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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 / 문정희

우현 띵호와 2023. 2. 7. 21:44

치마 / 문정희  

벌써 남자들은 그곳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음을 안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기는 있다  
 
가만두면 사라지는 달을 감추고
뜨겁게 불어오는 회오리 같은 것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 든 신전에
어쩌면 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흥망의 비밀이 궁금하여
남자들은 평생 신전 주위를
맴도는 관광객이다  
 
굳이 아니라면 신의 후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자꾸 족보를 확인하고
후계자를 만들려고 애쓴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다
여자들이 감춘 바다가 있을지도 모른다  
 
참혹하게 아름다운 갯벌이 있고
꿈꾸는 조개들이 살고 있는 바다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죽는
허무한 동굴?  
 
놀라운 것은
그 힘은 벗었을 때
더욱 눈부시다는 것이다 
 
팬티 / 임 보  
그렇구나
여자들의 치마 속에 감춰진
대리석 기둥의 그 은밀한 신전,
남자들은 황홀한 밀교의 광신도들처럼
그 주변을 맴돌며 한 평생 참배의
기회를 엿본다.  
 
여자들이 가꾸는 풍요한 갯벌의 궁전,
그 남성 금지구역에 함부로 들어갔다
붙들리면 옷이 다 벗겨진 채 무릎이
꿇려 천 번의 경배를 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런 곤욕이 무슨 소용이리
때가 되면 목숨을 걸고
모천으로 기어오르는 연어들처럼  
 
남자들도 그들이 태어났던 모천의
성지를 찾아 때가 되면 밤마다 깃발을
세우고 순교를 꿈꾼다.  
 
그러나, 여자들이여, 상상해 보라  
참배객이 끊긴, 닫힌 신전의 문은
얼마나 적막한가?  
 
그 깊고도 오묘한 문을 여는
신비의 열쇠를 남자들이 지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보라
그 소중한 열쇠를 혹 잃어버릴까 봐
단단히 감싸고 있는 저 탱탱한
남자들의 팬티를!  
 
이 두시에서 공통으로 쓰여지는 시어가 있다.
그것은 <대리석 기둥> <신전> <갯벌>등이 그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문정희 시인의 시에서 나오는 시어들을

임보 시인도 그 시어를 차용해서 사용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시어를 표절 했다고 하지 않는다.

왜? 이는 표절이 아니고 패러디이기 때문이다  
 
어떤 시어를 놓고 표절 여부를 따질 때는

그 시의 시상과 전해지는 메시지를 놓고 판단 해야지

단순히 시어와 단어 하나만을가지고 문제 삼지 말라는 뜻으로

패러디에대한 개념을 소개한다  
 
2015년 모신문사 신춘문예 당선작이 표절 시비로

당선이 취소 된 시를 보았다

그런데 그 시와 표절 당했다는 시를 보면

시어 그 자체가 하나도 같은 시어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표절이라 하는 것은 시어의 도용이 아니라

표절시와 원작시의 이미지와 메시지가 너무나 일치 하기에

표절로 결론지어진 것이다  
 
이러한 점을 알고 시를 쓰거나

감상에 참고 하시기 바라면서 본 소고를 마친다.  
 
다음은 문정희 시인의 <남편>시를 패러디 한

나의 졸시 <아내>를 올려 함께 감상해 본다.  
 
아내  /  이근모  
엄마도 아니고  누님도 아닌
엄마와 누나 사이의 촌수쯤 되는 여자
바깥에서 저지른 괴로운 일로
제일 먼저 의논 하고 싶다가도
바가지 깨지는 소리 두려워
그래 나만의 고통으로 감내하자 작심하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도 먼 여자
바가지가 집안을 굴러다닐 때에는
이 무슨 웬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내가 뿌린 씨앗을 튼튼하게 키울 여자는
이 여자 밖에 없을 것 같아
깊은 한숨 몰아 쉬고 일터로 향한다.
그러고 보니 일터에서 돌아오면
나와  함께 가장 많이 잠을 자는 여자
바가지 소리  감상법을 악보 없이 가르쳐준 여자
늙어갈수록 남자가 되어 나를 여자로 만드는 여자
얼마나 놀라운 가르침인가
아내라는 역할이.  
 
- 문정희 시인의 시 "남편"을 패러디 하다.  
남편 /  문정희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구 물어보구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되지 하고
돌아누워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밥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은 남자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
얼마나 놀라운 실수인가!  
 
다음은 풍자나 희극적인 요소가 아닌 

개념 설명 후자에서 예를 들어가면서

언급한 개념의 패러디시를 감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