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김삿갓

방랑시인 김삿갓 (149) *장사꾼의 본성 (本性).

우현 띵호와 2021. 9. 29. 23:06

방랑시인 김삿갓 (149)
*장사꾼의 본성 (本性).

김삿갓은 시체 옆에 놓여 있는 말(斗)을 가르키며 말했다.

"또 하나의 증거품은 바로 이 말이옵니다.

이 됫박은 전명헌이가 쌀가게에서 쓰던 됫박 입니다.
이 됫박은 밑바닥이 이중으로 되어있어서,

정규 됫박보다 쌀이 훨씬 적게 들어가게 되어 있을 것 이옵니다."
"바닥이 이중으로 되어 있다니 ? 그게 무슨 소린가 ?"
"제 말씀을 믿지 못하기겠거든, 이 자리에서 저 됫박을 해체해 보십시오.

저 됫박은 반드시 쌀이 적게 들어가는 장치로 되어 있을 것이옵니다."
김삿갓은 문제의 됫박을 직접 본 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장담을 할 수 있는 것은,
마을 사람들이 들려준 말이 결코 거짓이 아닐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또가 사람을 시켜 됫박을 분해해 보니,

과연 그 됫박은 밑바닥은 쉽게 눈에 띄지도 않을 뿐 만아니라.

알기 어렵도록 두꺼운 나무로 덮혀 있었다.

"자네 말대로 이 됫박은 밑바닥이 이중으로 되어 있네그려. 원, 이럴 수가 있나 ! "
사또는 놀라기만 할 뿐 , 크게 격노하진 않았다.

이것을 지켜 본 김삿갓은 목민관(牧民官)이 이럴 수가 있나,

하며 은근히 부하가 치밀어 말했다.

"이자는 가난한 백성을 이런 방식으로 두고두고 속여 먹었으니,

이런 악독한 놈은 백 번 죽어 마땅한 것 같사옵니다."

그러나 김삿갓의 말을 듣은 사또의 태도는 의외였다.
"이 사람아 ! 장사꾼이란 워낙 사람을 속여먹는 것이 본업이 아닌가.

남을 속여먹는 것을 잘한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장사꾼들은 그럴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

사또는 뇌물을 얼마나 많이 받아먹었는지,

전명헌이라는 자를 두둔하는 태도로 나왔다.

김삿갓은 세상에 이런 악질 사또도 있는가 싶어 비위가 크게 거슬렸다.

그래서 얼른 이렇게 말했다.
"이 문제는 일단 해결된 셈이니, 이제는 시생에게 상금을 내려 주시옵소서."
"주지 ! 주구말구. 상금을 줄 테니 나와 선화당으로 가세."
그리고 동헌으로 오면서 말한다.

"자네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데 비상한 머리가 있는모양일세그려.

이왕이면 다른 문제도 하나 더 해결해 주게나."

"사또께서 해결해야 할 사건이 또 있다는 말씀입니까 ? "
"쌀장사 전명헌이가 왜 죽게 되었는지,

그 원인은 자네의 말을 듣고 잘 알았네.

그러나 그자를 죽인 범인도 이 기회에 꼭 잡아야 할 게 아닌가.

그 범인도 자네가 잡아 주었으면 좋겠네."

그러나 김삿갓은 그 범인까지 잡아 줄 생각은 없었다.
왜냐하면 쌀장사에게 빈민들이 착취를 얼마나 심하게 당해 왔으면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겠느냐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범인도 꼭 잡아야 하는 것이옵니까 ?"
"사람 하나쯤 죽인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한 일이겠나.

그러나 이번 범인은 내가 꼭 잡아내야만 내 체면이 서겠네."

"범인을 꼭 잡아야 사또의 체면이 서겠다는 것은 무슨 뜻이옵니까 ?"
"이왕 말이 났으니 모든 것을 솔직히 말해줌세.

전명헌이라는 자는 평소에 쌀장사를 하면서 경제적으로

나를 많이 돕던 사람일쎄, 그런 사람이 살해되었으니,

유가족에게 원수를 갚아 주기 위해서도

그 범인만은 꼭 잡아내야 할 게 아닌가."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 기가막혔다.

사또란 자가 범죄 사건을 공평하게 다룰 생각은 안하고,

평소에 뇌물을 많이 갖다 준 악날한 쌀장수의 원수나 갚아 줄 생각만 하고 있으니,

도데체 백성은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

상금을 내걸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김삿갓은 범인을 잡는 일에 동의할 생각이 없었다.

이러한 와중에 두 사람은 동헌에 당도하였다.

사또는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그 사이에 깨끗하게 잊어 버렸는지,

김삿갓에게 상금 백 냥을 건네며 이런 말을 한다.

"내가 보니, 자네는 머리가 비상한 사람인 것 같아 말하는데,

따로 부탁 할 일이 하나 있네."

"특별한 부탁은 무슨 일이옵니까 ?"
김삿갓은 사또의 허실부실한 태도가 오히려 흥미롭게 느껴졌다.

그러자 사또는 큰기침을 한 번 하고 나더니,

수염을 새삼스레 쓸어내리며 이렇게 말을한다.

"자네는 한양 사정을 잘 모르겠지만,

내 가문은 한양 명문 대가인 간동 대감댁 집안이라네.

간동 대감은 바로 나의 할아버님 되시는 어른이란 말일세.

자네는 의 명성을 들어 본 일이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