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 김삿갓

방랑시인 김삿갓 (168)

우현 띵호와 2021. 9. 30. 23:08

방랑시인 김삿갓 (168)
* "탁"하고 친 것도 아닌데, "억"하고 죽은 사연 ?

"손님은 아직도 주무시지 않고 책을 읽고 계셨습니까 ? "

"어서 들어 오세요. 잠이 오지 않아 책을 읽고 있던 중입니다.

주인 양반이야 말로 여태까지 잠을 자지않고 계셨소 ?"
김삿갓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인을 맞았다.
"책을 읽으시는데 방해가 되지 않을까요 ? "
주인은 김삿갓 옆에 털썩 주저앉더니 담배를 한 대 권한다.

"한밤중에 주무시지도 않고 책을 열심히 읽고 계시는 것을 보니

손님은 대단하신 선비인가 보군요?"

"대단한 선비는 아니지만, 책을 좋아하는 편이지요 ....

그런데 노형은 주무시지 않고 계셨소 ? "
"걱정스러운 일이 있어 잠이 와야 말이지요."
"걱정스러운 일이라뇨 ? 댁에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으신가요 ? "
"실은 내 형님께서 사정이 매우 딱하게 되셔서 ....... "
그리고 주인은 잠시 머뭇 거리다,

"손님은 선비시니까 말씀인데,

지금 사경(死境)에 처해 있는 내 형님을 좀 도와 주실 수는 없을까요? "

하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 적이 놀랐다.
"형님께서 사경에 처해 있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오 ?

어떤 사정으로 곤경에 처해 있는지, 사정 한번 들어 봅시다."
그러자 주인은 김삿갓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 주는 것이었다.

주인의 친형인 양중태(梁中泰)라는 노인은

어느 날 자기 집 사랑방에서 마을 친구인 김명주(金明珠) 라는 노인과

장기를 두다가, 한 수만 물러 달라느니 안 된다느니 하고 말다툼을 벌였다.
늙은이 들이 장기를 두다가 흔히 벌이는 언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날따라 일진이 사나운 탓인지,

양 노인이 상대방을 밀치거나 때린 것도 아닌데,

상대방 김 노인은 혼자서 노발대발 하다가 제 풀에 쓰러져,

그 자리에서 죽어 버리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양 노인은 본의 아니게 살인범으로 몰려,

지금은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는 것이다.
김삿갓은 그 이야기를 듣고 측은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탁>치니 <억>하고 죽은 것도 아니고

흥분해서 제 풀에 죽은 것을 무슨 살인죄가 된단 말이오?"

"누가 아니랍니까, 그런데 김 노인의 친구로서

내 형님하고 사이가 좋지 않은 훈장놈이 하나 있어요.

그 놈이 고소장을 교묘하게 써가지고 관가에 무고를 하는 통에,

내 형님은 꼼짝 없이 살인범으로 몰려, 지금 옥에 갇혀 있는 중이랍니다."

"고소장을 어떻게 썼기에 생사람을 살인범으로 몰았다는 것이오 ?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렵구려."
"고소장 사본이 여기 있으니까, 한번 읽어 보아 주시렵니까 ? "

김삿갓은 주인이 내 민 고소장을 읽어 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감탄의 고개를 끄덕 거렸다.

<양중태는 김명주 노인이 자기와 말다툼을 하다가 쓰러져 죽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말도 되지 않는 소리 입니다.

서로간에 치고받고 하는 육박전을 하지 않았다면,

단순한 말다툼만으로 김 노인이 죽었을리 만무 합니다.

양중태는 김명주가 뇌출열로 죽었다고 말하지만,

아무런 폭력을 가하지 않았다면 멀쩡하던 사람이

절로 죽었을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 "

훈장이라는 사람은 양 노인을 이렇게 살인범으로 교묘하게

몰아붙이고 나서 끝으로

다음과 같은 절묘한 글을 한 구절 써넣었다.

<毒酒在房 不飮不醉 (독주재방 불음불취)>

<腐繩繼牛 不引不絶 (부승계우 불인불절)>

독한 술이 방안에 있어도 마시지 않았다면

취하지 않을 것이고 썩은 새끼로 소를 매놓아도

잡아당기지 않으면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 글은 양 노인이 어떤 식으로든

김노인을 죽게 만들었다는 내용이었다.

김삿갓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소장의 내용은 글을 직업으로 밥을 먹는 훈장이 쓴 것으로,

그럴듯한 주장이었다.

글의 주장의 논리대로 라면,

양 노인은 살인죄를 모면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러나 김삿갓은 생사람을 살인범으로 몰아 버리는 데는 동의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혼잣말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음 - ...글이라는 것은 참으로 마술 같은 것이로구나 ! "
주인은 <마술>이라는 말을 듣고, 눈을 커다랗게 뜨며 놀란다.

"네 ? 마술이라뇨 ? 뭐가 마술 같다는 말씀입니까 ?"
"아, 아니올시다. 나 혼자 지껄여 본 말이오 ....

아무튼 이 고소장만 읽어 보아서는

주인장 형님이 살인죄를 면하기는 어렵겠습니다."
주인은 그 말을 듣고 얼굴이 사색이 되면서 한탄하 듯 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