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김삿갓

방랑시인 김삿갓 (152) *뜀박질만 시킨 이유.

우현 띵호와 2021. 9. 29. 23:07

방랑시인 김삿갓 (152)
*뜀박질만 시킨 이유.

여인을 집으로 보낸 김삿갓은 노상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
훈장 노릇을 하겠다고 선금을 미리 받아내기는 하였으나,

탐관오리의 자식에게 글을 가르쳐 주고싶지는 않았다.
지금이라도 도망을 가려면 얼마든지 갈 수 있겠지만,

유 사또 같은 자에게 아무런 응징도 해 주지 않고 곱게 떠나 버리기에는

김삿갓의 심술이 허락하지 않았다.
매사에 돈밖에 모르는 유 사또만은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골탕을 먹여 주고 싶었다.

그런 생각으로 동헌으로 다시 돌아오니, 유 사또는 크게 반가워하면서,
"우리 아이가 지금 별당에서 자네를 기다리는 중이네, 보수는 넉넉히 줄 테니,

그애에게는 특별히 신경써서 글을 잘 가르쳐 주도록 하게 ! "
하며 아이를 가르치는 것 조차, 돈과 결부시켜 말을 하는 것이었다.

김삿갓이 별당으로 가보니, 과연 사또의 아들인 류중일(柳中一)이라는 소년이

뜰에서 공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얼굴은 제 아비를 닮아, 둥글 넓적하게 생겨, 세숫대야가 넓어 보이나,

머리는 좀 모자라 보이는 아이였다.

"네가 사또의 아드님이냐 ?"
어른이 물어 보면, 버릇이 돼 먹은 아이는 누구나 공손히 대답하는 법 이다.

그러나 유 소년은 심뽀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다 알고 있으면서. 새삼스럽게 그런 건 왜 물어 보아요 ?"
하고 삐딱하게 대답하는 것이다.

김삿갓은 적이 불쾌감을 느끼며,(쯔쯧... 재벌 3세나, 고관 3세나...)
"나는 오늘부터 너에게 글을 가르쳐 주기로 한, 훈장 선생님이다."
하고 자기 소개를 하였다.

"그 애기는 아버지께 들어서 알고 있지만, 나는 글 읽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아무튼 너와 나는 오늘부터 별당에서 같이 살아가기로 하였으니, 그런 줄 알아라."
그리고 아이를 방안 으로 데리고 들어와서 다시 물어 보았다.

"너는 글읽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러면 어떤 일을 좋아하느냐 ?"
"나는 넓은 들판에서 공을 가지고 노는 것을 제일 좋아해요."

"음..그렇더냐 ? 그러나 너희 부친께서는 너에게 글을 배워 주라고 하시는데,

너는 공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한다면 어떡하지 ?"

"그까짓 글은 배워서 뭘 해요 ! "
글을 배우는 것에 대하여 손톱만큼도 관심이 없는 태도였다.
"글을 배워서 뭣 하다니 .... ? 그게 무슨 소리냐 ?"

"우리 아버지는 나처럼 어렸을 때에는 글을 많이 배웠대요.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글은 한 번도 써먹지 않고도 돈을 자꾸 벌어들이던걸요."
어린아이가 보고 느낀 대로 솔직하게 씨부려대는 데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너희 아버지가 돈을 얼마나 많이 벌어들이기에 그런 소리를 하느냐 ?"

"우리 아버지는 사람들을 잡아다 놓고 볼기를 치면서 하고

고함을 한 번만 지르면 돈이 얼마든지 나오던걸요.

나도 아버지 처럼 돈이나 많이 벌면 그만이지,

그까짓 글은 배워 뭘 하겠냐는 말이예요."

철없는 소년은 누가 들으면 큰일날 소리를 자랑삼아 떠들어대는 것이다.
김삿갓은 소년의 말을 듣고, 유 사또의 폭정이 얼마나 가혹한지 짐작할 수 있었다.
어린 자식에게 그와 같이 못 된 꼴을 날마다 보여 주면서,

글은 무엇 때문에 배워 주겠다는 것인가?
마침내 김삿갓은 유 소년에게 글을 배워 주는 대신에, 뜀박질을 하도록 시켰다.

넓은 들판에 소년을 데리고 나와 웃통을 벗어 붙이고 뜀박질을 시켰는데,

처음 며칠 동안은 가까운 거리를 뛰게 하였다.

그 다음에는 조금 더 거리를 늘렸고 차츰 십 리 이십 리 ...

하는 식으로 거리를 자꾸만 늘려 가며 뜀박질을 시켰다.

그러자 뜀박질을 좋아하던 소년도 날마다 뜀박질을 하기에 진력이 났는지,

어느 날은,"훈장 선생님 ! 날마다 달음박질만 시키니, 글은 언제 배워 줄 거예요 ?"
하고 묻는 것이 아닌가.

김삿갓은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
"너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달음박질을 잘하는 것이다.

너는 달음박질을 잘하면 살아 남을 수가 있지만,

달음박질을 잘 못 했다가는 누구의 손에 맞아 죽을지 모른다."

소년은 그 말을 듣고 눈알이 휘둥그래진다.
"엣 ? 내가 누구의 손에 맞아 죽다뇨 ? 그게 무슨 소리예요 ?"
그러자 김삿갓은 눈 딱 감고 이렇게 말했다.

"너희 집 조상들은 대대로 내려오며 죄 없는 백성들의 볼기를 수 없이 쳐 왔느니라.
그러니 언젠가는 볼기를 맞은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

너희 집 가족들을 모조리 죽이려고 달려들 것이다.

그런 위급한 경우에,

살아 남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36계, 도망을 잘 치는 일이 아니겠느냐 ?
내가 너에게 글공부 대신에 달음박질만 열심히 배워주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소년은 그 말을 듣고 기절초풍 하도록 놀라며,
"예엣 ! 볼기를 맞은 사람들이 우리집 식구들을 잡아 죽이려고 몰려올 지 모른다고요 ?
그렇다면 이거 큰일 났네요.

그렇다면 이 사실을 아버지에게 빨리 알려드려야 해요."
하고 외치며 쏜살같이 동헌으로 달려가는 것이 아닌가?

소년이 아버지에게 고자질을 하려고 동헌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자,

김삿갓은 부랴부랴 도망갈 채비를 서둘렀다.

어름어름 하다가는 화가 동한 사또의 손에 능지처참을 당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쯤 동헌에서는 야단법석이 났겠군.

사랑하는 아들에게 글은 배워 주지 않고 뜀박질만 시켰으니

사또가 펄펄 뛰며, 화를 냈을 것이고,

나를 당장 잡아 오라고 불호령을 내렸을 것은 뻔한 일이다.

그리고 탐관오리인 사또에게 이만큼이나 골탕을 먹여 주었으니,

이제는 나도 살기 위해서 도망을 가야 하겠다.)

김삿갓은 급히 꾸린 행장을 걸머지고, 부지런한 발걸음으로 깊은 산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