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김삿갓

방랑시인 김삿갓 (01-47)

우현 띵호와 2021. 9. 26. 23:52

방랑시인 김삿갓 (47) *(뒷동산 밤송이는 벌이 쏘지 않아도 벌어지고 , 시냇가 수양버들은 비가 오지 않아도 잘 자란다.


다음날 , 최백호는 자기 부인을 시켜 곱단이네 집으로 미리 통지를 보내고

삿갓에게는 새옷을 한벌 갈아 입힌후,

그를 데리고 재넘어 곱단이 집을 찾아갔다.

곱단의 집은 재넘어 남향에 자리잡은 조그만 기와집으로

마당 앞에는 한참 장미가 꽃피우고 있었고 손님이 온다는 +

기별이 있어서 그런지 집안은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하였다.

"이리오너라 ! "
안마당을 지나 대청앞에 가서 최백호가 크게 부르니 부엌에서

한참 음식준비를 하던 곱단 어미가 앞치마 바람으로 뛰어나와,
"어머나 ! 백호어른 이렇게 와주셔서 ... "
하며 부산하게 두 사람을 사랑으로 안내했다.

사랑에 나란히 앉은 두 선비는 무언중에 희색이 만연한데

오늘따라 김삿갓이라는 시인이 자기집 까지 찾아온 지금의 곱단이는

뒷곁 소나무 아래를 왔다갔다 하면서 무슨 일이라도 하는척 하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며 가슴을 졸이고 있었다.

한편 김삿갓은 곱단이 집에는 왔으되 그 처자의 얼굴은 보이지 아니하고

뒤뜰에서 오가는 짧은 치마를 입은 처자의 하얀 종아리만 언뜻언뜻 보았을 뿐이다.

상이 들어오기까지 무료했던 최백호는

"김선생 먼 빛이나마 곱단이를 보았으니 ,

이따가 곱단이에게 보여주게 한 수 지어 보시지요."
하고 웃으며 말을했다.

"글쎄요. 뭐 갑자기 생각이 나겠습니까만 한 수 써 볼까요 ? "
김삿갓은 곱단이가 쓰는 것으로 보이는 붓을 들어 한 수를 적었다.

규중처자대여양 / 완착분홍단포상

(閨中妻子大如孃 / 緩着紛紅短布裳)

적각근창착과객 / 송필심원화향농

(赤脚근창着過客 / 松筆深院花香弄)

규중 처녀가 다커서 어른같은데 ,

분홍빛 짧은 치마를 느슨하게 입었구나

붉은 다리가 드러나 과객에게 보이기가 부끄러운듯 ,

소나무 울타리에 숨어 꽃 향기를 희롱하누나.
곱단이의 지금 표정을 그대로 읊은 시였다.

"허어, 곱단이가 좋아하겠습니다."
"원 ,별 말씀을 .... "
잠시후 주안상이 떡 벌어지게 나왔고 , 이어 곱게 단장한 곱단이가 나왔다.

"자, 뭐 딴 뜻은 아니고 서로 문장을 나누고 담론도 할겸

자리를 마련해 보는 것이 어떻겠나 했던차에 ..."

최백호가 말을 하자 곱단에미가 말을 받는데,

" 암요 , 그렇구 말구요. 선비님이 워낙 문장이 높으셔서

아이에게 글도 가르쳐 주실겸 자주 놀러 오세요." 하며 말한다.

그러자 김삿갓은,
"허허, 이거 과객에게 너무 과분한 배려를 하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곱단이는 속으로는 기뻐도 말 한마디 못하고 앉아만 있는데 ,
"애야 , 선생님들이신데 어떠냐 ? 술도 따라 올리고 애기도 좀 하려무나."

