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김삿갓

방랑시인 김삿갓 (48) *다시 찾은,아는 이 없는 쓸쓸한 안변거리.

우현 띵호와 2021. 9. 26. 23:52

방랑시인 김삿갓 (48) *다시 찾은,아는 이 없는 쓸쓸한 안변거리.
김삿갓은 행복했다.
곱단이와의 신혼생활은 지난해 가련이와 보낸 시간보다 더 자유롭고 즐거웠다.
노처녀를 여위지 못할 줄 알았던 곱단 어머니는 가히 사위가 자랑스러웠고,

천하의 시객을 남편으로 맞은 곱단이는

김삿갓을 온갖 정성으로 섬기고 사랑했다.

그런 시간은 일년이 넘었고

뜰앞에 오동나무는 다시 가을 소리를 내고 있었다.
未覺池塘 春草夢 / 階前梧葉 巳秋聲
미각지당 춘초몽 계전오엽 사추성

연못가에 피어난 봄풀은 꿈도 깨지 못했는데

뜰앞에 오동잎은 벌써 가을 소리를 내는구나.

사람이 사는 인생의 부귀영화가 다 무어란 말인가.

오늘, 가을 바람에 떨어지는 오동잎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지 아니한가 ?

"내가 또다시 이렇게 안일한 생활만 해서는 아니 될텐데 .... "
김삿갓은 자기 자신도 알수 없는 묘한 자책이 또 고개를 들기 시작 했다.

조상이 지은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 세속의 허무함을 잊기위해서

삿갓을 쓰고 떠난 내가, 사년이 다 되도록 고향에도 가지 않고

떠돌아 다닌 결과가 겨우 이렇듯 안일한 생활을 하기 위해 였던가 ?

차라리 이렇게 살바에는 고향에 가서 농사를 짓고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야 할것 아닌가 ?
늙은 어머니가 지금도 살아계신지 돌아 가신지도 모르겠고 ,

집을 떠나기 전 배가 불러왔던 아내는 아이를 잘 낳아 키우고 있는지 ? ..

온갖 궁금증이 그를 짖눌렀다.

드디어 가을 바람이 일기 시작하자

삿갓의 마음은 향수에 사로잡혀 들뜨기 시작했다.

더구나 곱단이가 태기가 있는지 배가 불룩해 오는 것을 보니

고향에 아내 생각이 더욱 간절했다.
(내가 고향에 다니러 간다고 하면 곱단이가 펄쩍 뛸텐데 , 어떡하나 ...)
이런 생각에 잠겨있던 어느날 그는 꿈을 꾸었다.

그것은, 고향집 어머니 방에 가족이 모여들어 임종을 지켜보는 꿈이었다.
머리에 수건까지 두른 어머니 머리맡에는 약사발을 놔둔채 모두 모였는데

"우리 병연이만 오지 않는구나." 하며

병석의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었다.

삿갓이 안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내가 하는 말이
"아이구 여보 , 진작 좀 오시지 ! " 하며 울고 ,

병석의 어머니는 가냘픈 눈을 떠서..

"병연이 이 불효 막심한 놈아 이제야 오다니.." 하며

그만 , 운명하는 꿈이었다.

"아이구 어머니 ! "
그는 꿈결에 소리를 지르자 옆에서 잠을 자던 곱단이 잠을 깨며,
"여보 ! , 당신 무슨 꿈을 꾸셨기에 소리를 지르십니까 ? "

하며 팔을 흔들어 주었다.

"음 .. 그랬나 ? "
"다 큰 양반이 잠결에 어머니를 찾으세요 ? "
곱단이는 모로 누우며 그렇게 말을 했지만 ,

삿갓은 벌써 단천을 떠나 고향길에 오르는 상상에 사로 잡혀 있었다.

(그렇다. 근본을 무시하고 사는 것은 아니될 일이다.

할아버지만 조상이고 날 낳아 키워주신 어머니는 조상도 아니란 말인가 ? )

이튼날 아침 ,

삿갓은 아내가 없는 틈을 타 행장을 차려입고 장모를 찾았다.

"아니 , 갑자기 어디를 가려는 차림인가 ? "

장모는 눈이 동그래져 물었다.

"아네요. 제가 언젠가도 말씀을 드렸지만

안변 사또가 저를 무척 아껴 주셨는데,

어젯밤 꿈에 보이기로 무슨 변고라도 있는가 싶어,

바람도 쏘일겸 안부삼아 다녀오려고 합니다."

"글쎄 집에만 있으려니 갑갑하기도 하겠지만 ,

곱단이 바느질 심부름 다녀 온 후에 보고 가지 갑자기 이렇게 ... "

장모는 딸이 없는데 행장을 차려

사위를 떠나 보내는 것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허허, 장모님두 ,

대 엿새면 다녀 올 것을 꼭 만나보고 가야 하나요.

나가다가 만나게 되면 말을 해 두지요."
"글쎄 그래도 상관 없겠지만 ... "
삿갓은 이렇게 말을 하고 인사를 한 다음 성큼성큼 걸어나와 재를 넘었다.

