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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빠진 날

우현 띵호와 2022. 9. 26. 20:05

귀 빠진 날

친구 생일 축하모임을 가졌다.
코로나도 있고 해서 한동안 어울리지 못했는데,

친구들끼리 단톡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한 명이 귀 빠진 날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렇잖아도 다들 마음은 주저주저 하면서도

몸은 근질근질 했는데 좋은 구실이 생긴 거다.

모처럼 모여 한잔 했다.
자연스레 생일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갔다.

“아침에, 미역국은 얻어 먹었냐?” 부터,
“이제 우리 여생에, 생일이 몇 번이나 남았을까?”하는

쓸쓸한 대화까지 나누다가, 생각지 않게  많은 걸 깨닫게 됐다.
쓸데없이 한 친구가 물었다.

“생일을 왜 귀 빠진 날이라고 부르는지 알아?”
“그러게, 코나 눈 빠진 날도 아니고, 왜 하필 귀 빠진 날이지?”
태아는, 머리부터세상에나오는데, 산모에겐 
그때가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이다.

산부인과도 제대로 없던 시절,

시골집에서 순산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머니들은 해산할 때 댓돌 위에 고무신을 벗어놓고,
‘내가 다시 저 신을 신을 수 있을까’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태아는 머리가, 어깨 너비보다 크다.
그래서 일단, 귀가 보이는 게 중요했다.
귀는 좌.우 대칭에서 코 끝과 귀 밑이 일직 선상에 놓인다.

그래서 귀가 빠지면서 코가 열리며 호흡을 하니

이 시각이 정확한 출생시간이 되는 것이다.

한 친구가 진지하게 물었다.
“그래, 그런데 생일은, 어머니가 가장 고생한 날인데,

왜 생일 축하는 저희들끼리만 하지?”

결혼을 해서, 아내가 아이를 낳는 걸 보며,
생일의 주인공은 자기가 아니라는 걸 문득 깨달았다고 한다.

그 후 그는, 

생일에는, 꼭 어머니 아버지에게 미역국을 끓여 드리거나,
맛있는 걸 사드리고 선물을 드렸다고 한다.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란 그의 아이들도 자신의

생일에는 그렇게 따라 한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나니 결혼 후 내 생일에 부모를 생각한 적이 있었 던가?

어머니가 멀리 계시긴 하셨지만,
아내와 아이들하고만 즐겁고 오붓하게 생일상을 먹었었다.

어머니는, 오히려 내 생일에는 가족과 좋은 데 가서

외식하라고전화를 하시곤 했는데 
난 정작 어머니에겐, 스웨터 하나 선물한 적이 없었다.

다른 때는 문안 전화를 곧잘 하면서도 막상 생일에는,
“저를 낳느라고 얼마나 힘드셨어요”라는감사 전화 한 번 한 적이 없다.

생일은 내 것인 줄만 알았기에...
친구는, 생일 아침에 미역국을 먹는 관습은,

출산의 고통을 겪으며, 생명을 주신 어머니의 
은혜를 잊지 말라는 의미라고 말해줬다.

그래서 귀 빠진 날에는 자기가 미역국을 먹는 게 아니라,
귀를 빼준 어머니에게 미역국을 끓여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 진위는 모르겠으나

귀는 얼굴귀퉁이에 붙어 있어서 ‘귀’가 됐다고 한다.

사람이 잘났다고 말할 때, 왜 
이목구비(耳目口鼻)가 반듯 하다고 할까.

눈, 입, 코도 있는데 왜 귀(耳)를 앞세웠을까?
귀는 얼굴의 핵심 지점도 아니고 변방에 달려있는데도 말이다.

그건 그만큼 귀가 소중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맨 앞에 간 거라고 한다.
늘 남과 세상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귀엽다’는 단어는 남의 말을 잘 귀담아 듣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라는 우스개까지 곁들였다.

말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지만,
듣는 것은, 가려들을 수는 없다.
듣는 것은 그래서 신의 뜻이라고 한다.
남이 내 험담을 할 때, ‘귀가 가렵다’는 표현을 생각해 보라.

입은 하나인데 눈과 귀가 두 개인 건,
말하는 것보다 듣고 보기를 두 배로 하라는 의미라고 한다.

또한 듣는 것 모두가 생활을 해 나가는데 필요한 것이 아닐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라는 것이다.

공자는 나이 60을 귀가 순해진다는 이순(耳順)이라 했다.
이는 원래, 무슨 말을 들어도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 한다는 
의미이지만, 무슨 말을 들어도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않는 
관용이 진짜 의미라고 한다.

선현들은 나쁜 말을 들으면 곧장 달려가, 시냇물에 귀를 씻는다 했다.
난 이순의 나이가 넘었지만 그 경지에 언제나 도달할 수 있으려나...

늘 내 얼굴 귀퉁이에 붙어있어 관심을 갖지 않았던 귀,

많은 걸 생각하고 깨닫게 됐다.

만나면 좋고, 함께하면 행복하고,
헤어지면 늘 그리운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