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김삿갓

●방랑시인 김삿갓 01-(40) 밝혀진 死因

우현 띵호와 2021. 9. 26. 23:49

●방랑시인 김삿갓 01-(40) 밝혀진 死因

"시체를 검증하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니오 ? 그것이 무엇 입니까 ? "
김삿갓이 대답한다.
"남편을 죽여 불에 태울 정도로 지능적인 여자라면

재판도 공개적으로 하고 시체 검증도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해야 하되 

그 전에 준비 하여야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재판을 섣불리 서둘다 보면 사또께서 백성들에게 엉뚱한 원성을 듣게 됩니다."

"재판을 섣불리 서두르다가 제가 백성들에게 원성을 사게 되다뇨 .

그건 또 무슨 말씀 입니까 ? "

"사람은 누구나 곤경에 빠진 약자를 동정하게 마련 입니다.

그러므로 공개된 자리에서 일반 백성들에게 납득할 증거를 보여 주지않고

여인을 남편을 살해하여 불에 태워버린 중죄인 으로 낙인을 찍어 버리게 되면

 백성들은 오히려 죄인을 동정하기 마련이고 ...

아울러 사또의 횡포라고 말을 하게 됩니다. 하오니 시체를 검사하기 이전에

반드시 다음과 같은 절차를 밟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김삿갓은 사또에게 이러저러한 절차를 밟은 뒤에 백성들의 동의를

이끌어내 최후의 심판을 내리도록 하라고 자상하게 일러주었다.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 재판은 선생께서 일러주신 대로 모든 절차를 밟은 후에

공개적으로 시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로부터 이틀후.
사또는 문제의 여인을 동헌 마당에 끌어다가 꿇어 앉혀 놓았다.
공개 재판을 한다고 榜을 미리 써붙였기에 동헌 마당에는 구경 나온

백성들이 수 없이 많았다.
재판 광경을 방청나온 사람들 중에는 김삿갓도 한몫 끼어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여죄수 옆에는 난데없는 새끼돼지 두 마리가 죄수처럼 결박을 진 채

꿀꿀 거리고 있었다.
구경꾼들은 난데없는 돼지를 보고 제각기 한마디씩 쑥덕 거렸다.
"저 돼지는 어떻게 된 돼지야 ? 돼지도 서방을 죽이고 재판을 받으려고 끌려온 모양이지 ? "
"예끼 ,이사람아 . 설마하니 돼지가 죄수로 끌려왔을라고."
"그러면 저 돼지는 왜 끌려온 거야 ?"
돼지가 무엇 때문에 결박을 지어 끌려왔는지 ,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렇듯 재판을 하는 자리에 돼지가 등장한 것은 사전에 김삿갓이 사또에게

말을 해준 탓이였다.

사또가 동헌 마루 위에서 죄수를 굽어보며 문초를 시작했다.
"죄수는 듣거라. 너는 네 남편을 살해하여, 불에 타 죽은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이

분명할진데, 아직도 네 죄를 이실직고 하지 않겠느냐 ?"

그러자 죄수는 사또를 올려다 보며 분노에 찬 어조로 항변을 한다.
"사또께서는 어찌하여 아무 죄도 없는 쇤네를 살인범으로 몰아붙이시옵니까.

아내가 남편을 죽일수있는지 없는지 , 사또께서는 댁에 돌아가 마나님에게

물어 보시면 잘 아시게 될것 이옵니다."
죄수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 ,

사또의 마누라 까지 물고 늘어질 정도로 악랄하였다.

그러나 구경꾼들은 그 말을 듣더니 모두들 그 여인을 동정해 마지 않는다.
"저 여자는 살인범으로 ​ 몰리는 것이 얼마나 억울하면 사또의 마누라까지

물고 늘어질까, 증거도 없는 저 여자를 본부 살해범으로 몰아치는 것은

아무래도 사또가 잘못 하는일 같은걸."

"누가 아니래 ! 내가 보기에도 사또가 너무 심한것 같아.

정말로 남편을 죽인 여자라면 저토록 당당하게 나올 수야 없지 않은가 ? "

사또는 구경꾼들의 분위기를 다 알고 있으면서도 시치미를 떼고 문초를 계속했다.
"네가 아무리 무죄를 주장해도 본부를 살해한 죄인임에 틀림이 없다.

