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05)<혼처>

우현 띵호와 2021. 10. 6. 19:22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05)<혼처>

송진사 무남독녀 청매 열여섯 되자
문지방 닳도록 매파들 들락날락
혼처 세군데로 압축됐는데
청매는 날마다 눈물바람…

송 진사의 무남독녀 청매가 이팔청춘 열여섯이 되자

꽃봉오리처럼 화사하게 피어나기 시작했다.

꽃사슴처럼 서글서글한 눈, 오뚝 선 콧날, 앵두 입술,

흑단 머리, 백옥 피부에 가슴은 봉긋이 솟아오르고,

복숭아 엉덩이는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송 진사네 문지방이 닳도록 매파들이 들락날락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청매의 인물뿐 아니라 송 진사네도 천석꾼은 아니어도

오륙백석은 족히 하는 부자인데다 육대조가 승지를 지낸 뼈대 있는 집안이다.

내로라하는 신랑감들이 수단 좋은 매파들을 송 진사 집으로 보냈다.

매파들을 접견하는 사람은 청매의 할머니다.

어느 날, 이 초시네 맏아들 고모가 찾아왔다.

모두가 청매 할머니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데 그 고모는 위엄있게 오더니

당돌하게도 신붓감을 보여달라고 큰소리쳤다.

스물한살인 이 초시 맏아들은 열일곱에 알성급제를 해서

지금 이 고을 사또를 하고 있었다.

청매가 아무리 일등 신붓감이라 해도 기가 죽을 수밖에 없어 청매를 불러들였다.

그러자 고모는 청매를 앞뒤로 훑어본 뒤 치마를 걷어올리고

버선을 벗기더니 발목을 잡아보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저잣거리 황 참봉네가 보낸 매파도 찾아왔다.

“셋째아들 몫으로 나갈 세간이 천석꾼 부자보다 더 값나간다고 합니다요.”

알아주는 부자인 황 참봉의 셋째아들이 신랑감이다.

황 참봉네는 새우젓 도매상에다 유기공방, 주단포목점,

곡물도매상을 직접 운영했다. 뿐만 아니라 돈놀이도 하고,

수많은 점방을 소유해 세를 놓았다.

수많은 매파가 찾아왔지만 그중에서 또 하나 눈여겨볼 만한 혼처는

권 참판의 맏아들이다. 참판 벼슬에서 물러나 낙향했지만

만석꾼 큰 부자에 맏아들은 초시에 합격하고 내년 봄에 과거를 볼 참이다.

고모가 다녀간 이 초시네는 아예 제집 며느리로 정한 듯

사주단자 받을 날짜를 보내왔고,

황 참봉네는 겨울이 오기 전에 혼례를 올리자고 성화였다.

권 참판네는 가을에 약혼식을 하고 내년 봄에 혼례를 치르자고 알려왔다.

이렇게 혼처는 세군데로 압축됐다.

청매 아버지와 할머니는 머리를 맞대고 신랑감 선정작업에 들어갔지만

좀체 결론이 나지 않았다.

한쪽을 잡으려니 다른 한쪽이 아까워 허구한 날 저울질만 이어진다.

청매는 별당에서 이불을 덮어쓰고 날마다 눈물바람이다.

신랑감 셋,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 탓이다.

유모가 잣죽을 쒀 별당으로 들어오자 청매는 유모를 붙잡고 울었다.

일찍 세상을 등진 어미를 대신해 딸처럼 청매를 키운 유모다

청매의 하소연을 듣고 유모도 함께 울었다.

어느날 새벽, 송 진사네 집이 발칵 뒤집혔다.

새벽에 소피를 보러 일어난 송 진사가 우연히 외동딸 청매가

혼자 기거하는 별당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남녀가 합환(合歡)하는 소리!

송 진사가 낫을 치켜들고 문을 박차고 들어가자 청매와 웬 젊은이가

벌거벗은 채 이불을 끌어안았다.

곧바로 횃불을 들고 하인들이 들이닥쳐 젊은이를 대청 기둥에 묶자

송 진사가 지게 받침대를 들고 나타났다.

그때 청매가 나와 대청마루에 올라섰다.

죽은 어미한테서 물려받은 은장도를 빼서 자신의 목에 대고 의연하게 말했다.

“제 낭군에게 매를 대면 저는 죽습니다.”
송 진사가 놀라서 “어어- ” 하는데 청매가 다시 앙칼지게 쏘아붙였다.
“아버지! 어머니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아시지요?

어머니가 저를 배어 만삭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첫째 첩을 얻었고

삼년 후에 두번째 첩을 얻고….

이 초시네 맏아들, 젊은 사또에게 지금 수청 기생이 몇인 줄 아세요!

황 참봉네 셋째아들도 허구한 날 기생집에 눌러 사는 개차반입니다.

부자에 권세까지 떨치는 권 참판의 맏아들, 그집 앳된 하녀가

그의 아이를 배고 쫓겨나 뱃나루에서 몸을 던졌습니다.

제 낭군은 비록 권세도 없고 재산도 많지 않지만 착하고 성실하며

홀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는 효자입니다.”

청매의 거침없는 연설에 모두가 숙연해졌다.
“어젯밤에 제가 낭군을 불러들여 첫날밤을 치렀습니다.”
기둥에 묶인 이웃마을 박 총각의 포박이 풀렸다.

며칠 후, 둘은 부랴부랴 혼례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