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39) <삼씨자루>

우현 띵호와 2021. 10. 11. 00:13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39) <삼씨자루>

난봉꾼 허달의 하인 칠석이

주인이 자신의 여자까지 범하자 이를 박박 갈며 집을 떠나는데…

천석꾼 부자 허 참봉이 이승을 하직하자 가장 살판난 사람은 그의 아들 허달이다.
제 아버지 살았을 적, 허달이 과거 보러 한양으로 가는 건 유람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책하고 씨름해도, 책을 아작아작 씹어 먹어도 제 머리로는

급제할 수 없다는 걸 그 자신이 잘 알았다.
하인 칠석이가 고삐를 잡고 허달이 나귀 등에 타고 꺼덕꺼덕 한양에 올라가면

첫날부터 명월관이다. 허달이 질펀하게 기생을 끼고 술을 마실 동안

칠석이는 처마 밑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과거는 보는 둥 마는 둥 낙방하고 내려와 또 다시 허 참봉 눈치만 보며

공부하는 척하다가 아비가 바깥나들이만 하면 갓 시집온 제 색시를 불러

대낮에도 치마끈을 풀고 한바탕 난리를 치고 낮잠을 자는 게 일상이었다.

허달이 살아가는 데 항상 걸림돌이던 아버지가 저승으로 갔으니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건 당연지사.

삼우제를 마치자 공부방의 책이란 책은 모두 끄집어내어 아궁이 속에 처박아

한줌 재로 만들고, 아버지 봉분의 흙도 마르기 전에 밤이면 상복을 벗어던지고

색주집으로 달려갔다.

십년 넘게 허달의 궂은 심부름을 도맡아 한 칠석이가 이를 박박 갈면서

허달의 곁을 떠나갔다. 칠석이와 백년가약을 맺기로 한 하녀, 옥분이가 집을 나가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허달이 옥분이를 겁탈한 게 드러나자 옥분이는 목을 맨다 난리를 치고,

칠석이는 낫을 치켜들고 허달을 찾아 나섰다.

결국 칠석이는 밀린 세경에 산비탈 밭뙈기 세마지기를 받아 그 집을 나오고,

옥분이는 칠석이 볼 낯이 없어 멀리 사라졌다.

그렇게 몇 해 세월이 흐른 어느 여름날.

장인 오순 잔치에 가려고 허달이 앞서고 마누라가 뒤따라 땀을 뻘뻘 쏟으며

한적한 여우고개를 넘다가 개울 옆 풀밭에 앉아 숨을 가다듬었다.

허달이 갓과 두루마기를 벗어두고 개울에 내려가 세수를 하고

벗어둔 의관을 차려입으려는데 불과 열두어 걸음밖에 안되는 개울 건너편에서

칠석이 나타났다. 칠석이를 대면하는 것이 반가운 일은 아니지만,

지난 일은 모두 해결된 터라 크게 거리낄 일도 아니었다.

널찍한 바위에 자루를 베개 삼아 모로 누워 있던 칠석이

벌떡 일어나 앉더니 한다는 말 좀 보소.

“나으리, 벌건 대낮에 점잖지 못하게 그 무슨 짓이오.

날이 저물면 안방에서 할 일이지!”
허달이 의아한 표정으로 “무슨 짓이라니. 내가 어쨌게?”

칠석이 크게 웃으며 “안방마님을 벗겨 풀밭에 눕혀놓고

나으리가 바지춤을 내리고 올라타고 있잖아요.”

소나무 뒤에 얌전히 앉아 있던 안방마님도 눈을 크게 뜨고 칠석이를 바라본다.
“저 놈이 더위를 먹었구나. 삼씨를 먹으면 세상이 거꾸로 보인다더니,

네 놈이 그걸 먹었냐?”
허달이 소리치자 칠석이 되받아 “여기 와서 보세요.

이 자루를 베고 누워 반식경만 지나면 보인다고요!”

허달이 철퍼덕철퍼덕 개울을 건너와 자루를 베고 바위에 누우며

“이 자루 속엔 뭐가 들었냐?” 칠석이 반대편으로 오며 “삼씨가 들었지요.”

칠석이 어리둥절해 있는 마님을 붙잡고

“마님이 뒤꼍 우물에서 멱 감는 걸 보며

소인, 토란밭에 숨어 용두질을 수없이 했습니다요.

삼씨 자루를 베고 방사를 못 보면 큰 병이 납니다요.”

셋째 첩까지 얻어 집에는 발도 들여놓지 않는 허달이 미운터에

어깨가 떡 벌어진 총각이 허리를 껴안으니 안방마님은 저절로 스르르 눈이 감겼다.

허달이 눈을 왕방울 만하게 뜨고 “어! 어! 저것 봐라,

진짜!” 생전 처음 보는 큰 양물에 쉴 줄 모르는 힘찬 절구질에 마님은 까무러쳤다.
칠석이 바지춤을 올리고 개울을 건널 때 마님은 옷 매무새를 고치고

소나무 뒤에 얌전히 앉았다.

“봤지요?” “야, 이거 이상하다.”
허달이 개울을 건너 마누라한테 가서

“부인, 칠석이 놈이 여기 와서 어떻게 했소?” 묻자 돌아오는 말.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해요. 저기 가만히 앉아 있다가 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