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세추이(與世推移)
세상이 변하는 대로 따라 변함
[줄 여(臼/7) 인간 세(一/4) 밀 추(扌/8) 옮길 이(禾/6)]
세상의 흐름에 독불장군처럼 변화를 거부하고
獨也靑靑(독야청청)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물결치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줏대 없이
몸을 맡기는 것이 옳은가.
상황에 따라 결과가 달리 나올 수 있겠지만 세상이 변하는 대로
따라서(與世) 몸을 맡겨 밀리는(推移) 것을 변화에
잘 적응하는 것이라 찬양하기도 하고, 올곧은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못할 일이라 타기하기도 한다.
자신을 흐름에 맡겨야할지 그것에 맞서야할지,
잘 판단하여 어느 것이나 대의에 맞아야 하는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楚(초)나라의 정치가이자 우국시인
屈原(굴원)은 懷王(회왕)에게 강국 秦(진)과 대항하기 위해선
齊(제)와 동맹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張儀(장의)의 술책에 솔깃해진 ]정적들의 모함을 받아
좌천되고 실의에 빠져 湘江(상강)의 물가를 어슬렁거리다
한 어부를 만났다.
어찌하여 귀인이 이곳을 거니느냐고 물으니
온 세상이 흐리고 모두 취했는데 혼자 깨어 있었기 때문이라 했다.
‘성인은 사물에 엉키고 막히지 아니하고 세상과 더불어 변하여
옮겨가는 것
(聖人不凝滯於物 而能與世推移/
성인부응체어물 이능여세추이)’이란
어부의 말에 굴원은 펄쩍 뛴다.
어찌 깨끗한 몸으로 더러운 사물을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며
차라리 물에 뛰어들어 물고기의 뱃속에 장사지내는 것이 낫다고 했다.
‘漁父詞(어부사)’에 나오는 이야기로 혼탁한 세파에 맡기는 것은
성인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반면 사소한 일에 얽매이지 않고 흐름을 잘 타야 성현이라 한 사람도 있다.
後漢(후한)때 崔寔(최식)이라는 선비는 벼슬자리를 사양하고
글 한 편을 공표한다.
‘대저 성인은 어떤 일에도 구애받지 않고 세상의 변천에 따라 행동한다.
평범한 선비는 융통의 재능이 부족하여 마음으로만 괴로워할 뿐
시대의 변천에 적응하지 못한다
(故聖人能與世推移 而俗士苦不知變/
고성인능여세추이 이속사고부지변).’ ‘後漢書(후한서)’ 열전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