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김삿갓

방랑시인 김삿갓 (110)누워있던 남자를 벌떡벌떡 일어나게 하는 신약(神藥)

우현 띵호와 2021. 9. 29. 22:53

방랑시인 김삿갓 (110)
누워있던 남자를 벌떡벌떡 일어나게 하는 신약(神藥)

필봉은 두 남녀 사이에 시선이 오고 가는 줄도 모르고 누이동생에게 말한다.
"아마 너의 언니는 아이들을 데리고 아랫마을에 놀러 갔는가보구나."
이렇게 까지 말하다가 문득 생각이 난 듯,

"참, 여정與情아! 이리와 이 어른께 인사 올려라.
이 어른은 학문이 매우 높은 어르신네다.
이번에 나를 대신해 훈장자리를 맡아 주기로 하셨다."

그러면서 김삿갓에게
"이 아이는 나의 누이동생인 홍 향수洪鄕首 댁이랍니다.
앞으로 자주 만나게 될 테니 서로 얼굴이라도 익혀 두시죠."하고
마치 김삿갓이 훈장 자리를 맡기라도 한 것처럼 소개를 하는 것이 아닌가!
김삿갓은 당황할 밖에 없었다.

"아닙니다. 나는 계획한 일이 있어서 훈장 자리를 맡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필봉은 고개를 힘차게 가로 흔들었다.
"이미 다 결정된 일인데 선생은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오,

오실 때에는 마음대로 오셨지만, 떠나시는 것만은

나의 승낙이 있기 전에는 못 떠나신다는 것을 아세요, 하하하."
그처럼 일방적으로 선포를 하고 나서는 누이동생에게 다시 말한다.

"오늘은 귀한 손님이 오셨으니 저녁을 융숭하게 대접해야 하겠다.
언니가 집에 없다니, 저녁상은 너희 집에서 차려 오도록 하거라. 알겠느냐?"
"네 알겠어요. 저녁을 저의 집에서 준비해 오도록 하겠어요."

"너도 차차 알게 되겠지만,

이 어른은 학식이 풍부하시고 모르는 게 없는 박물군자이시다.
그래서 나도 이제 앞으로는 이 어른을 통해 사서삼경도 좀 배우고,

동의보감이라는 책을 통해 의술도 새로 배울 생각이다.

그런 줄 알고, 저녁상을 특별히 잘 차려 와야 한다."
훈장은 자기가 계획하는 일을 제멋대로 털어놓고 나서,
"참, 향수 어른을 이 삼일 동안 못 뵈었는데 별고 없으시겠지?" 하고 묻는다.

홍 향수 애기가 나오자 여인은 이맛살을 가볍게 찌푸린다.
"집에 계시기는 계세요.

그러나 기력이 약하셔서 언제나 누워만 계시는걸요."

그러자 필봉은 고개를 무겁게 끄덕이며,
"그 어른은 고희古稀를 넘으셨으니까 기력이 약해지신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 아니겠느냐?

이러나저러나 그 어른은 우리한테는 둘도 없는 은인이시다.
너나 나나 부평초같이 근거없이 떠돌아 다니던 우리가

생소한 이 고장에 와서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게 된 것은

오로지 그 어른의 덕택이 아니더냐.

너는 그런 줄 알고 그 어른을 정성껏 받들어 모시도록 하거라.
사람이 은혜를 몰라서는 안 될 일이다."
하고 진지한 어조로 누이동생을 타이르는 것이었다.

필봉이 누이동생에게 다시 말한다.
"참, 일전에 내가 읍내에 갔을 때 보약을 한 제 지어 보냈는데

향수 어른은 지금 그 약을 드시고 계시냐?"

"약이라면 무슨 약이든지 열심히 드세요.
오라버니가 지어 보내신 약도 지금 열심히 자시고 계세요."
"음! 그래야지. 나이 드신 분에게는 보약 이상 좋은 선물이 없느니라.

네가 정신을 차려서 때를 놓치지 말고 약을 열심히 자시게 하여라."
칠십을 넘은 부자 늙은이에게 나이 어린 누이동생을 소실로 들여보낸 필봉은,
무엇보다도 걱정스러운 것은 홍 부자의 건강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여정이라는 색시는 매사가 짜증스럽기만 한지,

눈살을 찌푸리며 불평을 한다.
"약을 아무리 자시면 뭘해요.

밤낮 여기가, 또 저기가 아프다 하시면서 누워만 계시는걸요."
"네가 남편을 지성껏 공대하면, 언젠가는 그 보답이 반드시

너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느니라."

필봉은 누이동생을 열심히 타이르고 있었지만,

정작 본인은 매사가 귀찮기만 한 기색이었다.
김삿갓은 칠십 고령의 남편을 모시고 살아가는

젊은 여인의 숨은 고민을 엿본 것만 같아, 가슴이 서늘해 왔다.

칠십 고령의 영감님과 스무 살의 앳된 소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것은 제대로 어울리는 남녀간이라고 볼 수 없었다.
김삿갓은 여인의 얼굴을 새삼스럽게 보았다.
여자 스무 살이면 함박꽃처럼 활짝 피어날 나이다.

그러나 여정이라는 여인은 용모는 아름다워도 얼굴빛은

어딘가 모르게 활기를 잃고 있었다.

남녀간의 음양陰陽이 제대로 소통되지 않으면,

여자의 얼굴이 저렇게 되는 것이 아닌가...
김삿갓은 마음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여인이 필봉 선생에게 불쑥 이런 말을 묻는다.

"오라버니! 아무 효력도 없는 보약만 자시게 할 것 아니라,
누워있던 사람을 벌떡벌떡 일어나게 할 수 있는 신약神藥은 없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