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가 힘써야 할 세 가지-仁, 知(智), 勇
자왈 군자도자삼에 아무능언오니 인자불우하고
지자불혹하고 용자불구니라 자공왈 부자자도야삿다.
(子曰 君子道者三 我無能焉 仁者不憂 知者不惑
勇者不懼 子貢曰 夫子自道也) -논어, 헌문 제30장-
공자가 말했다. "군자가 실천해야 할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
나는 제대로 하는 게 없다.
인자한 사람은 근심하지 않고,
지혜로운 사람은 미혹되지 않으며,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공자는 군자로 힘써야 할 세 가지에 仁 知(智) 勇이 있다고 말하고
스스로에게는 그런 점이 부족하다고 自責(자책)했다.
공자의 이 말에 대해 子貢(자공)은
“이것은 부자께서 스스로를 말씀하신 것이다”라고 해서
공자야말로 이 세 가지를 갖추고 계신 분이라고 덧붙였다.
단, 공자 자신은 성인으로 자처하지 않았다.
자신을 성인으로 여기면서 겉으로만 겸손한 척하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자책의 말씀이 남에 대한 격려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이 구절의 중심 내용은 자한편에 이미 등장했다.
여기서는 순서가 조금 다르다.
자절사(子絶四), 무의(毋意), 무필(毋必), 무고(毋固), 무아(毋我).
-(자한편 4) 공자께서는 네 가지가 없으셨으니,
억측하지 않고, 꼭 하겠다는 것이 없으셨으며,
고집이 없으셨으며, 아집을 부리지 않았다.
여기서는 없을 무가 아니고 말무인 毋를 사용했다.
말무의 유래는 태평성대였던 우임금시대에는
우임금 앞에서는 말을 할 필요가 없어
말이 필요없다는 말무가 나왔다.
억측, 기필고 하겠다는 의지, 고집, 아집이 생기는 이유는
이기고 싶고 잘났다고 자랑하고 싶어서다.
사람의 본성이다. 이길려고 하니 근심이 생기는 법이다.
‘중용’에서 三達德(삼달덕)으로 제시한 知 仁 勇을 부연하듯이 설명했다.
삼달덕이란 천하에 통하는 보편적인 세 가지 덕목이라는 말이다.
여기서는 순서가 조금 다르다.
이 구절에서는 인자와 지자와 용자라는 세 가지 모습을
군자의 도라는 하나로 묶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군자는 인자와 지자와 용자의 세 가지 덕목을 모두 갖춘
종합적인 완성된 인간이라고 공자가 생각하였다는 증거일 터이다.
이 구절에서 공자가 자신이 이러한 세 가지 특정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이것은 이미 군자에 올라선 공자가 겸양의 뜻으로 말한 것일 수도 있다.
공자의 말이 정말로 공자가 스스로 아직 세 가지 모습을 갖추지 못한
미숙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한 말일수도 있다.
그렇게 본다면 뒤에 따라오는 자공의 평어는,
공자 스스로 평을 하여 자신이 가려는 길과,
자신이 그 길의 어디에 있는지를 이야기한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다는 부연설명이다.
(자공이 공자가 자신을 낮춰 말한 것이라 보는 입장은,
자칫하면 공자가 성인이라는 도식에 빠질 위험이 있다. )
술이편에서 공자의 말에 공서화가 옆에서 한 마디를 거드는 식으로
부연설명을 하는 것과 약간 형식적으로 비슷하다.
無能焉은 셋 가운데 잘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말이니 謙辭(겸사)다.
仁者不憂는 어진 사람은 안이 병들어 있지 않기에 근심하지 않는다.
知者不惑은 지혜로운 사람은 사리에 통달해 있으므로 헷갈리지 않는다.
勇者不懼는 義理(의리)에 충실한 까닭에 두려워하지 않는다.
尹焞(윤돈)은 그 차이에 의미를 부여해서,
덕을 이룸은 仁을 우선으로 삼고 배움을 진전함은
智를 우선으로 삼으므로 공자가 달리 말했다고 보았다.
하지만 순서의 차이에 穿鑿(천착)할 필요는 없다.
공자는 三達德을 갖춘 사람을 군자의 이상형으로 보았다.
인애의 마음자세,
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
과감한 실천을 갖춘 인간형은
현대의 우리도 추구해야 할 이상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