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김삿갓

방랑시인 김삿갓 (151)

우현 띵호와 2021. 9. 29. 23:07

방랑시인 김삿갓 (151)
*즐거움은 끝까지 누려서는 못쓴다(樂不可極 : 낙불가극)

순천 사또 류현진은 돈이면 안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 탓인지,

말끝마다 고 강조하기를 잊지 않는다.

김삿갓은 그때마다 형용하기 어려운 모욕감을 느꼈다.

선비를 돈으로 매수하려는 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 아니런가.
(돈밖에 모르는 이런 놈을 어떡해야 골탕을 먹일 수 있을까.)
김삿갓은 지그시 눈을 감고, 속으로 그런 생각만 하고 있었다.

김삿갓이 좀처럼 응낙할 기색을 보이지 않자, 사또는 초조한 모양인지,
"여보게 ! 돈을 많이 준다는데, 무엇을 주저하는가 ? 어서 시원하게 대답하게나."
김삿갓은 탐관오리의 자식에게 글을 가르쳐 줄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그러나 이런 기회에 사또를 멋지게 곯려 주고 싶은 생각이 들어,

"좋습니다. 제가 자제분을 맡는다면 보수는 얼마나 주시렵니까 ?"

하고 눈 딱 감고 물어 보았다.
이왕이면 돈도 우려내며 골탕을 먹이려는 속 셈이었다.
"아까도 말을 했지만, 보수는 자네가 요구하는 대로 준다니까 그러네,

그러니까 오늘부터라도 우리 집 별당에서 아이와 숙식을 같이하면서,

글을 열심히 가르치도록 하게."

"그러자면 제가 없는 동안 식구들도 먹고 살아가야 하니까,

집에도 돈이 좀 필요합니다.
죄송스럽지만 선금을 얼마간 주실 수 없겠습니까 ? "
"이 사람아. 자네는 조금 전에 상금을 타지 않았는가 ?"
"집에 빚장이들이 와 있어서, 그 돈으로는 빚을 갚아야 합니다.

그러니 저를 붙잡으시려면, 단돈 얼마간이라도 선금을 주셔야 하겠습니다."

"허어 .... 돈이라는 것은 절대로 먼저 주어서는 안 되는 법인데 ....

자네가 꼭 필요하다면, 우선 스무 냥만 먼저 가져가게."
사또는 뒤주 속에서 돈 스무 냥을 꺼내 주면서,
"이 돈은 집에 갔다 주고, 오늘 중으로 꼭 돌아와야 하네."

"고맙습니다. 집에 돈을 갖다 주고, 번개 같이 돌아오겠습니다."
이렇게 사또에게 거짓말을 꾸며대고 밖으로 나오니,

동헌 마당에서 아침부터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던 객줏집 아낙네가

부리나케 달려오며 묻는다.
"사람을 이렇게나 오래 기다리게 하는 법이 어디있시요 ?

상금은 타가지고 나오십네까 ?"

"허어 ... 자네는 나를 기다린 게 아니라, 돈만 기다렸던 모양일쎄그려 ?"
김삿갓은 짐짓 익살을 부렸다.
"돈도 기다리고, 사람도 기다렸지 뭐야요. 정말로 상금은 받으셨넵까 ?"
"상금은 여기 있네. 이 돈은 자네에게 몽땅 줄 테니,

어서 집에 가지고 가서 땅을 사도록 하게."

김삿갓은 사또에게 받은 스무 냥은 술값으로 남겨 두고,

상금 일백 냥을 객줏집 여인에게 몽땅 내 주어 버렸다.

여인은 돈 꾸러미를 받아 들고 어쩔 줄을 모르고 기뻐하며 말한다.
"이 돈을 나에게 몽땅 주면 어떡해요. 빨리 집으로 돌아가 절반씩 나눠 가집세다."

상금을 타거든 절반씩 나눠 먹자고 제안한 사람은 분명히 객줏집 여인이었다.
그러나 김삿갓은 상금을 나눠 먹을 생각은 없었다.

그러기에 너털 웃음을 웃으며 여인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허허허... 나는 상금을 한푼도 나눠 가질 생각은 없네.

그 돈은 자네가 몽땅 가지고 가서 땅을 사란말일세."

"그럴 수는 없시요.

상금을 타거든 절반씩 나눠 갖자고 약속까지 하지 않았습네까 ?"

그러나 김삿갓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나는 돈이 있어 봤자 술이나 먹어 없앨 판이지만,

자네는 땅을 사는데 요긴하게 쓸 게 아닌가.
그러니까 아무 소리 말고 상금을 고스란히 가지고 가란 말이야."

"정말로 이 돈을 나에게 죄다 주신다는 겝니까 ?"
"이 사람아 ! 사잇서방도 서방임에 틀림이 없지 않은가 ?

서방이 마누라에게 돈을 준다는데,
무슨 놈에 말이 그렇게도 많은가 ? 안그래 ? 하하하..."

김삿갓은 한바탕 웃어 보이고 나서,
"나는 이제부터 볼일이 있으니, 자네는 어서 집으로 돌아가게."
여인은 혼자 돌아가라는 소리에 적이 실망하는 빛을 보이며,
"오늘밤도 우리 집에서 주무셔야 하지 않습네까 ?"
오늘밤도 특별히 봉사를 잘 해 주겠다는 암시성의 말을 한다.

그러나 김삿갓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 사람아 ! 하루밤쯤 재미를 더 보려다가,

본서방이 돌아오는 날이면, 나는 다리 몽둥이가 부러질 판이 아닌가 ? 는 옛글이 있네.
그러니 우리 이제는 그만 헤어지기로 하세."

김삿갓이 이렇게 말을 하자 여인은 아직도 미련이 남는지,

말은 못 하고 눈물만 글썽 거리는 것이아닌가.

두 사람은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다가 우연히 만난 남녀간이었다.

그러나 사흘 밤이나 정을 나눈 탓인지, 여인은 얼른 발길을 돌리지 못한다.
"나는 사또와 다시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으니, 자네는 돌아가란 말이야.

어쩌면 지금쯤 남편이 돌아와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일이 아닌가 ? "

여인은 그제서야 당황하는 빛을 보이며, 부랴부랴 귀로에 오르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