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홍범도는 누구인가

우현 띵호와 2023. 9. 2. 20:52

홍범도는 누구인가

홍범도는 1962년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의해

독립운동 공로를 인정받아 서훈된 바 있다.

하지만 당시는 ‘홍범도 관련 논란’이 한국에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았을 때였다. 

홍범도는 2018년 문재인 정권에 의해

건국훈장 1등급인 대통령장에 다시 추서됐다.

이때는 ‘홍범도 관련 논란’이 한국에도

상당 정도로 알려져 있는 때였다.

논란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자유시 참변 관련

둘째 소련공산당 가입 문제이다. 

문재인 정권은 이 같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 서훈을 재차 행하며 2018년 3월 1일

육사에 흉상까지 세웠다.

홍범도를 옹호하는 측은 당시 항일 독립운동을 위해

소련의 지원을 받은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선택과 행위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 책임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피해갈 수 없다. 

자유시 참변 

자유시 참변은 소련공산당의 지시와 지원을 따르는

고려혁명군이 소련과 함께 하길 거부하는 대한의용군 등을

강제로 통합 장악하려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이때 홍범도부대는 고려혁명군을 택했다.

그리고 대한의용군 등은 소련군과 고려혁명군에 의해

진압되고 학살되었다. 

1921년 6월28일 장갑차 2대에 기관총 30여문으로 중무장한

소련의 적군(赤軍) 29연대와 코사크 기병 600여명이

대한의용군 등의 주둔지를 무차별 공격했다.

독립군은 1시간여 만에 전사자 272명, 익사자 31명,

행방불명 250여명, 포로 917명 등 피해를 입었다.

대한의용군이 사방으로 흩어짐에 따라 독립군의

투쟁 역량이 크게 훼손됐다. 이 사건이 자유시 참변이다.  

일각에서는 자유시 참변에 홍범도가 적극 가담한 것처럼

지목하는 것은 모함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홍범도 부대가 소련공산당 노선을 따르는

고려혁명군과 소련 적군 측에 가담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어서 홍범도는 자유시 참변 직후 대한의용군 등의

잔병(殘兵)을 처리하는 재판에 위원으로 참여했다.

이 또한 역사적 사실이다. 

자유시 참변 후 홍범도의 행적

자유시 참변 다음해인 1922년 홍범도는 모스크바에서

레닌으로부터 금화 100루블과 군복 한 벌 그리고

‘홍범도’라는 이름이 새겨진 권총을 선물 받았다.

자신의 휘하 병력 300여명을 소련 적군에 편입시키고

본인도 소련군 제5군단 민족여단 대위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홍범도는 1927년에는 소련공산당에도 정식 입당했다.

소련 국적도 취득했다. 

자유시 참변 이후 홍범도는 독립군으로서의 활동은 없었다.

연해주에서 협동농장을 조직해 운영했을 뿐이다.

그러다 1937년 스탈린에 의한 한인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하게 됐다.

홍범도는 그에 순순히 따랐다.

자유시 참변 이후 홍범도의 삶은 소련공산당원이자

소련인으로서의 삶이었다. 

홍범도는 광복군과 아무 관계가 없다

문재인은 육사에서 홍범도 흉상을 철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자

“광복군이 우리 국군의 뿌리임을 부정” 운운의 말을 했다.

사실에 대한 왜곡이다. 무식일 수도 있다.

홍범도는 광복군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광복군(光復軍)은 1940년 9월 17일 중화민국 중경(重慶)에서

조직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휘를 받는 군사조직이다.

1939년 1월 창립된 한국독립당 당군(黨軍)과

기타 독립군 및, 지청천, 이범석 등이 이끌고 온

만주 독립군과 연합하여 1940년 9월 17일 성립식을 갖고 결성되었다.

광복군의 실질적 통솔인은 지청천과 그의 참모장인 이범석이었다.

결성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통수권을 인수하였다.

이후 미국 CIA의 전신인 OSS와 함께 국내 진공작전을

준비하다가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였으며,

1946년 5월 말에 해산하였다.

이 같은 구체적 사실이 보여주듯 광복군은 공산주의와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념적으로도 조직적으로도 전혀 관계가 없었다.

소련의 카자흐스탄에 거주하던 소련공산당원이자

소련 사람인 홍범도와 광복군은 당연히 아무 관계가 없다.

고려공산당의 이동휘가 광복군과 관계가 없는 것과 같은 이유다.

동북항일연군의 김일성이 광복군과 무관한 것과도 마찬가지다

육사에 ‘홍범도 흉상’은 어울리지 않는다.

홍범도가 생애 초반에 항일 무장 독립투쟁을 한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그 공로에도 불구하고 자유시 참변 당시

희생당한 독립군의 반대편을 선택했다.

자유시 참변과 관련한 그의 책임의 정도를

어떻게 평가하든 이것은 객관적 사실이다.

그리고 홍범도는 나중에 자유시 참변에

직접적 책임이 있는 소련공산당의 당원이자

적군의 대위가 되었다.

그런데 홍범도가 선택한 나라인 소련은 6.25전쟁 때

김일성을 앞세워 대한민국을 침공한 배후의 주동세력이었다. 

대한민국의 육군사관학교는 자유민주주의 나라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우리 육군의 장교를 육성하는 군 교육기관이다.

이 같은 육군사관학교에서 홍범도와 같은 인물을

추앙하는 흉상을 세워 놓는 것은 옳지 않다.

이것은 홍범도의 독립운동에 대한 공적을 균형 있게

평가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