네 죄를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있는데  너는 어찌 죄가 없다고 발 뺌만 하고 있느냐 ! "

"사또는 무슨 근거로 쇤네를 살인범으로 몰아 치시는 것이옵니까.

죄가 있으면 증거를 보여 주옵소서. 아무리 사또이기로 생사람을

살인범으로 몰아치는 법이 어디 있사옵니까 ? "
여인은 길길이 뛰며 자신이 저지른 일이 아니라고 거칠게 항변했다.

사또는 이때라 싶어 여인을 굽어보며 다시 말했다.
"네가 말 한번 잘하였다. 네가 남편을 죽인후 불을 질렀다는 증거를 보여 주기만 하면

네 죄를 인정할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 ?"

"그야 물론입지요. 쇤네가 남편을 죽여 불에 태웠다는 증거가 있다면

어찌 인정을 아니하겠습니까.
하오나 그런 사실이 없는데 어떻게 증거가 있을수 있겠습니까 ?
여인은 당당하게 자신이 무죄임을 주장 하였다.

그러자 방청해 있던 구경꾼들의 분위기는 점점 여인을 동정하게 되었다.
여인이 남편을 죽였다는 이렇다할 증거도 없으려니와,

재판에 임하는 당당함등, 여인은 어디로 보나 범인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방청석에서 여인을 동정하는 수근거리는 소리가 사또의 귀에까지 들렸다.

이때 ,사또가 방청석을 향하여 말을 했다.
"방청객 여러분 !

살아 있는 사람이 불에 타 죽는 것과 죽은 사람이

불에 탄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런 차이가 있음을 여러분은 미리 알고 계셔야 합니다."

사또의 이같은 말에 방청객들은 한결같이 궁금해 하였다.
그리하여 늙은 방청객 한 사람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사또에게 묻는다.
"사또 어른 ! ​ 생사람이 불에 타 죽은 시체와 죽고나서

불에 탄 시체는 모두가 시체이거늘 , 무엇이 다르다는 말씀이시옵니까 ? "

사또가 대답했다.
같은 시체라도 살아 있을때 불에 탄 시체와 이미 숨이 끊어진 시체는

엄연히 다른 모습을 하는 법이오.

그것을 지금부터 여러 방청객이 지켜 보는 가운데 증명해 보일 터이니

여러분들은 검증의 과정을 잘 지켜 보시기 바랍니다."

방청객들은 사또의 말에 더욱 궁금증이 일어 

사또의 일거수 일투족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새로 부임해 오신 사또는 대단히 지혜로운 어른이신가봐,

우리들은 생각지도 못한, 비방이 있다고 하시는 것을 보니.." 하며

눈과 귀를 곳추 세우고 사또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사또는 형리에게 명 하였다.
"돼지 한 마리는 죽여 가지고 장작더미 위에 올려 놓고 한마리는 산채로 묶어,

장작더미 위에 올려 놓거라. 그리고 장작에 불을 지피거라."

그리하여 동헌 마당에서는 방청객이 지켜 보는 앞에서 살아있는 돼지와

죽은 돼지를 불에 태우는 거창한 실험이 시작 되었다.

사또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장작불을 바라보며 죄수에게 말했다.
"지금 이자리에서 산 돼지와 이미 죽은 돼지를 불에 태워 보는 것은,

네 죄가 있고 없음을 가리기 위한 실험이로다.

그러니 너는 똑똑히 보아 두어라."
여인은 그만  기가 죽었는지 입을 굳게 다문채 장작불만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사또는 방청객을 향하여 다시 입을 열었다.
"산 돼지는 불에 타 죽는 순간까지 호흡을 하므로 불에 타 죽은 후에 

입안에 재가 쌓일 것이오,
이미 죽은 돼지는 호흡을 할수 없으니 

불에 태우더라도 입안에 재가 없이 깨끗할 것 인즉..
잠시후면 여러분들은 나의 말의 진위를 확인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윽고 두 마리의 돼지가 불에 타고 나자

사또는 방청객을 다시 둘러 보며 말을 하였다.
"지금 우리는 살아 있는 돼지와 죽은 돼지를 모두가 보는 앞에서 직접 불에 태워 보았소.
이제는 방청객 중에서 몇 사람이 나와 두 마리 돼지 입안이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기 바라오."