곱단 에미가 딸에게 다정하게 이른다.
"어머나 어머니도 어떻게 ..."
상냥하게 웃음짓는 곱단이는 서글서글한 김삿갓 시인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으나,

이렇다 말이 없이 술상 앞에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그때 최백담이 잊었다는듯
"참, 지금 막 김선생이 곱단이 주려고 시를 한 수 지었는데 읽어보아라."
하며 백지를 건네주자 곱단이가 보고 ,

"어머나 오시자마자 어쩌면 ...."
자기의 모습을 멀리서 보고 지은 김삿갓의 시를 흥미롭게 되새겨 보았다.
다음날 부터 김삿갓은 혼자서 곱단의 집을 찾아가니

 

그 어머니도 반겨주었고 노처녀 곱단이는 밤이 이슥하도록 시를 짓고

글을 읽으며 삿갓 선생과 즐기기를 마지 않았다.

이렇게 곱단이를 알게 된 삿갓은 최백호에게는 미안했지만

단천 땅을 떠날 생각도 하지 않고 한달이 되고 또 한달이 보름이 되도록 묵었다.

마을 사람들은 두 사람을 두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곱단이가 삿갓 선생에게 단단히 반했다는군..."
"아냐 , 그 삿갓 선생이 곱단이 보다도 더 하다던데 ..."
"그러게 연분이 따로 있지 뭐야 ,

영 차고 넘쳐서 시집 못갈 줄 알았던 곱단이가...."
"글쎄 말이야. 벌써 그 삿갓이 곱단이 뱃속에 애를 넣었다는군."
"아이구 망칙해라 , 늦게 배운 도둑질이 날새는 줄 모른다더니

벌써 그렇게 꿀맛을 보았나 ?"

이렇게 있는 말 없는 말이 파다하게 나돌자

어느날은 곱단에미가 딸을 불러 말하는데,

"애, 요즘 마을에 떠도는 소문이 너하고 삿갓 선생하고,

이상한 말들이 계속되고 있는데 이제 삿갓 선생을 그만 오시라고 할까 ? "

하며 곱단이의 의향을 떠 보았다.

"아이참 , 어머니도 ..그 선생님하고 저 하고 무슨 망측스런 일이 있다고 그러세요.
행여 ,소문이 그렇더라도 내내 오시던 분을 어떡해 그만 오시라고해요.."

곱단이가 펄쩍뛴다.
("음..네가 단단히 마음에 두고있구나...")
곱단 어머니는 그렇게 생각하고 아주 결말을 낼 속셈으로 말한다.

"글쎄 무슨 소문이 나더라도 너만 잘하면 그만이다만

기왕 너도 혼기를 놓쳤으니 , 더 이상 말썽이 나기전에

아주 그사람 하고 성혼을 하던가 하렴.

보아하니 고향도 냉큼 갈것 같지도 않고 데릴사위 감으로도

그만하면 무던하겠더구나." 그러자 곱단이 얼굴을 붉히며 말하는데,

"어머니도 좋으시다면 그렇게 하지요." 하며 못이기는 체 승낙을 하였다.
"하룻밤에 천리를 간다 하던가 ? " ..

곱단 어미로 부터 곱단의 의사를 전달받은 최백호는 김삿갓과 곱단이의

성혼을 급전직하로 진행했다.

그런 유월 어느날, 드디어 곱단이네 마당에서는 조촐한 혼인잔치가 벌어졌다.
"허허, 내 이렇게 될줄 알았지 ! "
"암 , 노처녀가 그런 선비를 마다 할리가 있나 ! "
"글쎄..걸인 시인이 새처녀 얻고 땡잡았지 뭐 ..."
잔치에 온 동리 사람들은 이렇게 말도 많았다.

삿갓은 혼례에서의 절차와 인사를 모두 치루고 밤이 이슥해서야

곱단이와 오붓한 첫날밤을 맞게 되었다.
김삿갓은 문득 고향의 아내를 생각 하였다.

이렇게 객지에 나와 새장가를 가게 되어 미안하지만 ,

대장부가 객지에서 소실 하나 얻는것쯤 어떠랴 하고 스스로를 용서했다.
그리고 아내와의 그때를 생각하면 , 너무 어릴때 일이라서 제대로

신랑 노릇 못했던 일이 떠올랐다.

(오늘밤은 멋있는 신랑이 되어보자 ! )
그는 아랫목에 앉아 여러가지 감회를 억누르고 윗목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곱단이를 정겨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날이 더웠다. 아니, 남들의 눈을 피해 방문을 꼭꼭 닫았기에

곱단이도 김삿갓도 송송 땀을 흘렸다.

