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는 집착하고, 고수는 버린다.
아프간에 탈레반이 돌아왔다. 악마의 뚜껑이 열렸다.
질서가 무너진 그 자리에 폭력이 난무한다.
수도 카불의 국제공항과 인근 호텔에서 테러가 발생해
최소 13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부상 당했다고 외신은 전한다.
IS(이슬람국가)가 저지른 자살 폭탄 테러라 한다.
국가 간 균형 때문에 질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제국의 질서가 붕괴될 때, 그 변방에서 질서가 무너지고 전쟁이 발생한다.
즉 제국이 붕괴하여 여러 나라로 분할되고,
분할된 그 나라가 서로 균형을 잡으려 할 때 전쟁이 일어난다.
평화란 제국의 세력이 미치는 범위와 동일하며,
전쟁이란 새로운 균형을 찾으려 할 때 갈등이 전쟁으로 치닫는다.
이 법칙에 예외는 없다. 우리 역사에서 전쟁이 발생한 시기는
대륙의 정권교체기와 일치하며, 거대한 해양 세력의 경계면을
차지하고 있던 일본에 의해서 일어났다.
국방부 청사 앞에서 시도 때도 없이 “주한 미국은 물러나라”고 데모를 한다.
나는 단언한다. 제국이 물러난 그 자리에 전쟁이 일어난다.
일어나지 않은 역사가 없다. 세상에 참혹하지 않은 전쟁은 없다.
어느 전쟁이 더 참혹한가를 따질 뿐이다.
약한 적을 만나면 가끔 승리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패배하는 사람이 더 많다.
사람이나 사회, 국가 모두 과거의 성공모델에 집착하여
이전 방식을 고집할 때 결국 자신을 망치고 국가는 붕괴한다.
전쟁터는 본질이 난무하는 공간이다.
여기에는 '도덕', '자존심', '이념' 보다는 '승리'가 먼저다.
승리해야 나라에 충성할 수 있고,
승리해야 백성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손자병법에 실패하는 장수의 다섯 가지 유형이 있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장수는 죽이기 쉽고,
살려고 애쓰는 장수는 사로잡기 쉽고,
화를 잘 내는 장수는 수모를 주면 죽이기 쉽고,
청렴한 장수는 치욕을 주면 죽이기 쉽고,
백성을 사랑하는 장수는 백성을 괴롭히면 죽이기 쉽다고 한다.
모두 집착에서 발생한 문제다.
사고의 유연성이 없다면 불확실성이 가득한 전쟁에서
신묘(神妙)한 전략을 찾을 수 없다.
남원(南原)에 교룡산성이 있다.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일본군은 5만 6천 대군을 이끌고 남원성을 공격했다.
이때 성을 지키고 있던 조선군과 명나라의 병력은 4천 명이었다.
남원성의 관군과 백성은 모두 교룡산성(蛟龍山城, 518m)에서
결전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명나라 장수 양원(楊元)은
평지인 남원성에서 싸우기를 고집하였고,
결국 교룡산성을 버리고 평지로 내려왔다.
남원성의 양원은 자기가 가장 잘 싸우는 방식으로 싸워서 패했다.
과거의 성공모델이 지금의 성공을 보장하리라 예측했지만 실패했다.
전쟁은 내가 가장 잘하는 방법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적보다
더 잘 싸우는 방법으로 싸워야 한다.
류성룡은 징비록에 그날의 억울하고 분함은 기록으로 남겼다.
“그는 험한 산에 있는 성을 놓아두고 평지에 지은 성에서 싸웠는데,
평지를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았으므로
여기에 자세히 적어 뒷날에 성을 지키는 사람들이
경계해야 한다는 점을 알리려 한다.”
전쟁의 결과는 참혹했다.
사흘 밤을 항전한 끝에 빗속을 뚫고 일본군이 남문을 부수고
처들여와 남원성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조명 연합군 4,000명과 남원성 주민 7,000명이 모두 학살당했다.
송(宋)나라에 밭을 가는 농부가 있었다.
어느 날 토끼 한 마리가 농부를 보고 깜짝 놀라 달아나다가,
밭 한가운데 있는 그루터기에 부딪혀 죽었다.
농부는 그날 이후 밭을 갈 생각은 하지 않고
토끼만을 기다렸으나 토끼는 오지 않고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한비자의 수주대토(守株待兎)다.
한 번의 행운이 다시 오리라고 예상하지만 행운은 기다림만으로 오지 않는다.
과거의 성공모델을 버려야 행운이 온다.
하수는 집착한다.
돈에 집착하고 물건에 집착하고 사람에 집착하고 급기야 이념에 집착한다.
대부분 이런 사람은 한 권 밖에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다.
어쩌면 몇 권 읽은 책으로 세상 전부를 다 아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고수는 버린다.
돈도 버리고 물건도 버리고 지식도 버리고 목숨 같은 이념마저 버린다.
버려야 채울 수 있다. 버림은 선택이고 선택은 기회비용이다.
기회비용이 크면 클수록 선택의 달콤함도 크다.
선택은 고난도의 포기다.
*참고 및 문헌 : 리링 지음, 김숭호 옮김
<전쟁은 속임수다, 원제: 兵以詐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