그러자 두 세명의 방청객이 달려나와 불에 탄 돼지 입안을 검사 했다.
과연 살아서 불에 탄 돼지의 입안에는 사또가 말을 한 대로 재가 가득 쌓여 있었다.
그러나 죽은 뒤에 불에 탄 돼지의 입안은 재가 하나도 없지 않은가 ? "
"과연 사또 어른은 정말로 귀신 같은 어른이시오.

이런 일 까지 어떻게 알고 계셨을까 ? "
방청객 들은 사또의 지혜로움에 혀를 내두르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사또는 다시 방청객을 굽어 보며 말했다.
"지금 여러분 앞에서 직접 실험을 해 봄으로써 살아서 불에 탄 돼지와

죽은 뒤에 불에 탄 돼지의 입안 상태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모두 아셨을 것이오.

그점에 대해서 아직도 의혹을 품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오."

그러자 방청객들이 입을 모아 외친다.
"사또 어른은 실로 귀신같은 분입니다."

"나는 귀신이 아니고 사람이오."
이호범은 방청객들의 칭송을 가볍게 받아 넘겼다.
"우리가 이미 돼지를 가지고 실험을 하였으니

이제부터는 저 여인의 죽은 남편의살펴 보도록 합시다.

저 여인의 주장대로 남편이 불에 타죽은 것이라면

입안에 재가 쌓여 있을 것이요,

만일 저 여인이 남편을 죽인후 불을 질렀다면 입인이 깨끗할 것인즉,

죄가 있고 없음은 조만간 드러나게 될것 이오.."

"여봐라 ! 죽은자의 시체를 옮겨 오거라."
사또는 자신에 찬 어조로 형리에게 명했다.

동헌 마당으로 옮겨진 죽은자의 시체는 형리와 방청객 수 인이

번갈아 입안을 살펴 보았다.

그런데 죽은 자의 입안은 매우 깨끗했다.
"사또, 죽은자의 입안은 깨끗 하옵니다."

검안을 한 형리가 대청에 좌정한 사또에게 아뢰자

함께 시체의 입안을 살펴본 방청객이 고개를 끄덕였다.

"와아 ! " 순간, 방청객의 탄성이 튀어 나왔다.
"조용...! 조용...!"

사또의 곁에 입시하여 있던 이방이 자신도 사또의 다음말이

궁금하기 이를데 없어, 방청객들의 탄성을 제지했다.

사또는 자리를 고쳐 앉으며 찌렁 찌렁한 어조로 말했다.
"죄수는 듣거라. 네가 남편을 죽여 불에 태운 증거가 이렇게 뚜렸한데,

아직도 자백을 못하겠느냐...!"

죄수는 더이상 무죄를 주장 할수 없었던지,

별안간 땅에 푹 엎어지더니 소리 없이 울기만 하였다.

방청객들은 사또의 현명함에 혀를 내두르고,

남편을 죽인후 죄를 감추기 위해 불을 지른 간악한 계집의 소행에 혀를 찾다.

방청객 중에 일인이, "우리 고을 사또님이야 말로 천고에 없는 명관이시다 !"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이구 동성으로 "암, 암" 하면서 같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박수를 일제히 쳤다.

이에 사또는 자신찬 어조로 최후의 판결을 내렸다.
"여봐라 ! 저런 계집은 꼴도 보기 싫다 !

저년을 당장 끌어내어 처단해 버려라 !"

이렇듯 문천 군수 이호범이 백성들로 부터 '천고에 없는 명관' 으로

칭송을 받게 된 것은, 김삿갓의 덕택이었음은 새삼스레 말할 것도 없다.

이호범이 최후의 판결을 내리고 관사로 돌아오니

김삿갓은 어느새 먼저 돌아와 기다리고 있었다.

"사또께서 오늘 명 판결을 내리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하며 사또를 반갑게 맞아주는 것이 아닌가 ?

이호범이 김삿갓에게 절을 올리며 말한다.
"제가 백성들로 부터 과분한 칭송을 받게 된 것은 오로지 선생의 덕 이었습니다.
선생이 아니 계셨더라면 제가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 했을까를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합니다."

김삿갓이 사또의 몸을 잡아 일으키며, "사또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시옵니까.
天道가 무심치 않고, 세상만사가 사필귀정이다 보니

이같은 결과를 얻게 된것 이지요.

재판을 공명 정대하게 하시느라 노고가 매우 크셨습니다."
사또는 즉석에서 술상을 차려 오게 하여 김삿갓에게 술을 권하며 말했다.
"선생에게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