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김삿갓

방랑시인 김삿갓 (129) *금수산 을밀대에 올라.

우현 띵호와 2021. 9. 29. 23:00

방랑시인 김삿갓 (129)
*금수산 을밀대에 올라.

모란봉에 올라 보니 저 멀리 눈 아래 푸른 비단폭처럼

대동강이 넘실거리는 것이 장관이었고,
강 건너 능라도에는 실실이 늘어진 수양버들이 바람결에 흐느적 거렸다.

때마침 산에는 진달래 꽃이 만발해 있어

삼삼오오 모란봉을 찾는 상춘객이 입은 백의(白衣)가
연보랏빛 진달래 색깔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어 ,

온 산이 붉게 타오르는 것 같았다.
(아아, 우리가 백의 민족(白衣民族) 으로 자랑 할만 하구나,

그리고 금수산은 단순한 금수강산의
한 면이 아니라 지상의 선경(仙境)임이 분명하구나 !)

김삿갓은 눈 앞에 펼쳐진 풍경에 한동안 넋을 읽고 취해 있었다.
고려때 시인 권한공(權漢功)이 평양 구경을 왔다가  모란봉 위에서

대동강을 굽어보며 시를 지은 일이 있는데 그 시는 이러하였다.
모랫가의 푸른나무는 봄빛이 엷고
물에 비친 청산에는 저녁놀이 짙구나
물 속에 있는 듯 원근조차 모르겠는데
어디선가 석양에 노랫소리 들려 오네.
이윽고 금수산 꼭대기에 올라 오니,

평탄하고 훤칠한 을밀대(乙密臺)가 나온다.

거기는 사방이 탁 틔어 있어서 어디든지

마음대로 바라볼 수 있는 곳 이므로

을밀대를 사허정(四虛亭)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하늘로 날아 올라갈 듯이 네 활개를 활짝 펴고 있는

사허정의 웅자 (雄姿) !
언젠가 이곳 사허정에 올라온 당나라 시인이 이곳의 경치에

감탄하여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고한다.

금수산 산머리에 손바닥처럼 평평한 대가 있네
모름지기 하늘에 사는 신선이 바람을 타고 때때로 놀러 오는 곳이리.
때마침 정자 위에서는 큰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많은 하객들이 엉겨 돌아가는데,

한편에서는 기생들이 풍악에 맞춰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 잔치가 무슨 잔치요 ?"
김삿갓은 옆에 있는 하객을 붙잡고 물어 보았다.
"이 잔치는 평양 갑부인 임 진사 댁 회갑 잔치라오."
김삿갓은 출출하던 판인지라, 마침 잘되었다 싶었다.
회갑 잔치라면 술과 음식을 마음껏 얻어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김삿갓은 사람틈을 비집고 정자 위로 올라와 보았다.

백발이 성성한 임 진사 내외는 온갖 음식이 요란스럽게 차려진

환갑상 앞에 단정히 앉아,
그의 아들과 사위들 내외에게 헌수배(獻壽盃)를 받고 있었다.

이런데다가 바로 옆에서는 4,5명의 기생들이 은은한 풍악에 맞춰

나비처럼 춤을 추며 "태평가"를 나지막하게 부르고 있는데,​

 

이래도 태평성대
저래도 태평성대
요지일월(堯之日月)이요
순지건곤(舜之乾坤)이라
오늘도 태평성대니 만수무강하소서 ....

자식들과 친척들의 헌수배가 끝나자, 하객들의 차례였다.
김삿갓도 하객 행렬 속에 끼어 들어 축배를 올리며 덕담을 늘어놓았다.
"오늘의 수연(壽宴)을 진심으로 축아하옵니다.

바라옵건데 학수천세(鶴壽千歲) 하시옵소서."

음식을 푸짐히 얻어 먹으려고 축배를 올렸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자 임 진사는 김삿갓을 마주 보다가 적이 놀라는 얼굴을 하며,
"이렇게 축하를 해주니 고맙소이다.

그런데 귀공은 누구신지 기억이 분명치 않구려.
귀공의 함자가 어떻게 되시는지요 ?"

생전 처음 만나는 사람이니,

이름을 모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 이었다.
김삿갓은 어쩔 수 없어,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불청객이올시다.

모란봉 구경을 왔다가 수연을 베푸시기에,

우연히 축하의 말씀을 올리게 된 것이옵니다."

"모르는 사이 인데도 이렇게 축하를 해 주셔서 더욱 고맙소이다.

축하까지 받았으니, 이제는 피차간에 서로 알고 지내야 할 게 아니겠소 ?
나는 임현식 (林賢植)이라는 늙은이오. 귀공의 함자는 어떻게 되시오 ?"

임 진사가 부득부득 이름을 알고자 하므로,

김삿갓은 아무리 싫어도 이름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 이름은 "김립(金笠)" 이라고 하옵니다."
"옛 ? 김립 선생 - 이라면 방랑 시인으로 유명한 "삿갓 선생" 이라는 말씀인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