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김삿갓

방랑시인 김삿갓 (160)

우현 띵호와 2021. 9. 30. 23:06

방랑시인 김삿갓 (160)
*불당골에서 일어난 굉장한 사건의 진상.

이 마을 어귀에는 <순천댁>이라는 과부가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객줏집을 하고 있었다.

오늘 석양 무렵에 일행 네 명의 장사꾼들이 그 집에 투숙하게 되었는데

 네 명이 순천댁을 함께 찾아와 일천 냥이 들었다는 돈 주머니를 맡기면서,

"이 돈은 우리 네 사람의 장사 밑천이오.

이 돈을 내일 아침까지 아주머니가 좀 맡아 주시오.

내일 아침에 우리 네 사람이 함께 와서 돈을 달라고 하기 전에는

 어느 누구한테도 이 돈을 주어서는 안되오 ! " 하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순천댁도 <그러마> 하고 돈을 맡아 두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객실에 들어앉아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중에 한 사람만은 술을 마시지 않겠다며

우물가에 나가서 머리를 감고 있었다.

머리를 감고 방에 들어온 사람은 술을 마시고 있는 친구들에게,
"여보게들 ! 머리를 감기는 했는데 빗이 없네그려.

누구 빗 가진 사람 있나 ? " 하고 말했다.
그러자 술을 마시던 세 명의 친구들은,
"이 사람아 ! 우리한테 무슨 빗이 있겠나.

빗이 필요하거든 주인 아주머니에게 빌리게나 ! "
하고 대수롭지 않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커다란 동티였다.
머리를 감은 친구는 방에 들어와 잠시 머리를 매만지다가, 친구들을 향해,
"그래, 자네들이 빗을 가지고 있지 않다니

주인 아주머니에게 빌릴 수 밖에 없겠는걸 ! "
하고 중얼거리며 슬며시 부엌으로 내려왔다.
부엌으로 내려온 사내는 시치미를 떼고 주인 아주머니에게 손을 내밀어 보이며,

"아주머니 ! 아까 우리가 맡겨 두었던 돈 주머니를 이리 내어 주시오."

하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순천댁은 돈을 맡을 때 약속했던 일이 있는지라,

돈주머니를 호락호락 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 돈은 네 사람이 함께 오기 전에는

누구에게도 내 주지 말라고 하지 않았어요 ?"

그러나 사내는 방안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친구들에게

큰 소리로 다음과 같이 외쳐댔다.

"여보게들 ! 아주머니가 좀처럼 주려고 하지 않으니, 어떡하지 ? "

서로 술을 마시며 떠들던 친구들은 주인 아주머니가

빗을 빌려 주지 않으려는 줄만 알고,

"아주머니 ! 걱정 말고 내 주시오.

우리들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오." 하고 대답했던 것이다.

순천댁은 그 말을 <돈을 내 주어도 좋다>는 말로 알아듣고

돈주머니를 사내에게 내 주어 버렸다.

이렇게 사내는 친구들과 순천댁을 교묘하게 속여 가지고

돈주머니를 손에 넣는데 성공했고, 그 길로 줄행랑을 놓아 버렸던 것이다.

김삿갓은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혼자 탄식해 마지않았다.
"원, 친구들간에 그럴 수가 ....

그러나 당연히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일에 불과하군요."

마을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눈이 휘둥그래졌다.
"당연히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난데 불과하다뇨 ? 그게 무슨 말씀이오 ? "

"여러분들도 생각해 보십시오.

장사를 함께 떠난 친구들 사이에 서로를 믿지 못해,

순천댁에게 돈을 맡기면서 <네 사람이 함께 와서 달라고하기 전에는

누구한테도 돈을 내 주지 말라>고 했다니,

그게 어디 친구간에 있을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

그것은 친구간이지만 서로를 믿지 못하는,

도둑놈 심보를 가진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

그러니 도둑놈간에 남에 물건을 가로채 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요. "

마을 사람들도 김삿갓의 말을 옳게 여겨, 제각기 고개를 끄덕였다.
"노형의 말씀이 지당하시오.

친구를 믿지 못하는 것들이 어디 사람인가요 ?

우리들이 이렇게 모여서 긴급 회의를 하는 까닭도 바로 그놈들 때문이라오.

그렇지만 우리가 그런 놈들을 상대하고 싶어서 모인 것은 아니오.

늦은 저녁에 주막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려 오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 우리 늙은이들이 주막으로 달려가 보았다오.

그랬더니 한 놈은 돈을 가지고 도망을 가버리고,

나머지 세 놈들은 순천댁을 상대로 대판 싸움을 하고 있더란 말이오.

싸움의 원인은 간단하지요.

네 놈이 함께 와서 찾아가야 할 돈을 한 놈이 가지고 도망을 갔으니

 세 놈은 순천댁더러 돈을 물어 주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는 거예요.

우리들은 싸움을 말리다 못해, 사태가 암만해도 심상치 않기에,

순천댁을 어떡하면 구해줄 수 있겠는지 모두들 이리로 몰려와서

긴급 회의를 하는 중이오."

김삿갓은 노인들의 고충을 듣고,

장삿꾼놈들의 무지막지한 행패에 새삼스럽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뭐요 ?

그놈들이 순천댁에게 돈을 물어 내라고 행패를 부린다고요 ?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김삿갓이 너무도 단호하게 말하는 바람에,

마을 노인들은 눈을 커다랗게 뜨며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