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선물
허기진 낮달이 갯벌 위에 폐선처럼 떠있고
혼절의 가난 앞에 거미줄 앞에 하루살이 같은
흔적없는 바람만 들고날 뿐입니다.
"여보!! 어떡해...
오늘 수술 못하면 우리 수미가 죽는데..."
"..............."
"어떻게든 해봐!!!"
눈 한번 감았다 뜨니 빈하늘만 남은
아내의 통곡어린 비수가
남편의 가슴을 뚫고 지나갑니다.
지나는 바람 한 점 주머니에 담지 못하는
자신을 원망하며 병실문을 나선 남자가
갈 수 있는대라고는 포장마차!!
그저 아픔의 시간 안에서 혼자 외로이
견뎌내는 슬픈 원망 앞에는
소주 한 병과 깍두기 한 접시가 놓여 있었습니다.
빛 한톨 머물 수 없는 마음으로
술을 마신 남자가 어둠에 누운거리를 헤매 돌다
담배 한 갑을 사려고 멈춰선 곳은 불 꺼진 가계 앞...
술김에 문 손잡이를 당겼더니 문이 열리고 맙니다.
두리번거리던 남자의 눈에 달빛에 비친
금고가 눈에 들어오고 말았습니다.
"여보 어떻게든 해봐..."
아내의 부서진 말이 그 순간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금고문을 열고 정신없이 주머니에 닥치는대로
주워담고 있을 때 어디선가 자신을 바라보는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는 순간
백발의 할머니 한분이 서 계신 것이었습니다.
밥 그릇이 배고픔에 뒤집어지듯 남자는
주머니에 담았던 돈을 금고에 다시 옮겨
놓고 있을 때 말 없이 다가선 할머니의 입에서
이런 말이 흘러 나왔습니다.
"잔돈푼을 가져가 어디 쓰려고....
무슨 딱한 사정이 있어 보이는데
그 이유나 한번 들어봄세..."
할머니 앞에서 무릎을 꿇고
오열하는 남자에게
"말 안해도 알겠네.. 오죽 힘들었으면....
힘내게! 살다 보면 뜻하지 않는 일들이
생기는 게 인생 아니겠나"
할머니는 남자의 손에 준비한 듯
무언가를 순에 쥐어줍니다.
"부족하겠지만 우선 이걸루 급한 불은 꺼질걸세"
가게문을 나서 저만치 걸어가는 남자가
어둠속에 서 있는 할머니를 자꾸만
뒤돌아 보면서 울먹이고 있을 때
"열심히 살아...
그러면 또 좋은 날 올 거야..."
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똑같은 가을이 세 번 바뀌어 가던 어느 날
할머니 집 가게 문을 열고 한 남자가 들어섭니다.
"어서오세요. 뭘 드릴까요??"
라고 말하는 젊은 여자는 외면한 채
두리번 거리기만 하던 남자가...
"저어.. 여기 혹시 할머니..."
"아~ 저의 어머니를 찾으시는군요..
작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얼마 후 물어물어 남자가 찾아간 곳은
할머니가 묻히신 산소였습니다.
"할머니께서 빌려주신 돈 잘 쓰고 돌려 드렸습니다.
그땐 너무 감사했습니다. "
통탄의 눈물을 흘리던 남자에 눈에
묘비에 적힌 글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람은 감사와 나눔으로 인생을 만들어 나간다'
사계절이 두어 번 오고 간 후 해맑은 하늘에
사랑비가 간간히 뿌려지는 날 오후
공원에 작은 푸드트럭 한 대가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무료급식을 나누어 주고 있었습니다.
밥은 남편이...
국은 아내가...
반찬은 딸이...
참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런데 트럭 지붕 맨 꼭대기에 깃발 하나가
바람처럼 펄럭이고 있습니다.
"사람은 감사와 나눔으로 인생을 만들어 나간다."
라고 적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