曺秀美와 그리고 보리밭" ❤
세계 Top Class 인 Opera 가수
'조수미(曺秀美)'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녀의 본명은 '조수경'이였는데 발음이 부자연스러워
'조수미'로 개명했다고 합니다
경남 창원이 고향이며, 서울 선화 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녀는 원래 피아노 신동이었지만,
주위에서 노래를 시켜야 한다고 적극 권유했다고 합니다.
이미 어릴적부터 천재성이 보여 그런 이유로
서울대학교 음대 '성악과'에 합격했습니다.
서울대학교 재학중,
같은 학교 경영학과의 남학생과 사랑에 빠진 후
그녀는 연애를 시작 하면서 '조수미'의 모든것이 달라졌고,
예전의 '조수미'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교수와 부모님은 상의 끝에
'조수미'의 장래를 생각해서 서울대를 중퇴시키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전통있는 이태리 로마에 있는
명문대학인 '산타체칠리아'(Santa cecilia Conservatory of Music)
음악원에 강제유학을 보내게 됩니다.
그때부터 '조수미'는 본격적인 재능을 펼치기 시작했고,
남자친구로 부터 이별통보를 받은 후 이로 인해 '조수미'는
그때부터 지독하게 다짐하면서,
음악학원에서 5년 과정을 2년만에 졸업을 하는 놀라운
천재적재능을 발휘하여 교수전원이 감탄을 했다고 했습니다.
세계무대를 활보하며 결혼할 기회가 여러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1인자가 되기위한 이런 열정이 오늘의 '조수미'를
만들지 않았을까 짐작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세계적으로 한국을 알리며 활동하는 '조수미'씨가
대단하고 자랑스러우며,내일 모래면 '회갑'인데
아직도 미혼이라는게 안타깝습니다.
지금부터 30년전인 스물 여덟 살 때 이미 세계의 정상에 올랐던
'조수미'의 수많은 일화중 하나를 지금 소개할려고 합니다.
당시 영국의 가장 큰 음반 회사에서
'조수미'씨에게 레코드를 내주겠다고 제의(提議)를 했습니다.
이런경우 일반적인 가수들은 세계에서 가장 큰 음반회사에서
자신의 레코드를 내준다며 제의가 들어오면,
무조건 환영한다면서 좋아서 수락을 했겠지만,
'조수미'씨의 태도는 보통가수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조수미'씨는 레코드 회사에 ''조건이 하나 있다''고 했습니다.
''그 레코드에 ‘보리밭’을 넣어 주셔야 한다.”고 했습니다
레코드회사 사장을 50년이나 근무했지만,
'보리밭'이라는 노래는 들어 본적이 없는 생소한 이름이었습니다.
“조수미 선생! 그 '보리밭'이라는 노래가
무슨 오페라에 나오는 아리아(Aria)입니까?
“그것은 오페라에 나오는 '아리아'가
아니라, 내 조국 '대한민국'의 가곡(歌曲) 입니다.”
'조수미'씨의 제의를 듣고난 레코스사사장은,
“이것은 서울에서 파는 레코드가 아닙니다.
이것은 세계적인 도시인 파리에서 팔고,
런던에서 팔고, 로마에서 팔고, 빈에서도 팔고,
뉴욕에서도 팔리는 세계적인 레코드 입니다.
거기에다 세계 사람이 아무도 모르는 ‘보리밭’을 넣어
가지고 그 레코드가 성공은 커녕 팔리기나 하겠습니까?”
“그러면 그만두시지요.” '조수미'씨는 벌떡 일어섰습니다.
당황한 레코드회사 사장은 “앉으세요,
꼭 원하신다면 제의하신대로 '보리밭'을 넣도록 합시다.
조수미선생! 이제 만족 하시겠지요?”
'조수미'는 그냥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조건이 하나 더 있습니다.” “무슨 조건이십니까?”
“레코드 재킷에는 '보리밭'이라는 제목을 대한민국 글자인
한글로 찍어 주셔야합니다.”
