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김삿갓

방랑시인 김삿갓 (145) *방구월팔삼(方口月八三)

우현 띵호와 2021. 9. 29. 23:05

방랑시인 김삿갓 (145)
*방구월팔삼(方口月八三)

여인은 읍내로 들어 오면서도 상금 생각이 간절한지,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글을 잘 아신다니까,

방문을 한번 읽어 보기만 하면 상금은 틀림없이 탈 수 있갔디요?"
"방문 내용을 읽어 보기 전에는 반드시 상금을 탈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 않은가 ?"

"그래선 안되요!

어떤 일이 있어도 상금만은 꼭 우리가 타야 해요."

"자네는 돈에 환장한 사람 같네그려 !

돈이 뭣에 필요해 그렇게도 안달인가 ?"

"그 돈을 타가지고 밭을 한 뙈기 사고 싶어서 그래요.

노후에 자식새끼들 데리고 편하게 먹고 살려면,

객줏집보다는 농사를 짓는 것이 훨씬 낫거든요."
비록 서방질을 할망정, 갸륵한 소리를 한다.

"자네가 이토록 갸륵한 심정을 가지고 있으니,

현상금은 꼭 우리가 타도록 노력해 보세그려.
그러나 상금을 못 타게 되더라도 너무 낙심은 하지 말게 ! "

김삿갓은 내심으로는 상금을 탈 자신이 있었지만,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 예방선을 미리 쳐놓았다.

이윽고 읍내로 들어와 방문이 붙어 있는 남대문 바람벽 앞으로 가 보니,

그곳에는 갓을 쓴 시골 선비들이 십여 명이나 우글거리고 있었다.
모두가 현상금을 타먹기 위해 몰려든 선비들임은 말할 것도 없었다.
남대문 성벽에 붙어 있는 방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읍내에서 쌀장사를 해먹던 전명헌(全明憲)이란 자가

모월 모일에 정체불명의 괴한에게 무참히 살해되었다.
범인은 피살자의 등골에 이라는 글자 다섯 자를 써놓고 사라졌다.

누가 무슨 이유로 전명헌을 죽였는지 이라는 뜻을 꼭 알아야 하겠는데,

아직까지는  그 뜻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에 관에서는 대금 일백 냥의 현상금을 걸고 범인이 써놓은
글자의 뜻을 알고자 하는 터이니, 강호 선비 제현은

이 사건을 원만하게 해결하는데 적극 협조해 주기 바란다.

모 月 모 日 순천군수 류 현 진
김삿갓은 방문을 되풀이 되풀이 읽어 보며,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내저었다.

이라는 글자는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말도 되지 않을 뿐 만 아니라,

살인 사건과 연관 지을 일이 떠오르지 않았다.
(범인은 전명헌이를 죽인 뒤에 어째서 등골에 이라고 써 놓았을까 ?)

자기 자신의 범죄를 정당화 하기 위해서

그런 글자를 써 놓았으리라고 짐작은 되지만,

그 글자의 뜻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방을 뚫어져라 보고 있던 다른 선비들도 모르기는 마찬가지로,
"방구월팔삼이란 도데체 무슨 뜻일까 ?

헛참 !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알 수가 없는걸..."

하고 중얼거리며,

한 사람씩 단념하고 뿔뿔이 돌아가 버린다.

그러나 객줏집 아낙네만은

아직도 상금을 타고 싶은 욕심이 넘쳐 있었다.

"어때요 ?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당신은 알 수가 있갔디요 ? "
김삿갓은 고개를 맥없이 가로저었다.

"문제가 너무 어렵군. 내가 상금을 타먹을 정도로 쉬운 문제였다면,

나보다 먼저 달려온 선비들이 진작 타먹었을 게 아닌가.

남들이 풀지 못하는 문제를 나라고 어떻게 풀 수 있겠나 ? "

그러자 여인은 화를 벌컥 내며 이렇게 나무란다.
"남들이 풀지 못하는 문제라도 당신만은 풀 수 있지않아요 ?

정력이 그렇게도 왕성하던 양반이 그런 것도 못 풉네까 ? "

여인은 간밤의 일이 무던히도 인상적이었던지,

그 일을 빙자하고 어거지를 부린다.

정력이 왕성한 것과 지능이 높은 것은 전혀 별 개의 문제이건만

무지막지한 객줏집 여편네는 정력이 강한 남자는

 

뭐든지 잘해 낼줄로 알고 있을 성싶었다.

김삿갓은 그런 말을 누가 들을까 겁을 내며,

여인에게 이렇게 비꼬아 주었다.

"이 사람아 ! 정력과 지능은 별개의 문제야.

그리고 정력이 강한 것으로 말하면, 자네가 나보다도
열 갑절은 더했네 ! "

그러자 ,여인은 눈을 흘겨 보이며,
"나는 글을 모르지만, 당신은 글을 잘 알고 있잖아요?

상금은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가 타야 합네다 ! "

"자네가 아무리 다그쳐대도 모르겠는 걸 어떡하나.

이삼 일쯤 여유를 두고 찬찬히 생각해 보면,

혹시 좋은 생각이 떠오를지도 모르지,

그러나 지금 당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도통 모르겠단 말씀이야."

여인은 그 소리에 귀가 번쩍 뜨이는지, 눈을 커다랗게 떠보인다.

"뭬라고요 ? 이삼 일쯤 생각해 보면 알 수 있겠다구요?

그렇다면 날래 집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봅시다레 ! "
여인은 상금에 독이 올라, 김삿갓을 무작정 집으로 잡아 끄는 것이었다.
물론 거기에는 오늘밤도 깨같은 재미를 보려는 음흉한 생각이 곁들여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김삿갓은 못이기는 척, 여인에게 끌려 객줏집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하였다.

기왕지사 일을 저질러 버렸으니,

남편이라는 사람이 돌아 오기까지 주인 여편네와 재미를 더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객줏집으로 다시 돌아온 목적은 반드시 여자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또가 풀지 못해 현상금까지 내걸고 있는 그 문제를,

자기가 꼭 풀어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자기가 풀지 못하면 그 문제를 누가 풀 수 있겠냐는

일종의 오기가 발동을 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