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밝힌 사랑이야기.
바보 같은 삶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어둠을 밝히는 한 줄기 빛이 된 삶.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을 ‘바보’라고 칭하면
어떤 기분이 드실가요?
아마도 기분이 매우 나쁘고,
자존심도 상하고, 불쾌하기까지 하실것입니다.
그런데, 평생 바보라는 소리를 듣고
살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바보 같은 삶이 오히려 성공한 삶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의사였지만 집 한 채 없이
평생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겸손한 삶을 사셨던
한분 의학박사님 이야기입니다.
그분이 바로 제가 오늘 이야기하려하는
"바보의사 장기려 박사(1911 - 1995)" 입니다.
“제가 밤에 뒷문을 열어 놓을 테니 어서 집으로 가세요.”
장기려 박사는 어느 생활이 어려운 사람이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 막막해 하고 있을 때 이를 눈치채고는
병원 뒷문으로 몰래 빠져나가게 해 주었습니다.
“이 환자에게는 닭 두 마리 값을 내주시오.
원장” 병이 나으려면 무엇보다 잘 먹어야 하는
환자에게 장기려 박사가 써준 처방전입니다.
서울대, 부산대 의대 교수, 부산 복음병원 원장을
지냈지만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에게는 방 한 칸 없었습니다.
자신의 소유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 나누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1947년, 김일성대학 의과 대학 교수 겸
부속 병원 외과과장으 로 부임할 때
주일에는 일할 수 없다는 조건으로 부임 했고,
환자를 수술 할 때는 항상 기도하고
수술을 시작했습니다.
월남 후인 1951년 5월부터 부산에서 창고를 빌려
간이 병원을 설립하고 피난민들과 전쟁 부상자들을
무료로 진료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복음병원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는 1968년 당시 100원 하던 담뱃 값만도 못한
월 보험료 60원에 뜻있는 사람들과
'‘청십자 의료보험 조합'’을 설립하여
1989년 전 국민에게 의료보험이 확대될 때까지
20만여명의 영세민 조합원에게
의료 혜택을 주었습니다.
국가보다 10년 앞선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의료보험이 었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그를 이렇게 불렀습니다.
"바보...!" 그는 “바보라는 말을 들으면
그 인생은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인생의 승리는 사랑하는 자에게 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일생을 철저히 청지기의 삶을 살았고,
주님만을 섬기며 겸손하게 살았습 니다.
그는 평생 가난했지만 다른 사람들을 부유하게 했고,
집 한 채 없었지만 사람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베풀었고, 뇌경 색으로 반신이
마비될 때까지 무의촌 진료를 다녔습니다.
그는 자신을 드러내기를 싫어 했고,
자신이 칭송 받는 것을 싫어했고,
오직 주님을 높이고 섬기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는 이웃과 나누며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아내에 대한 그의 극진한 사랑은 육체나,
환경을 초월한 영혼과 영원한 사랑이었습니다.
1950년 12월 평양의대병원 2층 수술실에서
그가 밤새워 가며 부상 당한 국군장병들을
수술하고 있을 때 갑자기 폭탄이
병원 3층에 떨어졌습니다.
국군들은 모두 재빨리 철수해야 했습니다.
그 바람에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생이별을 하게 되었고,
일평생 빛바랜 가족사진 한 장을 가슴에 품고
아내를 그리워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그에게 재혼을 권했지만,
그는 언제나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한 번 사랑은 영원한 사랑입니다.
나는 한 여인만을 사랑하기로 이미 약속을 했습니다.
나는 사랑하는 나의 아내와 영원히 살기 위해서
잠시 그저 혼자 살겠습니다!"라고요.
그가 부인을 그리며 1990년에 쓴 망향편지는
우리들의 가슴을 에는 듯합니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당신인듯하여 잠을 깨었소.
그럴리가 없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달려가
문을 열어 봤으나 그저 캄캄한 어둠 뿐…
허탈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불을 밝히고
이 편지를 씁니다."
미국에서,
북한을 많이 도운 그의 제자가 북한당국과 합의하여
중국에서 장기려 부부를 만날 수 있도록 주선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어코 그 기회를 사양하였습니다.
그런 특권을 누리면 다른 이산가족의 슬픔이
더 커진다는 것이 이유였습 니다.
그는 결국 빛바랜 사진을 보면서
아내를 그리워하 다가 만나지 못하고,
1995년 12월 25일 성탄절 새벽 1시 45분 85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한국의 언론은
'‘한국의 슈바이처'’ 또는 ‘'살아있는 작은 예수’'가
우리 곁을 떠났다고 아쉬워했습니다.
그는 어두운 밤과 같은 그 시대에
밝은 빛을 비추며 주님과 병든 사람들을 섬기면서
겸손하고 가난하고 따뜻하게 사신 분이셨습니다.
그가 죽기 전에 남긴 유언은
"내가 죽고 나거든 나의 비문에는
''주를 섬기면서 살다간 사람''이라고
적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 追加: 의대 2학년때 장 박사님의 첫강의시간
"의사는 병을고치는것 이 아니라
스스로 낫는과정을 도와주는 조력자일 뿐이다"
* 고매하시고 진실하신 장 박사님의 의사에 대한
정의가 명쾌 했습니다.
* 장기려 박사님처럼 "바보처럼 사는 삶"을
많은 사람이 존경하고 칭찬하지만
과연 그런 삶을 누구나살 수 있을까요?
감동은 하면서도 감히 흉내내기도
어려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종교를 달리하지만 기독교인의 따뜻한
이웃 사랑과 아내사랑에 감동하였습니다.
사랑합니다! 응원합니다! 함께합니다!
일상에 몰두 매진하시는 당신은 어떠십니까?
하실 수 있으실가요?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장기려박사를
흉내라도 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노심초사 멋진 인생을 가꾸시려 노력하시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요!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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