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김삿갓

방랑시인 김삿갓 (195) *김삿갓의 기행.

우현 띵호와 2021. 9. 30. 23:16

방랑시인 김삿갓 (195) *김삿갓의 기행.
지리산은 전라도와 경상도에 걸쳐있는 엄청난 산으로

둘레에는 크고 작은 10여 개의 고을들이 산재해 있다.

남원은 서쪽에 해당하고, 함양(咸陽)은 북쪽 고을이고,

진주(晉州)는 남쪽 고을에 해당한다.

이렇듯 크고 넓은 산을 넘자니 다리가 불편한 김삿갓으로선,

정상으로 올라가는 것은 감히 엄두를 낼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산허리를 걸어 넘어 진주 방향으로 길을 접어들었다.

그 옛날 진시 황제 시절, 중국 사람들은 초(草)를 구하기 위해,

동남동녀(童男童女) 5백 쌍을 동방에 있는 삼신산(三神山)으로

보낸 일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 삼신산의 하나였던 방장산(方丈山)이 바로 오늘날의 지리산인 것이다.

지리산은 산이 높고 골짜기들도 하도 복잡하기 때문에,

옛날부터 속세와 인연을 끊은 도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다.

김삿갓이 수많은 골짜기를 건너며 깊은 산속으로 들어오다 보니,

물이 콸콸 흘러 내리는 산골짜기 바위 틈에 난데없는 시체가 하나 걸려 있었다.

어느 산중에서 물을 건너다 빠져죽은 사람의 시체가 물길 따라

한없이 흘러내려오다가 바위 틈에 끼여 버린 모양이었다.
(저런 ! 깊은 산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물에 빠져죽다니. 저럴 수가 있을까.)

김삿갓은 남의 일 같지 않아 가슴이 섬뜩해 왔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죽은 사람은 승복을 입은 것으로 보아 스님이 분명하였다.
(승려들이 죽으면 또는 이라 하는데,

저 스님은 어쩌다가 이처럼 비참하게 익사했을까 ? )

사지를 오그린 채 바위 틈에 쥐새끼처럼 옹색하게 끼여 있는 몰골이

너무도 측은해서 견딜 수 없었다.
(에라, 시주는 못할망정 바위 틈바구니에 끼여 있는 스님의 시체를 건져올려,

평평한 바위 위에 편히 뉘어 주기나 하자.)
그렇게 생각한 김삿갓은 두루마기를 벗어 젖히고 시체 인양 작업을 시작하였다.

물이 줄곧 흘러내리고 있는 바위 틈바구니에 꼭 끼여 있는 시체를

햇볕 따듯한 바위 위까지 끌어올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사람은 본시 죽고 나면 통나무처럼 뻣뻣해지는 법이다.

그러나 건져올린 시체는 오랫동안 물에 채여 있은 탓인지,

별로 뻣뻣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시체를 등에 업어 올리기는 싫어,

저고리의 등줄기를 움켜잡고 질질 끌어올리자니 더욱 힘이 들었다.

김삿갓은 시체를 햇볕 잘 드는 바위까지 끌어올려 놓고 나니,

이왕이면 무덤까지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하여 눈을 들어 지세를 살펴보니,

그곳은 좌청룡 우백호의 명당 형국이 분명한데다가,

시체가 놓여 있는 바위 부근에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여기저기 우뚝우뚝 솟아 있어서,

그 바위들이 마치 무덤앞에 일부러 만들어 놓은 문석인(文石人)과

무석인(武石仁) 처럼 보였다.

김삿갓은 죽은 사람이 승복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스님인 것은 알 수 있었지만, 어느 절에 사는 누구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시체를 물 속에서 건져 올려 놓고 보니,

우연하게도 그곳이 바로 명당 자리임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고로 명당 자리는 동남향을 제일로 치는데,

이곳은 좌향(坐向) 부터가 동남향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운명은 자기가 타고난다고 하더니,

이 스님의 유택(幽宅)은 바로 이곳임이 분명한 가 보구나 ! )

김삿갓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이라는 말이 문득 떠올랐다.
옛날부터 인품이 온화하고 행실이 단정한 인물을 이라고 칭찬해 오는데,

시체의 주인공은 비록 익사는 했을망정,

평소에 소행이 단정했기 때문에 명당자리에 눕게 되었으리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아무려나 시체가 누워 있을 자리를 제대로 찾아 주었으니,

이제는 작별을 고하고 길을 떠나야 할 판국이었다.

옛날 시인들은 서로 헤어질 때에는 대개 송별시를 주고받았다.
그때의 시를 이라고 부른다.

김삿갓은 돌아가신 스님에게 주는 을 이렇게 읊었다.
좌청룡 우백호로 명당 자리 분명한데
(靑龍在左 白虎右 : 청용재좌 백호우)

물의 흐름 동남이니 좌향도 좋을시고
(天地東南 流坐向 : 천지동남 유좌향)

물가에는 거북머리 비석도 서 있어서
(龜頭碧波 入短碣 : 구두벽파 입단갈)

하늘을 나는 기러기가 문상을 오는구나.
(雁足靑天 來弔喪 : 안족청천 내조상)

이렇게 송별시 한 수를 읊조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합장배례하며 작별인사를 고했다.

"소생 김삿갓은 고승(高僧)께서 뉘신지는 모르옵니다.

그러나 명당 자리를 택해 정성껏 모셨사오니,

일체의 번뇌를 해탈하시어 기꺼이 왕생극락을 하시옵소서. 상향(尙饗)"
이것은 실로 김삿갓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할 수 없는 기행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