워함과 같음이라. 悠는 길음이라.
전(輾)이란 것은 전(轉)의 半이요, 전(轉)이란 것은 輾의 한바퀴이며,
반(反)이란 것은 輾이 지나친 것이요,
측(側)이란 것은 轉을 멈춤이니,
모두 누워도 자리가 편치 않다는 뜻이다.
○이 장(章)은 본래(本來) 그 얻지 못함을 말했으니,
저 들쭉날쭉한 순채는 마땅히 좌우(左右)로 방소 없이 흐르고,
이 요조숙녀(窈窕淑女)는 마땅히 잊지 못하고 구(求)할 것이라.
대개(大槪) 이런 사람과 이런 덕(德)은 세상(世上)에
항상(恒常) 있지 아니하니, 구(救)하다 얻지 못하면
이로써 군자(君子)를 짝하여 그 내치(內治)의 아름다움을 이룰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그 근심하고 생각하는 깊음이 능히 스스로
그치지 않음이 이와 같은 데에 이르느니라.
제3장
參差荇菜를 左右采之로다 窈窕淑女를 琴瑟友之로다
參差荇菜를 左右芼之로다 窈窕淑女를 鍾鼓樂之로다
○흥(興)이라. 채는 취해서 가리는 것이고,
모는 익혀서 제사(祭祀) 올림이라.
금(琴)은 다섯 줄이며, 혹 일곱 줄이고, 슬(瑟)은 25줄이니
다 사속(絲續)이니 악기(樂器)의 작은 것이라.
우는 친애(親愛)하는 뜻이라. 종(鐘)은 금속(金屬)이고,
고는 혁(革)속이니 악기의 큰 것이라.
즐겁다는 것은 화평(和平)의 지극(至極)함이라.
○이 장(章)은 문득 지금(只今)에야 비로소 얻었음을 말했으니,
저 들쭉날쭉 순채나물을 이미 얻었다면 마땅히 가려서 삶아야 할 것이고,
이 요조숙녀(窈窕淑女)를 이미 얻었다면
마땅히 친애하여 즐거워해야 할 것이라.
대개(大槪) 이런 사람과 이런 덕(德)은 세상(世上)에
항상(恒常) 있지 아니하니, 다행(多幸)히 얻었다면
군자(君子)를 짝하여 내치(內治)를 이루리라.
그러므로 그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높이고 받드는 뜻이
스스로 그만둘 수 없음이 또한 이와 같음이라
關雎三章이라 一章은 四句요 二章은 章八句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관저(關雎)는 즐거우면서도 지나치지 않고,
슬프되 상(傷)해 하지 않는다.”라 하시니,
내가 생각해 보니 이 말씀은 이 시를 지은 자가
그 선정(性情)의 바름과 성기(聲氣)의 화함을 얻었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대개 덕이 저구(雎鳩)와 같아서 두터우면서도 분별이 있다면
후비의 성정의 바름을 진실로 가히 그 일단을 볼 수 있고,
오매반측(寤寐反側)하고 금슬종고(琴瑟鐘鼓)를 연주하여
그 애락(哀樂)을 극진히하여 그 법칙을 넘지 않는다면
시인의 성정의 바름을 또한 가히 그 전체로써 볼 수 있는 것이다.
유독 그 성기(聲氣)의 화함을 들을 수 있는 자가 없는 것이
비록 한탄스러운 것 같으나, 학자가 우선 그 말에 나아가서
그 이치를 완색하여 마음을 기른다면
또한 가히 學詩의 근본을 얻을 것이다.
○ 광형(匡衡)이 말하기를,
“배필을 정할 때는 생민하는 처음이요
만복의 근원이니 혼인의 예가 바른 뒤에야 품물이 이루어져서
천명(天命)이 온전해 지는 것이다.
공자께서 시를 논하실 적에 관저(關雎)로써 시작을 삼으시니,
태상(太上)은 백성의 부모이므로 후부인(后夫人)의 행실이
천지에 짝할 수 없다면 신령(神靈)의 통서를 받들어
만물의 마땅함을 다스릴 수가 없는 것이다.
상세(上世) 이후로부터 삼대의 흥폐(興廢)가
이것에 말미암지 않은 것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