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청즉명(兼聽則明)
여러 의견을 들으면 현명해진다.
[겸할 겸(八/8) 들을 청(耳/16) 곧 즉(卩/7) 밝을 명(日/4)]
잘 되라고 충고해주는 말을 따르는 것은 어렵다.
분명 옳은 말인데도 귀에 그슬린다.
良藥苦口(양약고구)를 소개할 때
대구로 쓴 忠言逆耳(충언역이) 그대로다.
더군다나 여러 번 되풀이되면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며 외면한다.
보통 사람도 이러한데 지엄한 황제는 더욱 신하의 간언을
지겨워했을 것이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으면(兼聽) 자연스럽게 판단을 할 수 있어
현명해진다(則明)는 이 말은 魏徵(위징)의 충언이었다.
唐(당)나라 太宗(태종)은 지겹도록 들은 말을 저버리지 않고
잘 지켜 貞觀(정관)의 治(치)를 이룰 수 있었다.
이 말 바로 뒤에 따르는 偏信則暗(편신즉암)과 같이 쓰기도 한다.
일부에 치우쳐 믿으면 어리석어진다는 뜻이다.
위징(580∼643)이라 하면 당 초기의 공신이자 학자로
재상을 지냈지만 간의대부로서
왕에 직간을 한 것으로 더 유명하다.
처음 高祖(고조)의 맏아들인 李建成(이건성)의 측근이었다가
아우 世民(세민)이 세력다툼에서 이기자 부름을 받았다.
태종이 된 세민이 그의 능력을 눈여겨보고
사면한 뒤 발탁한 것이다.
위징은 이런 줄을 잘못 선 출신상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굴하지 않고 면전에서 강직하게 건의를 했다.
태종이 얼굴을 붉히거나 화를 내어도 위축되지 않고
쓴 소리를 쏟아내 주위의 신하들이 조마조마할 정도였다.
태종이 제위에 오른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위징에게
왕이 어떻게 해야 밝아지고 어떻게 하면 어리석어지는지 물었다.
‘군주가 현명해지는 것은 여러 방면의 의견을 두루 듣기 때문이며,
아둔해지는 것은 한 쪽으로 치우쳐
몇 사람만의 의견을 믿기 때문입니다
(兼聽則明 偏信則暗/ 겸청즉명 편신즉암).’
위징은 이어서 옛날 堯舜(요순)이 훌륭하게 된 것은
귀가 밝았기에 간신을 구별했고,
秦(진)의 胡亥(호해)나 隋(수)나라 煬帝(양제, 煬은 녹일 양)는
각각 趙高(조고)와 虞世基(우세기)만 믿다가
나라를 그르쳤다고 덧붙였다.
司馬光(사마광)이 편찬한 ‘資治通鑑(자치통감)’에 실린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