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국민의 요구 : 5.18이 왜 민주화운동인지 이유를 대라

우현 띵호와 2023. 12. 21. 16:11

국민의 요구 : 5.18이 왜 민주화운동인지 이유를 대라 

전라도의 주장
전라도는 5.18이 왜 민주화운동인지 이렇게 밝혔다.
“전두환이 12.12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독재를 하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기 위해 광주시민이 분연히 일어나

전두환의 독재에 항거하여 이 땅에 민주질서를

확립해 주었기 때문에 민주화운동이다. 
누가 지휘하지 않았는데도 사회 저변의 

‘기층 인구’들이 앞장선 운동이다.”  
 
여기에서 ‘기층 인구’라는 말은 구두닦이, 껌팔이, 

식당보이, 넝마주이, 공원, 철공, 목공, 자개공, 

실업자 등을 의미한다. 

 

이어서 “5.18민주화운동은 1215년 영국의

마그나카르타나 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과

같은 정도의 민주화운동으로 전 인류 민주주의

발전의 3대 이정표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대한민국 국민은 이를 자손만대에까지 기리고, 

이 운동에 앞장선 유공자들에게 금전적,

사회적 예우를 갖춰야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내용은 모든 5.18관련 판결문에

일관되고 줄기차게 주장돼있다. 
 
전라도 주장이 사실인가?
(1)12.12는 쿠데타였는가?
12.12는 1979년 12월12일 발생한 사법 처리

사건이었지 쿠데타가 아니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쿠데타는 군대를 동원해

정권을 단번에 잡아 통치자로 등장한 것이었다. 

이 세상의 모든 쿠데타 역시 기존의 정권을 타도하고

쿠데타 지휘자가 곧바로 국가를 통치했다. 
그리고 모든 언론은 검열되었다. 

 

하지만 12월12일에는 정승화라는 한 사람만

 ‘김재규 내란음모를 방조했다’는 혐의로

체포 구속했을 뿐,

 모든 헌정질서는 최규하 권한대행을 중심으로

정상적으로 유지돼있었다. 언론검열도 없었다. 
 
1979년 10월26일, 오후 7:40분, 김재규는

궁정동 안가에서 저녁식사를 하시던 박 대통령을

권총으로 쏘아 시해했다. 

시해 현장 바로 옆집에서 대기하고 있던 정승화는

김재규가 범인인 줄 알고 있으면서도 끝까지 함구한 후

 10월 27일 오전4시에 계엄사령관으로 등장했다. 
이후 12.12까지 그는 47일 동안 김재규를 옹호하고

정국장악을 시도하고, 

본인에 대한 수사를 강압적으로 방해했다. 
이런 범법행위에 대해 전두환은 당시 국가 최고의

수사책임자로서 그를 체포할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이 12.12사건이었다.
 
이때 전두환은 2성장군으로 합동수사본부장

즉 계엄시의 검찰총장에 불과했다. 

기라성 같은 3성장군들과 4성장군들이

전두환의 상관들이었고, 

그 위에는 최규하 대통령이 있었다. 

전두환은 당시 그 누구도 감히 나설수 없는 분위기에서

정의를 세우는 데 최일선 담당관으로 역할했다. 
모두가 눈치만 보고 있을 때 계엄검찰총장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반국가행위자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전두환의 과단성있는 업무수행에 많은

박수와 격려가 쇄도했다.

12.12로부터 9개월이 지난 1980.9.1. 

그는 그 조차 예상하지 못했을만큼 전 후배와

원로들의 대대적인 추대에 의해 대통령이 되었다.  
 
전라도의 주장대로 1979년 12월12일 그가

쿠데타를 일으켰으면 왜 정승화 한 사람만 체포했겠는가? 
그는 정승화를 체포하기 위해

최규하에게 재가를 받으러 갔다. 
재가를 금방 해줄 줄 알고 갔지만 최규하는

국방장관 노재현이 결재한 후에야 재가를 하겠다고

시간을 끌고, 노재현은 총소리에 이리저리 도망다니다

이튿날 새벽4시, 국방부 계단 밑에 숨어있는 것을

병사가 발견하는 추태를 보였다. 

이렇게 재가가 지연되는 사이에 정승화의 꼬붕인

장태완 수경사령관이 술에 만취한 상태에서

술주정을 부려 헌병이 체포했다.  
 
한마디로 12.12는 추태사건이었다.
1번 추태는 정승화의 체포거부 난동이었고,
2번 추태는 장태완의 술주정이었고,
3번 추태는 국방장관 노재현의 숨박꼭질이었다. 
품위없는 똥별들의 추태쇼가 바로 12.12였던 것이다.
12.12의 군사난동은 수경사 헌병중령 신윤희가

술주정꾼 장태완 수경사령관을 체포하면서 막을 내렸다.  
 
전두환이 12.12 쿠데타를 일으켰다면,

바로 그날 최규하를 몰아냈어야 말이 된다. 

하지만 전두환은 만 8개월 이상 최규하를

대통령으로 깍듯이 모셨다. 
그리고 최규하는 국민들로부터 무능하고

걸림돌만 된다는 여론의 비난을 받으면서 

1980년 8월16일 스스로 물러났다. 
역사가 이러한데 1980년 5월18일 이전에

전두환이 무슨 정권을 잡고 독재를 했다는 말인가?  
 
이것이 바로 괴담이라는 것이다. 
청담동 술자리 괴담을 아직도 사실로 믿는

국민이 30% 이상이라 한다. 
군과 권력세계를 알지 못하는 순진한 국민을 향해

쏟아내는 괴담이 역사로 굳어지는 이 후진국적 현상이

언제까지 이어져야 하겠는가?
사실과 진상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