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부대가 소련공산당 노선을 따르는
고려혁명군과 소련 적군 측에 가담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어서 홍범도는 자유시 참변 직후 대한의용군 등의
잔병(殘兵)을 처리하는 재판에 위원으로 참여했다.
이 또한 역사적 사실이다.
자유시 참변 후 홍범도의 행적
자유시 참변 다음해인 1922년 홍범도는 모스크바에서
레닌으로부터 금화 100루블과 군복 한 벌
그리고 ‘홍범도’라는 이름이 새겨진 권총을 선물 받았다.
자신의 휘하 병력 300여명을 소련 적군에 편입시키고
본인도 소련군 제5군단 민족여단 대위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홍범도는 1927년에는 소련공산당에도 정식 입당했다.
소련 국적도 취득했다.
자유시 참변 이후 홍범도는 독립군으로서의 활동은 없었다.
연해주에서 협동농장을 조직해 운영했을 뿐이다.
그러다 1937년 스탈린에 의한 한인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하게 됐다.
홍범도는 그에 순순히 따랐다.
자유시 참변 이후 홍범도의 삶은 소련공산당원이자
소련인으로서의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