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김삿갓

방랑시인 김삿갓 (45)* 단천에서 만난 선비 최백호.

우현 띵호와 2021. 9. 26. 23:51

방랑시인 김삿갓 (45)* 단천에서 만난 선비 최백호.

김삿갓은 길주(吉州)를 향해 걸었다.
여러날이 걸려 이름만 그럴듯이 좋은 길주땅에 당도하게 되었다.
길주는 옛날부터 과객을 절대로 재우지 않기로 유명한 곳이다.

계절은 북상 할수록 마냥 아름다웠지만,

인심은 북상할 수록 북풍한설 몰아치 듯이 쌀살해져 가기만 하였고 ,

어느 집을 찾아가도 문을 닫고 본 척도 하지 않는데는 기가 막혔다.

마침 그는 허씨들이 모여 살고있는 어느 마을을 지나다가

기어코 날이 저물어 하룻밤 유숙을 원했지만 영 헛수고였다.
아무리 과객을 꺼리는 인심이라 해도,

열 집에 한 집 쯤 재워줄 만도 한데 ,

이렇게 고약한 동네는 처음보는 일 이었다.

​"과연 과객의 지옥이로구나​."
김삿갓은 하도 인심이 야박해서 화풀이 시를 한수 읊어 보았다.

吉州吉州 不吉州 (길주길주 불길주)
이름만 길주길주하나 길한 고을은 아니고
許可許可 不許可 (허가허가 불허가)
성만 허가했지 과객은 허가하지 않는구나.
김삿갓은 사흘밤을 길주에서 보내며,

남의 집 처마 밑이나 빈 헛간에서 밤을 새우는 고생을 하였다.

이렇게 지긋지긋한 길주를 벗어나 고생끝에 명천에 도착한 김삿갓 ,

이곳은 좀 나으려니 했더니..

이곳 또한 이름만 허울좋게 명천(明川)이지 ,

인심 사납기는 길주에 못지 않았다.

원래 명천은 명태의 원 고장이다.

명태란 이름도 명천사는 태(太)서방이 처음 잡은 고기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런 명태가 썩어 버릴 정도로 많이 잡힌다는 명천땅이지만

김삿갓은 그 북어 꽁지 하나 얻어 먹지도 못하고 고생만 했다.

"허허 , 이곳도 길주 뺨치는 곳이로다."
김삿갓은 두만강 까지 찾아 가보려던 애초의 계획을 접고 ,

명천땅을 비웃는 글을 한 수 읊은뒤
부지런히 다시 남하하기 시작했다.

明川明川 不明川 (명천명천 불명천)
명천명천이라고 부르지만 사람들은 현명치 아니하고

魚佃魚佃 食無魚 (어전어전 식무어)
어전어전 자랑하지만 밥상에는 북어꽁지 하나 없구나.

다시 길주를 거쳐 단천땅으로 향하니 완연한 여름 날씨였다.
단천은 그나마 비교적 인심이 후한 고장이었다.

서당도 그랬고 민가도 그랬지만

왠만하면 술도 한잔 대접할 줄 아는 고을이었다.

김삿갓은 어느날 단천에 유명한 남대천 물가로 나갔다.
옥같이 맑은 물이 얕은 천을 흐르는데 ,

오랫동안 목욕을 하지 못한 삿갓을 유혹하고 있었다.
(그래 , 내 저 맑고 시원한 물에 들어가 목욕이나 한번 하자 ! )

김삿갓은 나무숲이 우거진 곳에 가서 옷을 훌훌 벗고 ,

목욕도 하고 입었던 옷도 대충 빨아서 바위위에 널고,

마르는 동안 몸을 씻었다.

옷을 말리고 있는 동안 김삿갓은 모처럼 흥이 돋았다.
몸도 마음도 남대천 물속 처럼 맑고 개운하였다.
자연히 그의 입에서는 시 한수가 읊조려졌다.

춘수만사택 하운다기봉

(春水滿四澤 夏雲多奇峰)
봄물은 사택에 가득하고 여름 구름은 기봉이 많기도 하여라
일봉이봉 삼사봉 오봉육봉 칠팔봉

(一峰二峰 三四峰 五峰六峰 七八峰)

수유경작 천만봉 구만장천 도시봉

(須臾更作 千萬峰 九萬長天 都是峰)
잠깐사이 천만봉 구만장천 모두 구름봉.

김삿갓은 모래사장에 팔을 베고누워 이같이 흥얼거렸다.
그러자 숲속에서 어떤 중년 선비 한사람이 부채질을 하며 나오더니 ,

"허, 과객양반 실례하오.

