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김삿갓

방랑시인 김삿갓 (147) *드디어 풀리는 (상편)

우현 띵호와 2021. 9. 29. 23:06

방랑시인 김삿갓 (147)
*드디어 풀리는 (상편)

"쌀을 외상으로 사거나 현금으로 사거나 수량은 똑같아야 하는데,

전명헌이네 가게에서 외상으로 사온 쌀은 이상하게도 한 말을 사와도

집에 가져와 보면 아홉 되밖에 되지 않는 거에요.
게다가 쌀값에 대해서는 호되게 비싼 이자까지

꼬박꼬박 받아 먹었단 말이에요.
죽은 사람에게 이런 말은 안됬지만, 그 사람은 가난한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으며 살아온 사람이나 다름이 없었다구요."

시골 사람들은 인심이 순박해서 어지간 해서는 남을 비난하지 않건만,

전명헌이가 살해된 데 대해서는 누구도 동정하는 빛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 전명헌이라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외상쌀을 주어가며

고리대금까지 겸해 오다가,누구에겐가 원한을 사서 죽게 된 모양이군요."

"그거야 우린들 알 수 없는 일이지요. 이러나저러나 그 사람은

돈에 얼마나 이골이 났는지, 쌀장사를 해먹는 데도

됫박 밑바닥을 이중으로 만들었다는 소문도 떠돌았지요."
김삿갓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무언가 직감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전명헌이 피살 된 원인은 됫박을 속인 데 있다는 심증이 굳어진 것이다.

그러나 심증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죽은 자의 등골에 씌여 있는,
이라는 글자의 뜻을 분명히 알아내기 전에는, 여전히 수수께끼가 아니던가.

김삿갓은 이날 읍내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염탐을 계속해 오다가,

저녁 무렵에 헛물을 켜고 객줏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어떻습네까 ? 상금은 우리가 탈 수 있겠습네까 ? "
주인 아낙네는 김삿갓의 얼굴을 보기가 무섭게 다그쳐 물었다.
"글세 ! ... 아직까지는 알 수 없지만, 좀 더 알아보면 되지 않겠나 ? ... "

김삿갓은 저녁을 먹으면서도,

바람벽에 써 붙인 이라는 다섯 글자를 자꾸만 바라보고 있었다.

피살된 전명헌이라는 사람이 쌀장사를 해먹었다는 사실과,

범인이 피살자의 등골에 써놓은 사이에는 반드시 어떤 연관성이 있겠는데,

그 연관성이 어떻게 얽혀 있는 것인지 암만해도 알 수가 없었다.
더구나 는 종이 쪽지가 시체 옆에 있었는데, 그것 역시
몽둥이를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 것인지 알 길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저녁을 먹은 뒤에,

주인 아낙네가 밥상을 들어내느라고 등잔불을 옆으로 옮겨 놓는다.
그 순간, 김삿갓은 자리를 옮겨 앉아, 바람벽에 붙여 놓은 을 계속 보고 있었는데,
옮겨 놓던 등잔걸이의 그림자가 이라고 쓴 글자를 산적꼬치처럼

위에서 아래로 꿰어 놓은 듯이 보였다.
그 순간 김삿갓은 검은 그림자에 꿰어있는 다섯 글자를 유심히 보았다.

"앗 ! 이제야 알았다 ! "
김삿갓은 무릅을 탁 치며 호들갑스러운 소리를 질러댔다.
"뭬야요 ! 알아내셨시요 ? "
밥상을 들어 내던 주인 아낙네는 별안간 소리를 지른 김삿갓을 바라보며 묻는다.
"기래 ,기래 ! 이제야 알아냈구먼 ... ! "
김삿갓, 너무도 기쁜 나머지 어설픈 평안도 사투리로 대답했다.
"도데체 비밀이 뭔지 날래 말해주시라요 ! "
주인 아낙네가 반짝이는 눈빛으로 김삿갓에게 채근했다.
그러자 김삿갓은 글을 모르는 주인 아낙이었지만 너무도 기쁜 나머지,

훈장이 학동에게 가르치듯,
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했다.

"등잔걸이 그림자가 , 바람벽에 붙여 놓은 다섯 글자의 한복판에

산적꼬치 꿰 듯 비치면서,
자는 자로 보이고 자는 자로 보이고, 자는 자로 보이고 ,자는
자로 보이고, 자는 자로 보인 것이네, 따라서 란 글자가 드러나 보였고,

이것은 쌀장사가 쌀을 팔아 먹을 때, 올바른 됫박을 쓰지 않고,

쌀이 적게 들어가는 작은 됫박을 써왔다는 뜻이 되는 것이네 ! "

"내레 글자는 모르겠지만 , 쌀장사를 하다가 죽은 놈이 작은 됫박으로

사람들을 쇡혀 먹은 비밀이   탄로났다면 누군가 죽일만 도 했구만요 ! ..."

김삿갓은 주인 아낙네의 말에 아무런 대답 없이,

쓴 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김삿갓이 쓴 웃움을 지은 이유는,
법화경(法華經)에 이르기를 ,

여시인 여시연 여시과 여시보

(如是因 如是緣 如是果 如是報)라는 말이 있는데,

이러한 원인으로, 이러한 인연이 생겨, 이러한 결과를 낳음으로써

이러한 보복을 받게 된다는 뜻으로, 됫박을 속여 쌀을 팔아오다

비명 횡사한 전명헌은 그가 생전에 저지른 죄악에 대한 당연한

천벌이라는 생각이 떨쳐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들이 풀지 못하는 상금이 걸린 문제도 풀었고,

이제는 우리 문제를 풀어야지요 ! "

밥상을 들어낸 객줏집 여인은 설걷이도 미뤄놓고 이불부터 편다.
"어,어 .. ! "
김삿갓은 졸지에 객줏집 여인 손에 이끌려 이불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오늘은 내레,특별히 봉사를 해드리갔시오 ! "
객줏집 여인은 음흉스런 웃음을 웃으며 김삿갓의 사타구니를 더듬는다.
여시인 여시연, 여시과 여시보 ...(如是因 如是緣 如是過 如是報)
(자네 남편에게 짓는 나의 죄는, 내 탓이 아니라 순전히 자네 탓이네 ....)

김삿갓은 여인의 손길을 뿌리치지 못하고 ,

속으로 법화경 경전을 자꾸 중얼거렸다.

女是因 女是緣 , 女是過 女是報 ...

(여시인 여시연, 여시과 여시보 ..)
(여자 (口) 때문에 짓는 죄는, 여자가 갚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