"곱단이 오늘따라 더욱 곱구만 ..."
삿갓이 웃으며 입을열자
"고단하실텐데 그만 주무시죠.'
그러면서 깔아 놓은 금침을 매만진다.

삿갓이 먼저 겉옷을 벗고 자리로 들려하자,
"제옷도 벗겨주셔야죠."
곱단이가 고개를 숙인채 한마디 한다.
"참, 그걸 잊었네..."
삿갓은 곱단의 저고리 고름을 풀었다.
"이제 됐나 ? "
삿갓은 곱단이가 규중처녀라 그런지 주막 안주인이나 가련이와는 느낌이 달랐다.

어쩐지 여자를 다루는 자신감도 떨어지고 서툴기 조차 스스로 느껴졌다.
"호호 , 먼저 자리에 드세요."
방안에 불이 꺼지고 신부가 삿갓의 옆에 살며시 다가왔다.
신랑은 먼저 신부의 몸을 매만지며 마지막 걸친 속옷을 헤치기 시작했다.
신부는 몸을 뒤채고 흥분해 떨고 있었다.

삿갓은 신부의 부푼 젖가슴을 끊임없이 애무했다.
그리고 손은 점점 밑으로 내려갔다.

"아유 , 자꾸 이러시면 ..."
곱단은 몸을 비틀며 끙끙거렸다.
"허허, 참 곱구나 가만 있어라."
삿갓은 숨이 턱까지 차올라 색색 거리는 신부의 몸을 한참동안 어루만지다,

드디어 마지막 남은 절차를 위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십 여년 간 굳건히 지키고 있던 곱단이의 처녀성에 자신을 입성시켰다.
그러나 그순간 , 김삿갓의 실망은 너무도 컸다.
"아니 , 처녀가 이럴수가 ? ...."
삿갓은 갑자기 하던 짓을 멈추고 앉아 , 곰방대를 물었다.
그리고는 뻐끔뻐끔 담배를 피워댔다.
(아.. 역시 노처녀란 이런 것인가 ?)
이제까지 삿갓 자신이 상대했던 여인과 너무도 다른 곱단이를 의아하게 여겼다.

"왜 그러세요. 갑자기? "
"아니다 . 어서 자거라."
그리고 삿갓은 불을 켜고 머리맡에 문갑에서 붓을 찾아 들고

백지에 글 한 자를 써 놓았다.

手深內闊 必過他人 (수심내활 필과타인)
털이 깊고 속이 넓으니 반드시 다른 사람이 지난 자취로다.

새신랑이 첫날밤을 치루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

난데없이 불을 켜고 담배를 피우질 않나 ? ..

붓을 들어​ 글을 쓰질않나 ,

가만히 이불 속에서 기다리던 곱단이 눈을 들어 쳐다보니,

새신랑 얼굴이 한심 투성이었다.

그러자 곱단이는 몸을 일으켜 새신랑이 써 놓은 글을 보고서야 ,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는 듯이 수치와 분노의 얼굴빛을 감추지 못하더니,

새신랑이 쓰고 던진 붓을 들어 아래와 같이 써내려갔다.

後園黃栗 不蜂坼 谿邊楊柳 不雨長

(후원황율 불봉탁 계변양유 불우장)

뒷동산 익은 밤송이는 벌이 쏘지 않아도 저절로 벌어지고

시냇가의 수양버들은 비가 오지 않아도 스스로 잘 자란다.

이렇게 써 놓고 신부는 그만 ,

복받치는 설움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엎드려 흐느낀다.

삿갓은 그때서야 자신의 잘못을 크게 뉘우쳤다.
(여자의 옥문이란 실로 미묘하여

안변 주막집 안주인 같은 호로형이 있는가 하면,

함흥 주막집 여자처럼 항구형도 있으렸다.

그렇다면 곱단이는 세숫대야 형이던가 ?
허허 ..거 참 알수 없군 ! )

"곱단이 내 잘못했네, 제발 눈물을 멈추지 ..."
그날 , 김삿갓은 새벽 동이 트도록 곱단이를 달래며 밤을 꼬박 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