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김삿갓

방랑시인 김삿갓 (200,마지막)

우현 띵호와 2021. 9. 30. 23:17

방랑시인 김삿갓 (200,마지막)
*승피백운 우화등선 (乘彼白雲 羽化登仙)

돌이켜보면 기구하기 짝이 없었던 50 평생이었다.

그러기에 혼미한 의식 속에서 자신의 생애를 회고하며

김삿갓은 다음과 같은 마지막 시를 읊기 시작하였다.

날짐승도 길짐승도 제 집이 있건만
(鳥巢獸巢皆有居 : 조소수소개유거)

나는 한평생 혼자 슬프게 살아왔노라.
(顧我平生獨自傷 : 고아평생독자상)

짚신에 지팡이 끌고 천릿길 떠돌며
(芒鞋竹杖路千里 : 망혜죽장로천리)

물처럼 구름처럼 가는 곳이 내 집이었다.
(水性雲心家中方 : 수성운심가중방)

사람도 하늘도 원망할 일이 못 되어
(尤人不可怨天難 : 우인불가원천난)

해마다 해가 저물면 혼자 슬퍼했노라.
(歲暮悲懷餘寸腸 : 세모비회여촌장)

어려서는 이른바 넉넉한 집에 태어나
(初年有謂得樂地 : 초년유위득락지)

한강가 이름 있는 고향에서 자랐노라.
(漢北知吾生長鄕 : 한북지오생장향)

조상은 부귀영화를 누려 왔던 사람
(簪纓先世富貴門 : 잠영선세부귀문)

장안에서도 이름 높던 가문이었다.
(花柳長安名勝生 : 화류장안 명승생)

이웃 사람들 생남했다 축하해 주며
(隣人來賀弄璋慶 : 인인래하농장경)

언젠가는 출세하리라 기대했건만
(早晩歸期冠蓋場 : 조만귀기관개장)

자랄수록 운명이 자꾸만 기구하여
(髮毛稍長命漸奇 : 발모초장명점기)

오래잖아 상전이 벽해처럼 변했다.
(小劫殘門번海桑 : 소겁잔문번해상)

의지할 친척없고 인심도 각박한데
(依無親戚世情薄 : 의무친척세정박)

부모마저 돌아가셔 집안은 망했도다.
(哭盡爺孃家事荒 : 곡진야양가사황)

새벽 종소리 들으며 방랑길에 오르니
(終南曉鐘一納履 : 종남효종일납이)

생소한 객지라서 마음 애달팠노라.
(風土異邦心細量 : 풍토이방심세량)

마음은 고향 그리는 떠돌이 여호같고
(心猶異域首丘孤 : 심유이역수구고)

신세는 궁지에 몰린 양 같은 나로다.
(勢亦窮途觸藩羊 : 세역궁도촉번양)

시 조차 읊을 기운이 떨어진 김삿갓은 잠시 뜸을 두었다가,

다시 읊기 시작했다.

남쪽 지방은 자고로 과객이 많은 곳
(南州從古過客多 : 남주종고과객다)

부평초 처럼 떠돌아가기 몇몇 해던고.
(轉蓬浮萍經幾霜 : 전봉부평경기상)

머리 굽신거림이 어찌 내 본성이리오
(搖頭行勢豈本習 : 요두행세기본습)

먹고 살아가기 위해 버릇이 되었도다.
(楔口圖生惟所長 : 설구도생유소장)

그런 중에도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가
(光陰漸向此巾失 : 광음점향차건실)

삼각산 푸른 모습 생각할수록 아득하네.
(三角靑山何渺茫 : 삼각청산하묘망)

떠돌며 구걸한 집 수없이 많았으나
(江山乞號慣千門 : 강산걸호관천문)

풍월 읊는 행랑은 언제나 비었도다.
(風月行裝空一囊 : 풍월행장공일낭)

큰 부자 작은 부자 고루 찾아 다니며
(千金之家萬石君 : 천금지가만석군)

후하고 박한 가풍 모조리 맛보았노라.
(厚薄家風均試嘗 : 후박가풍균시상)

신세가 기구해 남의 눈총만 받다 보니
(身窮每遇俗眼白 : 신궁매우속안백)

흐르는 세월 속에 머리만 희었도다.
(歲去偏傷髮髮蒼 : 세거편상발발창)

돌아가자니 어렵고 머무르기도 어려워
(歸兮亦難佇亦難 : 귀혜역난저역난)

노상에서 방황하기 몇 날 몇 해이던고.
(幾口彷徨中路傍 : 기구방황중로방)

김삿갓은 여기까지 씨부려 보다가,

마침내 기운이 진해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말았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응구첩대(應口輒對)로

시를 읊어댄 것은 그의 타고난 천품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시를 읊을 기력조차 없어져 버렸던 것이다.
그리하여 눈을 감은 채 오랫동안 무거운 침묵에 잠겨 버리고 말았다.
배는 가벼운 바람에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이윽고 ㅡㅡㅡ
눈을 감고 있는 김삿갓의 심안(心眼)에는 홀연히 한 조각 하얀 구름이 떠올라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누군가가 그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며

"승피백운 (乘彼白雲) ,
우화등선 (羽化登仙) ! ....."

"저 하얀 구름을 타고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 ! ...."
하고 읊조리는 소리가 분명하게 들려 왔다.
김삿갓은 그 소리가 들려오자, 별안간 몸을 꿈틀하며,
"뭐 ? 승피백운 우화등선 ..... ? "
하고 입속말로 뇌까리다가, 다음 순간 마지막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리하여 삼천리 방방곡곡을 두루 편답하며

수많은 시를 뿌려 놓은 천재 시인 김삿갓은,

마침내 전라도 동복 적벽강 나룻배 위에서 영구 귀천했으니,

때는 지금으로 부터 158년 전인 1863년 철종(哲宗) 14년 3월 29일이요,

향년 56세이었다. - 끝 -

*글 끝에 붙여.
방랑시인 김삿갓은 사후(死後)에 전라도 땅에 묻혔다가,

그의 둘째 아들 익균(翼均)에 의해 고향인 영월땅으로 이장(移葬) 되었다.

후일 사람들은 그를 기려,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 216번지로

그의 유택(幽宅)에 주소를 붙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이 죽게 되면 통상은 매장을 하지만,

중앙아시아의 북방 유목 민족들은 새를 숭배하여 장례를 치룰 때

조장(鳥葬), 천장(天葬)을 한다.

죽은 영혼이 하늘나라로 접근하는 가장 지름길을

새라는 동물로 본 것이기 때문에,

새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뜯어 먹도록 함으로써

영혼이 하늘에 가깝게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승피백운 우화등선" ...
방랑시인 김삿갓의 마지막 남긴 말을 해석하여 보면,

그의 영혼(靈魂)은 분명히 새가 되어,

창공을 마음껏 훨~훨 날아서 하늘나라에 갔을 것이다.

꼭 그랬기를 바라면서 ...

금년, 김삿갓 사후(死後) 158 주년을 맞아,

그의 영혼에 남미 페루를 여행하던 폴 사이먼이 만든 주옥(珠玉)같은 음악,

"엘 콘드르 파샤(철새는 날아가고)"를 바친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