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29) <때늦은 회한>

우현 띵호와 2021. 10. 10. 02:04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29) <때늦은 회한>

홀시어머니 호된 시집살이도 눈물 한바가지로 견딘 효실

남편 시앗소식에는 잠 못 이루는데…

가난한 선비의 딸, 효실이 부잣집 노 대감의 외아들에게 시집갔다.

인물 좋고 착하고 예절 바른 효실이 시집을 잘 갔다고 동네가 떠들썩했다.

그런데 효실은 시집살이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친정 신행길을 다녀오고 바로 알아차렸다.

시집식구라고는 시어머니 하나뿐이어서 극진히 모시겠다고 다짐했지만,

새침한 시어머니는 작정하고 효실의 오장육부를 뒤집기 일쑤였다.

“한번 풀어보고 하도 기가 막혀 그대로 처박아 놓았다.

네 눈으로 똑똑히 봐라. 이것도 혼수라고…. 끌끌끌.”

효실은 우물가에서 실컷 울고 난 뒤 세수하고 들어오는 게 일상사가 되었다.
두살 위의 신랑, 용무도 제 어미한테 시달리기는 마찬가지였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제는 제 색시 치마폭에 싸여서

제 어미를 허수아비 보듯이 하니…. 아이고, 내 팔자야.”

시어머니는 아들이 고뿔이라도 걸릴라 치면 “저 년이 우리 아들 진을 빼버려서!”

라며 분노했다.

어느날 밤엔 둘이 한참 운우(雲雨)의 정을 나누는데

시어머니가 문밖에서 문고리를 잡고 “에헴, 에헴” 해대 뜨거웠던

신랑·신부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그러나 효실은 이런 것쯤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시어머니는 툭하면 며느리에게 “본데가 없어서…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선비 집안에서 <사서삼경>까지는 못 떼었지만 <사자소학(四字小學)>

<명심보감>까지 익혔는데 까막눈 시어머니가 그런 말을 하니

효실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슬이 시퍼렇던 시어머니가 앓아눕더니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면 한풀 꺾일 만도 하건만, 병석에 누워서도 독기를 품고 며느리를 볶았다.

효실은 그런 시어머니여도 똥오줌을 받아내며 지극정성으로 봉양했다.

그 와중에 자손 귀한 집안에 아들 둘을 낳았다.

그런데 설상가상, 아들을 낳고나자 남편이 바람이 났다.

어느 날 밤, 술에 잔뜩 취해서 들어온 남편이 오랜만에

효실의 옷고름을 풀고 방사를 치렀다.

그런데 고작 한다는 소리가 “목석이야, 목석! 내가 나무토막을 안고 뒹굴었어.”

그날 이후 남편은 저잣거리 기생집에서 어린 기생의 머리를 얹어주고

살림을 차려 조상 제삿날 밤에만 집에 들어올 뿐 아예 코빼기도 내밀지 않았다.

효실은 그동안 시어머니한테 아무리 가슴을 찢는 소리를 들어도

우물가에서 눈물 한바가지 흘리면 밤잠은 잘 잤다.

그런데 남편이 시앗을 얻었다는 것을 알고 난 뒤에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점차 효실의 얼굴은 반쪽으로 변했고, 피골이 상접하더니 급기야

요강에 피를 쏟기 시작했다. 결국 어린 형제를 두고 거동도 못하는

시어머니를 눕혀둔 채 효실은 한 많은 짧은 생을 마감했다.

삼일장을 치르고 선산 끝자락에 마누라를 묻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

노용무는 앞이 캄캄했다. 똥오줌을 받아내야 하는 제 어미와

엄마 찾으며 울음을 그치지 않는 어린 두 아들과 살아갈 일이 막막하기만 했다.

더욱이 죽도록 고생만 하다가 스물셋 어린 나이에 이승을 하직한

마누라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부잣집에 시집갔다고 온 동네가 부러워했지만

시어머니한테 시달리다가 남편에게 버림받고 병들어 죽다니!

 

“창이 엄마~, 내가 잘못했소!”
노용무는 과부가 된 누이를 불러 노모와 아이 둘을 맡겼다.

그러고선 효실의 무덤 옆에 초막을 짓고 상투를 풀어헤친 채 통곡으로 나날을 보냈다.
어느 날, 그의 첩이 전복죽을 끓여서 싸들고 묘지 옆 초막으로 찾아왔다.

노용무는 죽그릇을 빼앗아 산으로 던져버린 뒤 첩을 엎어놓고

대나무 지팡이로 퍽, 퍽 엉덩이를 후려쳤다. “사람 살려!”라고 외치는

첩에게 “네년 때문에 창이 엄마가 죽었다.

삼천배를 올려 용서를 빌어라!”고 윽박질렀다.
첩은 “형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면서 무덤에 절을 하다가

용무가 통곡하는 사이에 도망쳤다.

이때 무덤 앞을 지나는 사람들은 두 부류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저런 남편도 있네” 하며 눈물을 흘리지만,

아는 사람들은 “살아 있을 때 잘해주지”라며 혀를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