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김삿갓

방랑시인 김삿갓 (190) *관촉사(灌燭寺) 미륵석불

우현 띵호와 2021. 9. 30. 23:14

방랑시인 김삿갓 (190) *관촉사(灌燭寺) 미륵석불

(彌勒石佛: 은진미륵)에 얽힌 유사.
이윽고 황포돛이 바람을 품고 강심(江心)으로 두둥실 떠나가기 시작하자

뱃사공들은 갑판위에 술상을 차려 놓고 김삿갓을 불렀다.
"출발 전에 고사를 지낸 술이 좀 남아 있으니 형씨도 우리와 함께 흠향(歆響) 합시다."
어떤 술이라도 사양할 김삿갓이 아니다.

김삿갓은 뱃꾼들과 함께 술잔을 나누며, 원근 풍경을 유심히 살펴 보았다.
배는 순풍에 돛을 달고 강물을 좌우로 가르며 앞으로 앞으로

미끄러져 나가고 있었다.

저 멀리 강가에는 갈매기와 백로들이 삼삼오오 너훌너훌 춤을 추듯

날아다니고 있었다.
게다가 해는 저물기 시작하여 서녘 하늘에는 노을이 짙어왔다.

그 풍경이 너무도 아름다워,

김삿갓은 신용개(申用漑)의 시가 자기도 모르게 읊어졌다.

수전추고 목엽 비(水田秋高 木葉飛)
강마을 가을이 짙어 나뭇잎이 날리고

사한구예 정모의(沙寒鷗예 淨毛衣)
강가에 나는 갈매기 날게 더욱 희구나

서풍낙월 취유정(西風落月 吹遊艇)
저무는 바람결에 놀잇배 띄웠으니

취후강산 만재귀(醉後江山 滿載歸)
취하도록 마신 뒤에 강산 가득 싣고 가네

​배는 부여의 <구두레>나루를 떠난 지 이틀 만에 강경포에 도착 하였다.
"선장 어른을 비롯하여 사공님들 덕분에 여러 날 동안 신세가 많았습니다."
배가 강경포에 도착하자 김삿갓은 행장을 갖추고 배에서 내렸다.

김삿갓은 관촉사(灌燭寺)를 가보려고 반야산(般若山)으로 걸음을 옮겼다.
관촉사에는 키가 어머어마하게 높은 미륵 석불(彌勒石拂)이 있었다.
고려 광종(光宗)때에 반야산 기슭에서 높이가 54척이나 되는

거대한 자연석이 <내가 온다 내가 온다>

하는 소리를 내며 땅 위로 절로 솟아올랐는데, 혜명(慧明)선사가 그 돌을

정으로 쪼아 미륵불을 만들어 놓은 것이 바로 그 돌부처님(은진미륵)이라는 것이었다.

그 불상은 괴이하기 이를 데가 없어서, 나라에 무슨 변란이 일어날 때면

마치 살아 있는 부처님처럼 전신에 땀을 흘린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 불상은 고려가 망할 때에도 전신에 땀을 흘렸고

임진 왜란과 병자호란이 일어날 때에도 역시 전신에 땀을 흘렸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은진미륵이 한번 땀을 흘렸다 하면 조정의 군신(君臣)들은

말할 것도 없고 백성들의 민심도 크게 흉흉해진다는 것이었다.

*옮긴이 주.
우리들에게 은진미륵(恩津彌勒)으로 더욱 알려진 미륵 석불은 6,25 때도

전신에 땀을 흘렸다고한다.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55년 만에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되었다.

조형미 떨어진다 여겨졌으나
"파격과 대범의 미학"이라 재평가되었다.

은진미륵은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의 별칭이다.

관촉사가 있는 충남 논산시 관촉동 일대가 과거 은진면에 속해있어

이런 이름이 붙었다.

높이 18.12m로 국내 최대 규모 석불인데, 앞에서 올려다보면 화강암이 주는

웅장함과 폭풍우가 몰아쳐도 끄떡없을 듯한 위풍당당함을 느낄수 있다.

고려 초인 서기 968년 (광종 19년)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당대

조각장인이었던 승려 혜명이 제작했다.

일명 "거인 불상"으로도 불리며 논산 육군훈련소에 입소하는 신병 가족은

몰론 수많은 신도가 찾는 은진미륵이 55년 만에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된다.

그동안 이 불상은 세련된 통일신라 불상에 비해 조형미가 뒤떨어지는

'못난이' 불상으로 취급받았다.

체구에 비해 얼굴이 너무 커 인체 비례로 하면 4등신도 안되는 데다

눈, 코, 입까지 괴상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들어 '재평가'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석굴암을 가지고 불상의 미적(美的)기준을 삼았는데,

과연 그것이 모든 시대에 기준이 될 것인가 ?

'은근과 끈기'로 평가되는, 정제미와 이상미를 추구한 것이

통일신라의 미감(美感)이었다면,

이와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은진미륵은 "파격과 대범"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미감을 대변하는 것은 아닐까 ?

* 옮긴이 주.

위에 은진미륵에 관한 내용은 2018년 2월 14일과 15일,

조선일보 A19 면과 A26 면의 기사를 발췌, 정리한 것임을 밝힌다.

나라에 변란이 있을 때마다 은진미륵이 땀을 흘린다는 전설은

어제 오늘에 시작된 이야기가 아니다.

고려 말의 시인 이색(李穡)이 지은,

아래와 같은 시가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부여에서 동쪽으로 백 리쯤 되는 곳
(馬邑之東 百餘里 : 마읍지동 백여리)

시진 고을에 관촉사라는 절이 있다
(市津縣中 灌燭寺 : 시진현중 관촉사)

돌로 된 커다란 미륵 부처가 있으니
(有大石像 彌勒尊 : 유대석상 미륵존)

<나온다 나온다> 하며 땅에서 솟아올랐다.
(我出我出 湧從地 : 아출아출 용종지)

하얀 불상이 들을 향해 우뚝 서 있어
(魏然雪色 臨大野 : 위연설색 임대야)

농부들이 벼를 베어 불공을 드린다
(農夫刈稻 克檀施 : 농부예도 극단시)

때때로 땀을 흘려 국왕을 놀라게 한다는 일
(時時流汗 驚君臣 : 시시류한 경군신)

말로도 전해 오고 정사에도 실려 있다.
(不獨口傳 藏國史 : 불독구전 장국사)


이렇듯 나라에 변란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려 미리 알려주는 것이

사실이라면,

은진미륵이야말로 국가의 귀중한 보배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