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김삿갓

방랑시인 김삿갓 (157) *김삿갓의 신수.

우현 띵호와 2021. 9. 30. 23:05

방랑시인 김삿갓 (157)
*김삿갓의 신수.

점쟁이는 먼저 돈부터 챙겨 넣고 나서,

김삿갓의 생년 월 일을 물어 보며 말한다.
"춘하추동 사계절 중에 봄은 이미 지나 갔으니,

여름부터 겨울까지 운수를 보아 드리겠소."

그리고 손가락을 이리저리 짚어 가며 입 속으로 무엇인가

한동안 중얼 거리더니, 여름쾌를 다음과 같이 적어 놓는다.

莫向西方 막향서방
서쪽 방향으로 가지마라

必逢害人 필연해인
반드시 해칠 사람을 만나게 되리라

事事多魔 사사다마
사사건건 마가 끼어들어

必煩意亂 필번의난
마음이 번거롭고 뜻이 어지러우리로다.

점쟁이는 점쾌를 적은 종이를 들여다 보며,
"댁은 지금 어디로 가시는 길이오 ? "
하고 새삼스럽게 가는 곳을 물어 보는 것이다.
"나는 정주를 거쳐 선천으로 가는 길이라오."
점쟁이는 그 소리를 듣더니 고개를 가로 저으며,

"아니오 ! 선천은 이곳에서 서쪽에 해당하니

멋모르고 그쪽으로 갔다가는 큰 봉변을 당하기 싶상이오.

그러니 선천에는 가지 마시오."

김삿갓은 점 같은 것은 별로 믿지 않아 왔다.
그러나 할아버지 관계도 있고 해서 선천에 가기가

어쩐지 찜찜하던 판이었는데,

그런 점쾌가 나왔으니 자신도 모르게 기가 위축되었다.

"선천에 가서는 안 된다는 말씀인가요 ? "
"암 ! 만약에 점쾌를 믿지 않고 선천에 갔다가는 라

목숨이 위태로울지도 모르오 ! "

김삿갓은 장난삼아 쳐본 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선천으로 가면 그렇게나 나쁘다는 점쾌가 나왔으니

 선천으로 가기가 몹시 꺼림칙하였다.

모르고 살아가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라도,

점을 쳐서 이같은 결과를 얻게 된다면

누구나 기분이 꺼림칙해질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선천이라는 고을은 할아버지 때부터 우리 가문하고는

무슨 상극지지(相剋之地)였더란 말인가 ? )

김삿갓은 그러한 생각이 들어,
"서쪽으로 가는 것이 나쁘다고 하면, 어디로 가는 것이 좋겠소이까 ? "

하고 물어 보았다.
점쟁이는 육갑을 짚어 보며 말했다.
"사방지중(四方之中)에 북방최길(北方崔吉)이라,

북쪽으로 가면 좋은 일이 많을 것이니, 북쪽으로 가시오."

"묘향산은 무슨 방향이오 ? "
"묘향산은 영변(寧邊), 희천 (熙川), 강계(江界)와 함께 북쪽에 해당하니

그쪽으로 가는 것이 좋겠소."

"그래요 ? 그러면 묘향산을 거쳐 강계까지 가보도록 하겠소.

그런데 여름 운수는 그렇다치고, 가을과 겨울의 운수는 어떻겠소이까 ? "

이왕 복채를 주었으니,

가을 운수와 겨울 운수도 모두 받아 보고 싶었던 것이다.

점쟁이는 가을 운수를 이렇게 적어 보였다.

만리장강 萬里長江
머나먼 만리장강을

일범순로 一帆順路
배 한 척이 순조롭게 떠간다.

제사유길 諸事有吉
모든 일이 좋고 좋아서

세사태평 世事太平
세상만사가 천하태평하도다 !
"북쪽으로 가면 모든 일이 좋겠으니, 꼭 그 쪽으로 가시오."

김삿갓은 "만리장강에 일범순로"라는 구절이

마치 자신의 모습을 읽어 놓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가을 쾌는 그렇다치고 겨울 쾌는 어떻소 ? "
점쟁이는 잠시 꿈질거리더니
"겨울 쾌도 기가 막히게 좋소."

원행불리 遠行不利
멀리가면 불리하나

재가대길 在家大吉
집에 있으면 크게 좋다

필유귀인 必有貴人
반드시 귀인을 만날 것이니

낙재기중 樂在其中
즐거움이 그 속에 있으리로다.

겨울에는 아무 데도 가지 말고 한 곳에만 머물러 계시오.

그러면 귀인을 만나 즐거움을 크게 누릴 수있게 될 것이오."

김삿갓은 점이란 것을 별로 믿지 않지만,

좋은 점쾌가 나와 기분이 매우 좋았다.

"그러면 영감님 말씀을 믿고 선천에 가기를 단념하고

묘향산을 거쳐 강계로 가기로 하겠소이다."

그렇게 말을 하고 막 일어서려고 하는데,

마침 장에 나온 시골 아낙네 하나가 김삿갓 옆에 털썩 주저 앉으며 점쟁이에게,
"나 점 좀 쳐주시오."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김삿갓은 일어서려다 말고 도로 주저앉았다.

그 여인의 점치는 광경까지 구경하고 일어날 생각이었다.

점쟁이가 여인에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