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22) <삼강주막>

우현 띵호와 2021. 10. 10. 00:46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22) <삼강주막>

이초시가 술상 앞에 고꾸라지자

노대인은 이초시 부인이 자는 방의 문고리를 당기는데…

 

저녁상을 물리고 난 주막집은 술판으로 이어진다.

토담 옆의 홍매화가 암향을 뿜으며 초롱 불빛을

역광으로 받아 요염한 자태를 뽐낸다.

“임자는 다리도 아플 터인데 먼저 들어가 주무시오.

나는 술 한잔 하고 들어갈 터.”

점잖은 선비가 부인과 겸상으로 저녁을 마치고 주모에게

매실주 한 호리병을 시킨 뒤 부인의 등을 떠밀었다.

홍매화를 쳐다보다 눈을 감고 암향을 깊이 마신 부인은

눈꼬리를 올리며 귓속말로 속삭였다.

“나도 매실주 한잔 마시고 갈래요.”
선비는 점잖은데 그의 부인은 홍매화처럼 색기(色氣)를 풍긴다.

왼손 소맷자락으로 술잔을 가리며 한잔 마신 선비의 부인은

미끄러지듯이 평상에서 내려와 한마디 던졌다.

“너무 마시지 말고 일찍 들어오세요.”
부인이 홍매화나무를 돌아 객방으로 들어가는데

다홍치마에 가린 수밀도(물복숭아) 엉덩이를 따라

고개를 돌리는 사람은 같은 평상의 끝자락에서

혼자 술을 마시던 귀공자풍의 장년 선비다.

부인을 객방으로 들여보낸 선비는 홀짝홀짝

혼자 술을 마시다가 등을 맞대고 앉은 그 사람에게 말을 건넸다.

“형씨! 자작(自酌)하니 영 술맛이 안 납니다.”
“허허허, 나도 그렇소.”
“소인 이 초시, 인사드립니다.”
“인삼 도매를 하는 노가라 하오.”
“노 대인, 한잔 드시지요.”
“주모~! 여기 너비아니구이 한접시 올리게.”
매화향에 취해서, 매실주에 취해서 이 초시와 노 대인은

십년지기인 양 주거니 받거니 부어라 마셔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주모가 처마 밑에 앉아 두 사람이 술 마시는 것을

유심히 보더니 생긋 웃었다.

봄바람에 희미한 초롱이 까딱일 때마다 어둠을 틈타

노 대인은 술잔을 평상 아래로 쏟았다.

몰래 술을 버리는 것은 이 초시도 마찬가지다.

밤은 깊어 삼경(밤 11시~새벽 1시)인데

 

뒷산에서는 소쩍새가 울고 주모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술꾼들도 이방 저방 제방을 찾아 들어갔는데

두 사람만 끈질기게 술잔을 잡고 있다.

세병째 매실주를 마시던 중 노 대인이 소피를 보고 오니

이 초시가 술상 앞에 고꾸라져 코를 골고 있다.

밤바람에 초롱불마저 꺼졌다.

노 대인이 축 늘어진 이 초시를 둘러업고 객방 쪽으로 가 제 방문을 열었다.

이 초시를 눕혀 이불을 덮어주고 나와선 고양이걸음으로

이 초시 방 앞으로 가 살며시 문고리를 당겼다.

잠기지 않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부인의 희멀건 허벅지가

어둠 속에서도 금방 눈에 들어왔다.

노 대인이 훌러덩 옷을 벗고 부인을 껴안자

그녀는 두 팔로 남자의 목을 감았다.

고쟁이도 입지 않고 속치마만 입은 부인의 다리를 벌리고

절구질을 하자 감창(甘唱)이 십리 밖까지 들릴 듯이 요란하다.

바로 그때, 방문이 쾅 열리며 시퍼런 낫을 치켜든 이 초시가

“웬놈이냐!” 고래고함을 쳤다.

깜짝 놀란 부인이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감추며 “으악!” 까무러쳤다.

삼강주막이 발칵 뒤집혔다. 주모가 불을 밝히고 객방 손님들이

뜯어말려 이 초시 손의 낫을 빼앗아 겨우 살인을 면했다.
“나는 잠결에 당신인 줄 알았지. 으흐흐흑. 아이고 내 팔자야.”

그 와중에 부인이 목을 매려는 것을 주모가 발견해 낫으로 줄을 끊었다.

소란 끝에 동창이 밝았다.

이 초시가 노 대인을 사또 앞으로 끌고 가려는 것을

주모가 막아 협상을 이끌어냈다.

이 초시 부부는 내성천 나루에서 첫배를 타고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부부가 부지런히 걸어 용궁 고갯마루 호젓한 묘지 뒤 뗏장 위에 앉아

가쁜 숨을 가다듬었다. 적막을 깨고 남자가 운을 뗐다.
“마님, 이번엔 거금을 우려내고 깨끗하게 마무리 되었네요.”
그러자 부인이 시큰둥하게 답했다.
“주모에게 삼할 떼주고 나니 칠백냥밖에 안 남았어. 별거 아니야.”
남자가 비굴하게 웃으며 말한다. “마님, 제 몫 좀 없습니까요?”
부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자네는 성과급이 아니고 월급이야, 월급!

지난달에는 완전히 공쳤어도 자네 월급은 나갔어!”
남자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답했다.
“그냥 한번 해본 소립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