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큰 바다는 가느다란 줄기를 거부하지 않는다

우현 띵호와 2023. 12. 13. 20:31

큰 바다는 가느다란 줄기를 거부하지 않는다 

진시황제의 통일위업을 총괄했던 승상 이사(李斯)는

한 때 자신을 포함한 다른 나라에서 온 객경(客卿)들이

추방위기에 몰리자 ‘간축객서(諫逐客書)’를 올려

위기를 모면한다.

그는 진나라 출신이 아니었기에 토착세력의 모함과

견제를 받아가면서도 진나라 통일에 큰 역할을 했다.

내용인즉,

‘태산(泰山)은 본디 한 줌의 흙도 마다하지 않았으므로

그 높이를 이룰 수 있으며,

하해(河海)는 작은 물줄기라도 가리지 않았으므로

그 깊음을 이룰 수 있다.’이다.

이사는 외국인이라고 차별해서는 안 되며 

다른 나라 민족도 받아들여야 큰 나라가 될 수 있다고

건의 한 것이다. 

진시황제는 이사의 간청을 받아들여 다양한 

인재를 부린 결과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으로서 

황제가 되었다. 

다른 것은 다양한 것 가운데 하나일 뿐 잘못되거나 

못 난 것이 아니다. 

하해는 모든 물줄기를 다 받아들여 드넓은 바다가 된 것처럼,

나와 다른 것과 다양한 것을 두루 감싸 안아야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관점에서 상대를 평가한다. 

이런 상황에서 다름과 틀림이라는 이분법이 규정되어

갈등은 필연이다.

예로부터 안과 밖의 구별이 심해서 우리라는

울타리 밖에 있는 것은 이질적인 것으로 규정해왔다.

그렇다 보니 나와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틀렸거나 못 났다고 여긴다.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이는 순혈주의에 집착하고

안과 밖을 나누며 다름을 부정적으로 구분하는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은 다양성을 요구하는

조직사회에서 적응하기 어렵다. 

우리의 신체에는 눈이나 팔다리, 또는 귀처럼 

두 개로 이루어져 있는 것들이 많다. 

두 개를 비교했을 때 길거나 짧고, 크거나 작다. 

이런 차이를 틀렸거나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 

한 부모에서 나온 형제나 자매도 생김새나 성격이 

똑 같은 경우는 드물다.

누가 좋은 것이고 누가 나쁜 것인가?

나와 너는 같을 수 없다. 다만 다를 뿐이다.

같지 않은 것을 잘못되었다고 재단하는 것은

자기중심적 집착이다.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볼 때

 그 사람의 시각과 관점에 따라서 그 대상이 

다르게 느껴진다. 어느 그림을 아래쪽을 보면 

묘하게도 네 개로 보이고 위쪽을 보면 세 개로 보인다. 

그래서 같은 걸 두고 "이것이 세 개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말도 맞는 것이고, 

"아니다. 네 개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말도 

틀린 말이 아니다. 

현실이라는 것은 이렇게 복잡하고 다양해서 

하나의 관점만이 옳다고 주장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우리는 언제나 모든 걸 자신의 입장과 관점에서 

얕보는 경향이 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길을 물으면,

"저쪽 코너에 호프집이 있어요. 거기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막걸리집이 보이구요.

거기서 300미터 직진하면 됩니다."

반면 목사님에게 길을 물으면,

"저기 교회 보이시죠? 그 교회를 지나서 100미터 가면

2층에 다시 교회가 보입니다.

그 교회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됩니다."

 

또 사람들에게 '+'가 그려진 카드를 보여주면

수학자는 '덧셈'이라 하고,

산부인과 의사는 '배꼽'이라고 한다.

목사님은 '십자가'라고 하고,

교통경찰은 '사거리'라고 하며,

간호사는 '적십자'라 하고

약사는 '녹십자'라고 대답한다.

우리는 자기중심적 편향과 진단을 배제하고 

상대의 입장과 관점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공감 지성에 익숙해져야 한다. 

여기서 '+'를 십자가라고 부르는 것만이 옳다고 

주장한다면 그건 잘못된 것 아니겠나? 

화이부동(和而不同). 다름을 인정하고 

같음을 강요하지 말라는 뜻이다. 

구존동이(求存同異). 서로 같은 것을 공유하되 

다른 것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상대를 수용하고 이해한다고 해서 손해 보는 건 없다. 

무언가 배우고 상대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다를 뿐이다. 

그 누구도 틀리거나 못난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