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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달 앞에 봉이(鳳伊)가 붙은 이유

우현 띵호와 2024. 9. 30. 21:36

김선달 앞에 봉이(鳳伊)가 붙은 이유 

김선달은 서울 장안을 자주 드나들었다.

한 번은 사람들로 붐비는 장터로 구경을 나섰다.
그런데 장터 한쪽에 닭장(鷄市場)이 서서 온갖 닭들이 우글댔다.

김선달이 닭장 속을 이리저리 살펴보니

유난히 살이 포동포동 하고 털에 윤기가 흐르는

닭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김선달은 시치미를 뚝 떼고 닭 장수에게 물었다.
"주인장, 이게 무슨 날짐승이오?

거참 통통한 게 보기 좋구먼!"

그 말을 듣자 주인은 눈을 크게 뜨며 속으로 생각했다.

'세상에 얼치기가 많다고 하더니만

이런 놈을 두고 하는 말인가 보구나.
닭도 못 알아보는 걸 보니 꽤나 어리석은 놈인가 보다.'  
 
주인은 김선달이 얼치기인 줄 알고 골려 먹을
셈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건 봉(鳳)이요."
난데없이 닭을 봉황새라고 속인 것이었다.
"뭐, 봉이라고?

오호, 말로만 듣던 봉황새를 여기서 제대로 보게 되었군.

그래, 그 새도 파는 것이오?"
"물론이오. 팔지 않을 거면 뭐하러 장터까지 가지고 나왔겠소?"
주인은 이제 제대로 걸려 들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값은 얼마나 받을 생각이오?"
"열 냥만 내시오."
닭은 한 냥씩 받고 팔고 있지만, 봉은 닭보다 훨씬
값어치가 나가기 때문에 열 곱은 더 내야 한다는 게
주인의 주장이었다.
김선달은 값을 깎을 생각도 않고 주인이 달라는 대로
열 냥을 고스란히 건네주고 닭을 샀다.  
 
그리고는 곧바로 관가로 달려갔다.

김선달은 관가를 지키고 있는 문지기에게

품에 안고 온 닭을 보여 주며 말했다.

"내가 방금 귀하디귀한 봉황을 구했는데,

이것을 사또에게 바치려고 하오.

그러니 사또께 말씀을 전해 주시오."  
 
그리하여 김선달은 닭을 가지고 사또앞에 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천지개벽을 한들 닭이 봉이 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 김선달은 사또를 희롱한 죄로 곤장 열 대를 맞았다. 
 
"사또, 억울합니다. 맹세코 저는 죄가 없습니다."
꼼짝없이 곤장을 다 맞은 김선달이 눈물을 질금거리며

사또를 향해 하소연을 했다. 
 
"이 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닭을 봉이라고
속인 죄가 얼마나 중죄인데 죄가 없다는 것이냐?"
"저는 그저 닭장수가 봉이라고 하기에

닭 값의 열 배를 치르고 샀을 뿐입니다."
그 말을 듣자 사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뭐라고? 분명 닭장수가 봉이라고 했단 말이냐?"
"예, 그렇지 않고서야 제가 왜 닭 값의 열 배나 치렀겠습니까?"
"음, 그래 ...."  
 
사또는 제법 영민한 사람이어서 상황을 금방 눈치
채고는 닭장수를 불러들이게 했다.
"네가 닭을 봉이라고 속여 열 냥을 받고 판 게 사실이냐?"  

볼기를 맞아 얼굴에 잔뜩 독이 오른 김선달이

노려보고 있는터라 거짓말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닭장수는 사실대로 말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제 어찌하면 좋겠느냐?"
사또가 김선달을 보며 말했다. 
 
"저 자가 저를 속여 공매를 열 대씩이나 맞았으니

저도 그 대가는 받아야겠습니다.

제가 닭 값의 열 배를 주고 가짜 봉을 샀듯이

저자에게 제가 맞은 곤장의 열 배인 백 대를 쳐주십시오.

아니면 제가 저 자에게 준 열 냥의 열 배인 백냥을

지불하라고 판결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모든 것이 공정할 듯 싶습니다."  
 
사또가 듣고 보니 그럴듯한 이야기였다.

결국 닭장수는 거의 살아서 돌아갈 수 없을 것이

분명한 곤장 백 대를 포기하고,

김선달에게 백 냥을 주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 하였다.  
 
뒷날 이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전국 각지에
퍼져 사람들은 김선달의 이름 앞에 '봉이'라는

별칭을 붙여서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어리숙하여 무엇이나

빼앗아 먹기 좋은 사람을 농으로 일컬을 때

'봉잡았다'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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