혹시 댁이 김삿갓이라는 분 아니시오 ? " 하고 묻는다.​

김삿갓은 생면부지의 사람이 자기를 알아 보는 것도 신기한 일이지만,

함경도 땅에 퍼진 자신의 이름을 어느덧 알아 듣고

, 묻는 말 같기에 일편 반갑기도 하였다.

"네 그렇습니다만 어떻게 제 이름을 ..."
"하하하 ,역시 그분이군요.

제 우리 마을 어느 서당에 들리신 적이 있지요 ?
그 서당에 갔더니 삿갓을 쓰신 과객 한 분이 다녀가셨다고 해서 ... "

"그래 일부러 저를 만나러 나오셨소 ?"
"그건 아니지만 나도 등물이나 할까하고 남대천에 나왔더니

어디서 시를 읊는 소리도 들리고 삿갓도 옆에 있기에 혹시나 싶어 물었던 것이외다."

"그러셨군요.."
김삿갓은 그저그렇게 인사치례의 말을 건네고 말았지만 ,

중년의 선비는 자기를 소개 하였다.

"나는 이마을에 사는 최백호 (崔白浩)라고 합니다.

선생의 성가(聲價)는 익히 들었습니다."

"어떻게 저를 아셨는지 ? ..."
김삿갓은 자기를 시성(詩聖)으로 칭하는 이유가 여간 궁금하지 않았다.
"허어, 제가 얼마전에 외가인 안변에 다녀왔더니 ,

그곳 사또님 자제를 가르쳐 급제를 시켰다는 소문이 자자하더군요.

더구나 안변에 내노라하는 양반들을 시로써 옴쭉달싹 못하게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어 , 어떠한 기성(奇聖)인지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참, 무족지언 천리행 (無足之言 千里行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 이라더니

별것도 아닌 일이 우습게 퍼졌군요."

"허 ..이렇게 대 시인 선생님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과분하신 말씀 송구합니다."
이렇게 하여 김삿갓과 최백호는 남대천에서 서로 알게 되었고

최백호의 인품도 학문을 배워 준수한 선비의 풍모를 갖춘터라 ,

김삿갓은 오랫만에 선비다운 선비를 만난 것을 기쁘게 생각했다.

그러니 같은 풍류객끼리 서로 글 얘기가 없을수 없었다.
"최선생이 한 수 들려주시오."
김삿갓이 먼저 백호의 시를 한수 청했다.

"저 보다도 김선생님이 시인이시니 먼저 한 수 들려 주십시오.

그 다음에 제가 하리다."

"그럼 운(韻)을 최선생께서 부르시지요."
"흐를 류(流)로 하지요." 최백호가 운을 띄웠다.
"허허, 강가니까 , 어울리는 좋은 운자를 주셨습니다."
"하하 , 김선생은 제 마음에 드는 말씀만 하십니다."

山始劍氣 衝天立 (산시검기 충천위)
水學兵聲 動地流 (수학병성 동지류)
산은 칼의 기상으로 하늘을 찌를듯 서있고
물은 병정의 소리를 내며 땅을 울리고 흐른다.
"호..과연 , 삿갓선생의 기상이 보이는 작품입니다."

최백호는 진정으로 감탄 하였다.
김삿갓은 자신의 시를 알아 보아주는 최백호를 바라보며 말을 하였다.
"이번에는 선생 차례요."

"운은 ? "
"돌아올 회 (廻) ! "
최백호는 잠시 시상에 잠기더니 글을 하나 내어 놓았다.

山欲渡江 江口立 (산욕도강 강구립)
水將穿石 石頭廻 (산장천석 석두회)
산은 강을 건너려고 강 어귀에 서 있고
물은 돌을 뚫으려고 돌머리를 돌고 있네.

"허허..내 시보다 더욱 좋습니다."
김삿갓은 감탄했다.
"웬걸요. 김선생님 시에 비하면 졸작이지요."
최백호는 겸손하기만 했다.
"헌데 최선생, 실례되지만 첫구에 바랄 욕(欲)자를 아니 불(不)자로 바꾸고 ,
둘쨋구의 장수 장(將)자를 어려울 난 (難)자로 바꾸면 어떨까요 ?

그것이 더 자연스러울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 "
山不渡江 江口立 / 水難穿石 石頭廻
산은 강을 건너지 못해 강 어귀에 서있고
물은 돌을 뚫기가 어려워 돌머리를 돌아가네.
"듣고보니 , 더 운치가 좋아졌습니다.

역시 대가다운 시인이시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