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김삿갓

방랑시인 김삿갓 (43) *色酒家 주모와의 내기. "하편"

우현 띵호와 2021. 9. 26. 23:50

방랑시인 김삿갓 (43) *色酒家 주모와의 내기. "하편"

"첫 문제는 一 자로 시작하는 시예요.

내가 문제를 부르면 즉석에서 대답을 해야 해요, 아셨죠."

그리고 한시 한줄을 읽었다.
"一粒栗中 藏世界" (일립율중 장세계)
김삿갓은 주모가 읊은 싯구를 듣고 크게 놀랐다.

이것은 오등회원(五燈會元) 이라는 불서(佛書)에 나오는 시로서,

우주의 원리를 일곱 개의 글자로 집약해 놓은  너무도 심오한 시였기 때문이다.

김삿갓은 주모에게 놀란 음성으로 물었다.
"주모에게 누가 그처럼 심오한 시를 적어 주던가 ? "

주모는 이번에야 말로 ,내기에 이길 자신이 생겼다고 여기는지

의기양양하게 대답을 재촉한다.

"내기 문제를 누가 가르쳐 주었든 간에 ,

대답을 못 하겠거든 빨리 손이나 드세요."

"허..참 !"
김삿갓은 주모의 태도를 마뜩하지 않게 여기며 댓귀를 불렀다.

"일립율중 장세계" .. 좁쌀알 한 알 속에 온 세계가 숨어 있어
"반승당병 자건곤 .. 반 되들이 솥 속에서 하늘과 땅을 삶는다.

(半升당丙 煮乾坤)

주모는 문제가 적혀있는 종이 두루마리를 들여다 보다가

김삿갓의 대답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고

두번째는 안될 거 예요."

주모는 두번째 문제를 ..
"이월강남 화만지 " (二月江南 花滿枝) 하고 말한다.

김삿갓은 즉각 대답했다.
"이월이면 강남에서는 가지마다 꽃이 피니" ........... "

이월강남 화만지 "

"타향에서 한식을 맞는 이 몸 고향 생각 간절타". .... "

타향한식 원감비" (他鄕寒食 遠堪悲)

"지금 이 시는 당나라 시인 맹운경의 한식일 이라는 시렸다." ..
주모는 약이 오르는지 ,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않고 세번째 문제를 읊었다.

"삼오야중 신월색" (三五夜中 新月色)
김삿갓은 또 다시 짝을 맞춰 대답한다.
"삼오야중 신월색" ...

한가위 보름밤에 달이 솟아 아름다우니

"이천리 외고인심" ..

이천 리 타향 사는 친구의 마음은 어떠할까.(二千里 外故人心)
세 문제를 연거푸 척척 맞춰내니 주모는 초조한 기색을 보였다.

그러나 주모는 낙담을 하지않고 네번째 문제를 불렀다.
"四十餘年 睡夢中" (사십여년 수몽중)
주모가 문제를 부르자 김삿갓이 말했다.
"그 시는 명 나라의 왕수인의 수기우성이라는 시라네.

내가 전문을 읊어 볼테니 들어 보라구."

그리고 김삿갓은 시 한편을 줄줄 읊어내렸다.
"四十餘年 睡夢中" (사십여년 수몽중)

사십 여년을 꿈속에서 살아 오다가

"능今醒眼 始夢용" (능금성난 시몽용)

이제야 깨어나니 눈 앞이 텁텁하네

"不知日巳 過停午" (부지일사 과정오)

해가 이미 한낮이 지난줄도 모르고

"起向高樓 撞曉鐘" (기향고루 당효종)

이제사 다락에 올라 새벽종을 치노나.

주모는 내기 문제를 낼 때 마다 막힘 없이 술술 풀어내는

김삿갓의 재주에 그만 넋이 나가 버렸다.

실상인즉, 주모는 한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손님들 돈을 우려먹을 심산으로

어떤 한학자 (漢學者)에게 부탁하여 내기 문제를 받은 것이다.
그런데 김삿갓에게는 통하지가 않았다.
주모는 내기문제를 받을때 한학자가 말했던 것을 기억해 냈다.

"이 내기문제로 짝맞추기 내기를 걸면 ,

백발 백중 첫,두구절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할 게요.

만일 세번째나 네번째 까지 알아 맞추는 사람이 있다면 ,

그 사람은 우리나라 이태백일 것이오."

사태가 이쯤되니 주모는 내기에 이기고 지는 것이 문제되지 않았다.
김삿갓에 대해 인간적인 존경심이 무럭무럭 피어 올랐다.
주모는 감격어린 눈으로 김삿갓을 바라보며 말한다.

" 손님이 한시에 이렇게 훌륭하신 분인지 미처 몰랐어요."
"내기를 하다가 무슨 소리를 하는게요. 나머지 하나도 마저 부르시오."
"아네요, 손님처럼 위대한 학자님께

이 이상 내기를 하자는 것은 예의가 아닌것 같아요.

승부는 끝난 것 으로 하고 , 술값은 한 푼도 받지 않겠어요."
"왼일 인가 ? 주모는 손님에게 내기 술 한 잔을 먹여 놓고

석잔 값을​ 받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래요. 못난 사내놈들에게 돈을 울거내기 위한 술책이었던 것은 사실이에요.
그러나 손님의 경우는 달라요."

"지금까지 내기를 해오다가 별안간 나의 경우는 다르다니 별일이군."
"손님은 학식이 너무도 높기 때문에 이제 와서는 존경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을 어떡해요."

"고맙네. 실상인즉 나도 돈 한푼 없어,

내기에 졌더라면 크게 창피를 당할뻔 했구먼."

"네 ? 그런 거짓말은 하지도 마세요.

돈이 한 푼도 없는 사람이 술집에 어떻게 들어와요 ? "

"색주가라는 간판을 보자 술 생각이 하도 간절해 ,

돈 같은 것은 생각할 겨를없이 덮어놓고 들어왔지."

"아이참 ! 기막혀라 ..생판 모르는 술집에 와서

무작정 무전취식을 하려는 배짱이었다는 말씀이에요 ? "

"나의 경우는 무전 취식이 아니라 무전 취주라는 말이 옳겠지, 하하하."
"이제보니 손님은 배짱이 보통이 아니시네요."

"돈 없는 놈이 배짱까지 없으면 술맛을 평생 못보게 될것 아닌가,
안그래 ?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