반짓 그릇에 간단하게 못 보고 가서 미안하다는 글을 써놓고 나오기는 했지만 ,
"혹시 곱단이를 만나면 어떡하나" 걱정을 하였다.
공연히 거리에서 만나게 되면 눈치빠른 곱단이에게 붙들려 ,

들어가야 될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히 곱단이를 만나지 않은 채 삿갓은 마을을 벗어났다.
모처럼 방랑의 길을 나서니 기분이 날아갈듯 상쾌했다.
길을 떠난지 사흘만에 안변을 밟았다.

벌서 일년이 넘었지만 거리는 그때나 다름 없었고

고향을 찾아 온듯 반갑기만 한 안변의 산천이다.
누구 보다도 가련이가 보고 싶었다.
"음.. 가서 하룻밤 회포나 풀고가자."

이렇게 생각한 김삿갓은 가련의 집앞에서 뛰는 가슴을 억누르며

젊잖은 소리로 사람을 불렀다.

"이리오너라."
그러나 대답도 없고 인기척도 없었다.
이상한 예감에 사로잡힌 삿갓은 다시한번 불러 보았다.
"이리오너라."
그때서야 한 사나이가 동저고리 바람으로 대문을 삐끔 열고 내다본다.
"누굴 찾으시오 ? "
"여기 혹 가련이란 기생이 지금도 ..."
"댁은 가련이와 어떻게 되오 ? "
사내는 턱을 들어 아니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글쎄 이렇게 찾아 온 것은 아는 사이니까 찾아오질 않았겠소 ? "
"허 .. 늦었수다. 가련이는 죽었다오 ! "
"예~ ?"
"허, 이양반 그것도 모르고 찾아왔구려. 왜 지난해 봄에 목을 매달았다지 .."
"예엣 ? .. 자결을 ? "

김삿갓은 피가 거꾸로 도는것 같았다.

뒷통수를 얻어 맞은듯 정신이 아찔했다.

지난날 가련과 헤어질때

가련이 했던 마지막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꼭 돌아 오셔야 해요.

만약 동짓달까지 서방님이 돌아 오시지 않는다면 가련이는 죽고 말거예요.
네 ? 저를 살리려면 꼭 그때까지 돌아오세요 ....")

가련이 자살은 자기와의 이별이 큰 원인인 것이 아니었나

생각하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한동안 멍하니 서있던 김삿갓이 다시 정신을 차리고 쓸쓸히 물었다.
"혹시 죽기전에 남긴 말이라도 있는지 .... "
"허..그 양반, 가련인가 그 기생이 죽고난 한참후에 이집을 사서

이사를 온 내가 그걸 어찌아오 ? "
하고선 대문을 닫고 안으로 사라진다.
"허..이런 변이 있나 ! ... "

삿갓은 홀로 탄식을 거듭하다 가련의 집에서 돌아 나오는 길에

마음이 하도 울적하여 가까운 주막에 들려 술을 청했다.

주모가 날라온 술을 한잔 마신 삿갓은,
"혹시 저 안마을에 가련이가 왜 죽었는지 아오 ?" 하며 물었더니.
"아... 왜 그 기생노릇 하던 가련이요 ?

서방인가, 남방인가 ? 못된 놈 떠나 보내고 기다리다 지쳐,

들어 누웠다가 불쌍하게도 불현듯 목을 매달았다지요. 아마 ? "

"......"
더 물을 필요도 없었다.
삿갓은 몇 사발 술을 더 벌컥벌컥 마시고 다시 물었다.
"본군 사또님은 안녕하시죠 ? "

"호호 .. 손님은 없는 사람만 찾으시네요. 사또님도 새로 갈리셨지요."
"네에 ? 그럼 먼저 사또님은 어디로 가셨소 ? "
"그야 모르죠. 들리는 애기로는 관직에서 떠나,

출세한 아드님 임지로 두 양주분이 가셨다죠 .아마 ? "

"...."
오늘 ,김삿갓이 만난 안변은 불과 이태 전까지와 전혀 다른 안변이었다.
인생무상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는 쓸쓸한 가슴을 안고 혼자 고개만 주억거리며

주모의 말을 듣다가 주막을 나왔다.

황혼이 밀려오는 안변 거리를 거닐면서

쓸쓸한 회포를 달랠길 없는 김삿갓,

마음을 담은 시 한수를 읊으며 안변의 거리를 떠돌았다.
한번 이별한 뒤 어찌 잊고 견디었겠나
네 뼈는 가루가 되고 내 머리는 서리가 되었구나.
난경은 그림자 싸늘해 봄이와도 적적할게고
퉁소는 소리가 끊어져 달도 아득하구나
일찌기 북위의 귀계곡을 부르며 이별했고
헛되이 주남의 채조장을 저버렸구나
옛 길 흔적 없어 찾기 어려우니
수레를 머무르고 앉아 들꽃의 아름다움만 사랑했도다.

一從痛後 豈堪忘 / 骨汝衛粉 我首霜

(일종통후 기감망 / 골여위분 아수상)

鸞鏡影寒 春寂寂 / 風영音斷 月茫茫

(난경영한 춘적적 / 풍영음단 월망망)

早吟衛北 歸자曲 / 虛負周南 采조章

(조음위북 귀자곡 / 허부주남 채조장)

舊路無痕 難再訪 / 停車坐愛 野花芳

(구로무흔 난재방 / 정차좌애 야화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