레코드회사 사장은 비서실에 전화를 하는 등
한참 수선을 피우더니, 지금 영국에는 한글활자가
없다는 이유로 '조수미'의 제안에 난색을 표합니다.
'조수미'씨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사장님! British Airway(영국 항공사)에 가면,
한글 활자가 있습니다''고 맞섰습니다.
그래서 '조수미'씨의 첫번째 레코드에 '보리밭'이 들어갔고,
'보리밭'이 영어도 아니고, 불어도 아니고, 이태리어도 아닌
당당한 한글 <''보리밭''>으로 찍혀 있습니다.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얼마나 '위대한 애국 정신' 아닙니까!
상식적으로 이런 내용의 부탁은 일개국의 대통령이
레코드사를 방문해서 부탁해도 쉽게 이루어 질 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가냘픈 한 여성 가수가 자기조국(祖國)이라는 것에 대해
애착과 열정과 깊은 애국심을 갖고, 더 나아가 큰 자부심이 있기
때문에 해낸 것이라 고 할 수 있습니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동적인 행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조수미(曺秀美)'씨는 88'서울 올림픽',
2002년 '월드컵 전야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때에
이태리에서, 파리에서,런던에서,
그 바쁜 와중에도 모든 것을 제끼고 한숨에 서울로 달려왔습니다.
'조수미'씨! 그녀는 조국에서 부르면,
어떤 선약(先約)도 뒤로 미루고 언제든지 달려옵니다.
이런 인간성을 길러내는 것이
교육의 궁극적 목적이 아닐까요?
학교에서 글만 가르치는 것이 능사이고 소중한 것이 아니지 않나요?
그들에게 훌륭하게 자라나는 인격을 만들어 줘야 합니다.
그 인격을 만들어 주는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는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이 위대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대목입니다.
우리도 그 누구도 자신이 가진 재능과 능력에 따라
국가와 민족과 사회를 위해 어떠한 모습과 형태로든
충성하고 봉사할 수 있는 재능이 있고,
기회가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이나이에 내가 뭘 할 수 있겠느냐고?
고정관념을 깨면ᆢ
창조적인 인생은 60부터 시작입니다
'괴테'가 유명한 희곡인 '파우스트'를 완성한 것은 나이 80 넘어서 였고,
''파브르 곤충기'' 로 유명한 장 앙리 파브르(Jean Henri Farbre)는
85세에 10권의 곤충기를 완성하고 생을 마감 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로마에 있는 성 베드로 대성전의 돔(Dome)을 70세가 넘어 완성했고,
90세 마지막 순간까지 "론다니니아의 피에타"를 만들었습니다.
'헨델'과 '하이든' 같은 유명 작곡가들도 고희(古喜)의 나이를 넘겨,
불후의 명곡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미국의 화가 모지스는 75세의 늦은 나이에 화가의 길로 들어서
101세에 세상을 떠나기 까지 1,600여 점의 작품을 남기며
화가로서 열정을 불태웠습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80세에 민족을 위해 새로운 출발을 한다며 장정 60만
(실제 숫자 200만)을 이끌고, 애급을 탈출, 가나안 복지를 향해
유대민족을 구출하는 대역사를 장식했습니다
당시의 이정도 나이는 지금의 100세가 넘는 노령들입니다.
창조적인 인생의 시작은 60부터입니다.
"인생은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 먹기에 따라서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늘 할 수 있을것이다."
노년을 초라하게 보내지 않도록 여유를 가지는 마음 자세와
세상을 포용하고 용서하며 사랑할 수 있는 모습을 유지하면
더욱 좋겠습니다.
조금이라도 생애를 뜻있게 보내겠다는 결단을 가지고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키겠다는 목표를 간절하게 세워야 합니다.
그목표를 이루기위해 피땀어린 노력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결과로 얻어지는
새로운 습관을 몸에 배도록 내것으로 만들어
간절하게 원하면서 살아가면 더더욱 좋을 것입니다.
변화는 피땀어린 노력을 요구합니다.
지금 이나이에가 아니라,
이나이에도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다시 시작한다면,
우리는 창조정신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분명히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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