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31) <파락호 허진사>

우현 띵호와 2021. 10. 10. 02:24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31) <파락호 허진사>

처자식도 내빼게 만든 난봉꾼 허 진사

동네 훈장 세상뜨자 그 부인을 탐하는데…

허 진사는 선대(先代)로부터 물려받은 그 많은 문전옥답(門前沃畓)을

다 팔아먹고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채 색주(色酒) 집으로

노름판으로 떠돌아다니는 한심한 파락호다.

부인은 진작에 아이 둘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버려

허 진사 혼자 사니, 끼니 건너뛰기를 밥먹듯이 해

비쩍 마른 손가락이 더 길어졌다.

그런 허 진사가 요 며칠 사이 바빠졌다.

동네 서당 훈장님이 이승을 하직해 상주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생전에 별로 친하지도 않았는데 죽고 나자 빈소를 차리기도 전에 달려와

땅을 치며 통곡하는데 “아이고 형님, 이게 어인 일이오~ 아이고 아이고~.”

일가친척도 없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훈장 부인은 허 진사에게 매달렸다.
“생전에 형님께서 큰일이 생기면 나만 믿는다 하셨소이다마는~ 아이고 아이고~.”

게을러빠진 파락호가 어인 일로 이 궂은일을 도맡았을까?

재취로 들어와 아직도 젊은 훈장 미망인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굴건제복에 죽장을 짚고 허 진사가 상주 노릇을 하더니 삼일장을 지내고 출상,

허 진사네 뒷산이 장지가 되었다.

허 진사네 산속에 있는 조그마한 암자에서 49제를 지내고

허 진사의 은근한 압박에 훈장 미망인은 탈상을 했다.

서당으로 쓰던 셋집을 비워주고 나니 앞이 캄캄하던 차에

허 진사가 찾아와 “형님께 마지막 문병 갔을 때 형님이 제 손을 잡고

형수님을 부탁한다 하셨소. 제 집으로 갑시다.”

훈장 부인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기와 틈으로 와송이 무성하고 마당엔 잡초가 허리춤까지 올라왔지만

훈장 부인에겐 감지덕지다.

훈장 부인이 몸을 사렸지만 보름째 되는 날 비오는 밤에

술취한 허 진사가 밥상을 들고 사랑방으로 들어온 훈장 부인 손목을 잡고

호롱불을 껐다.

은장도를 제 목에 대고 완강하게 저항할 처지도 아니어서,

못이기는 척 쓰러졌는데 훈장 부인이 깜짝 놀랐다.

훈장과는 너무나 달랐다. 한달에 한번 꼴이나 되었을까.

술 한잔 걸친 날이면 아흠아흠 헛기침을 해대며 천천히 의관을 벗어

차곡차곡 쌓아 놓고 이불 속으로 들어와 껍적껍적 사타구니만 더럽혀 놓고

픽 쓰러지는 건 그래도 다행, 짚 위의 해삼처럼 아예 서지도 않아

술 핑계 대기 일쑤이던 훈장이었다.

허 진사는 색주집에서 갈고닦은 화려한 솜씨로

서른여섯살 훈장 부인을 한번에 다섯 차례나 까무러치게 만들었다.

생전 처음 접해보는 희한한 자세에 훈장 부인은 숨이 막혔다.

한달 동안 하루도 빠트리지 않고 훈장 부인, 음골댁을 극락으로 보내주더니

발길을 딱 끊었다.

초저녁부터 뒷물을 하고 밤새도록 기다려도 허 진사는 안방을 찾지 않았다.

깊고 푸른 동굴 속에서 수십 년 잠자던 정욕을 깨워놓고선 본체만체하니

음골댁은 조바심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다. 그때 허 진사가 나타났다.

“형수님, 아침부터 빚쟁이가 오는 걸 봤지요. 먹고살 길을 찾아야겠소.”

그날 밤, 오랜만에 음골댁은 사지가 노긋노긋하게 회포를 풀었다.

허 진사가 시키는 일이라면 불속에라도 들어갈 판이다.

허 진사집 아래채가 주막이 되고 음골댁은 주모가 되었다.

손님이 들끓자 주머니가 두둑해진 허 진사가 제 버릇 개주나,

강 건너 마을 청상과부를 꾀어 금강산으로 유람을 갔다.

홧김에 서방질이라, 주모 음골댁도 끈질기게 졸라대는 객방 손님에게

눈을 감고 치마를 벗었더니 해우(解憂)값으로 열냥을 쥐어주는 게 아닌가!

온종일 술 팔아 국밥 팔아 남긴 이문보다 힘들이지 않고 짜릿한 재미도 곁들여

번 돈이 더 크자 음골댁은 깜짝 놀랐다.

한달여 만에 돌아온 허 진사가 음골댁에게 청천벽력을 쳤다.

제 집에서 나가라는 것이다.

두 사람은 동헌 마당에 서게 되었다.

사또가 자초지종을 다 듣고 난 후 “허 진사는 듣거라. 사실혼 관계가 아니라면

주모가 살짝살짝 해우값을 버는 것에 네놈이 시비를 걸 필요가 없느니라.

허 진사는 음골댁에게 이날 이때껏 합방(合房)한 날을 계산해 해우값을 지불하라.”

허 진사는 털썩 주저앉았다.

결국, 허 진사는 곤장 스무대를 맞고 아래채는 음골댁에게 소유권을 넘기는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