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23)매독(梅毒)

우현 띵호와 2021. 10. 10. 01:08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23)매독(梅毒)

벼슬장사치 이 참판

어린기생도 천하일색도 싫다하고 오직 남의 여자만 탐하는데…

 

동창이 겨우 밝아오는 새벽녘에 옥 참봉이 이부자리 속에서

마누라 엉덩이를 두드리고 있을 때였다. 집사가 처마 밑에서 아뢰었다.
“나으리, 젊은 선비가 사랑방에 들었습니다.”
옥 참봉이 헛기침을 하며 일어나려 하는데,

마누라가 눈을 흘기며 사족(四足)으로 옥 참봉을 옭았다.
“부엌의 삼월이 더러 차 한잔 끓여주라 하게.”
마누라가 등줄기에 땀이 흥건히 밴 후에야 옥 참봉을 풀어주었다.

그제야 허리춤을 올리고 탕건을 쓴 옥 참봉이 안마당을 건너

사랑방 문을 열어보니 벌써 젊은 선비 세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보따리를 두루마기 자락 밑에 숨기고 있었다.

피땀 흘려 공부해 과거에 붙으면 뭘 하나, 임용이 안되는 것을!

집안에 든든한 뒷줄이 없는 과거 합격자는 세월없이 기다리다

마침내 매관매직 거간꾼을 찾아가는 것이다.

옥 참봉이 바로 그 사람이다.

옥 참봉 마누라의 재종숙이 천하의 세도가 이 참판이라,

마누라 덕택에 과거 합격자와 이 참판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거간꾼이 되었다.

옥 참봉은 과거 합격자가 보따리마다 싸오는 산삼이며 우황·녹용·

금수저·은주발 등등 값비싼 뇌물들을 반은 떼어 놓고

이 참판에게 들고 간다. 그러면 이 참판은 당연하다는 듯 챙기고선

언제나 “조급하게 굴지 말고 기다리라고 전해라”라고 이른다.

이 사람 저사람으로부터 금은보화에 산삼·녹용을 하도 많이 받은 이 참판은

누구 하나를 꼭 집어 벼슬을 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옥 참봉은 곤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뇌물의 반을 떼어먹은 죄를 졌는데다,

이 참판은 허구한 날 기다리라고만 하니 중간에서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무과 합격자 최무송은 껄끄럽기 그지없다.

“참봉 어른! 이 치부책 좀 보시오. 재작년 삼월 열이튿날 산삼 열두뿌리,

구월 초닷새에 우황 한돈. 작년 사월 보름에는 금송아지 한마리,

시월 스무닷새에는 …….”

남산만 한 덩치에 솥뚜껑 같은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내리칠 때마다 옥 참봉은 움찔했다.

“참봉 어른, 문전옥답 다 팔아서 갖다 바쳤는데 아직도 이 모양 이 꼴입니다.

이제는 호구지책을 걱정해야 할 판입니다. 안 되면 돌려주시지요.”

옥 참봉은 은근히 겁이 났다.

그날 저녁, 이 참판이 퇴청하는 시간에 맞춰 집으로 찾아갔더니

그날따라 궁중연회가 있어 늦게 귀가한다는 것이 아닌가.

옥 참봉은 답답한 마음에 집사를 데리고 주막에 갔다.

술잔이 몇순배 오가는 사이 옥 참봉은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 참판이 여색(女色)을 탐하는 것은 진작 알았지만

그렇게 악취미를 가진 줄은 미처 몰랐다.

이 참판은 어린 기생 머리 올려주는 것도 싫다,

천하일색 처녀 옷고름 푸는 것도 싫어한다고 했다.

조조를 닮았는지 오로지 남의 여자만을 탐한다고 했다.

못생겨도, 늙어도 유부녀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어느 날 밤, 최무송이 마누라를 데리고 옥 참봉 사랑방에 왔다.

마누라는 방구석에 돌아앉아 치마폭에 얼굴을 묻고 하염없이 흐느꼈다.
“당신이 벼슬을 얻지 않아도 좋으니 그렇게는 못하겠소. 아이고, 아이고 내 팔자야.”
최무송이 마누라의 등을 두드리며 울분을 토했다.

“여보! 이제 우리는 농사지을 땅 한뙈기 없다는 것을 당신이 더 잘 알잖소.

내가 목을 매다는 걸 봐야 되겠소? 으흐흐흑.” 최무송도 같이 흐느껴 울었다.

뻐끔뻐끔 담배만 피우고 있던 옥 참봉이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부인, 딱 하룻밤만 나는 목석이다 생각하고…….”

옥 참봉이 앞장서고 장옷을 눌러쓴 최무송의 마누라가 뒤따라

이 참판댁 사랑방으로 갔다.

이튿날 최무송은 바로 적순부위(조선시대 정칠품 무관의 품계)로 등용되었다.

그러나 최무송의 마누라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첫배를 타고 강을 건너 멀리멀리 사라졌다.

그로부터 보름 정도 지난 날,

이름난 의원이 이 참판댁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한참 후 의원이 조용히 말했다.
“대감, 양물에서 고름이 이렇게 나는 걸 보니 매독입니다.”

“으흐흐흐.”
이 참판에게 매독을 안겨주고 흔적없이 사라진 최무송의 마누라는

마흔이 가까운 퇴물 기생이었다.

나루터 주막집에서 엽전 한닢에도 치마를 벗는 삼패 창기(娼妓)였던 것.

그녀가 최무송에게 받은 돈은 약과였다.

그날 밤 현란한 요분질로 이 참판을 녹여 두둑한 해웃값까지 챙겨

줄행랑을 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