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37)<육갑>

우현 띵호와 2021. 10. 10. 23:48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37)<육갑>

열아홉 하녀와 정분난 조 대인 안방마님은 애간장을 태우고

모처럼 안채를 찾은 조 대인은 목석같은 부인 반응에 놀라는데…

천석꾼 부자 조 대인은 승지 벼슬을 팽개치고 낙향해 향리 선비들과 어울리는 게 낙이다. 누구나 조 대인을 하늘처럼 우러러보지만 한가지 흠이라면 여자를 너무 좋아하는 것이다.

대궐 같은 스물네칸 기와집은 안채와 사랑채가 완전히 나눠져

그 사이에 있는 중문을 잠그면 다른 집이 된다.

사랑채에서 조 대인 수발을 드는 춘분이는 열아홉살 꽃다운 하녀다.

안채에 그녀의 방이 있지만 밤이 깊어지면 으레 소반에 술상을 차려

살짝 중문을 열고 사랑채로 가 조 대인 앞에서 술을 따른다.

모두 잠든 밤, 멀리 소쩍새 소리만 간간히 들려오는데 술 한잔 마신 남자가

술잔을 따르는 처녀의 손목을 잡고 품 안으로 당기지 않을 리 있겠는가.

춘분이는 앙탈을 부리지 않는다.

옷고름을 풀고 치마끈을 풀 때, 안채 안방마님은 세상 모르고 잠만 자는 것이 아니다.

속에서 불이나 애간장을 태우지만 운신의 폭은 안방뿐이다.

양반집에 시집와 아이를 넷이나 낳아 큰아들은 벌써 서당에 다니는 열다섯 총각이다.

그런데 그 어미인 대갓집 안방마님이 열아홉살 하녀를 투기해

난리를 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더라도 여자는 여자다.

서른다섯살에 꼬박꼬박 달거리도 하는 무르익은 여자가

겉으로는 태연한 척해도 속은 숯이다.

이튿날, 바깥출입을 하고 저녁나절에야 돌아온 안방마님이 경대 앞에서

머리엔 동백기름을 바르고 얼굴엔 박가분을 발랐다.

며칠 후 옷을 갈아입으러 안방에 들어왔던 조 대인이 깜짝 놀랐다.

그 점잖던 부인이 야한 화장을 하고 초록색 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입고

야릇한 웃음을 흘리는 게 아닌가.

그날 밤 조 대인은 사랑채로 술상을 들고 온 춘분이를 돌려보내고 안방을 찾았다.

도대체 얼마 만인가. 조 대인이 촛불을 끄고 부인의 허리를 잡아 끌자

부인은 그의 손을 뿌리쳤다. 부인이 완강히 거절할수록 조 대인은 숨이 가빠졌다.

옷고름이 뜯어지는 실랑이 끝에 부인이 졌다.

그런데 조 대인이 갖은 방사 재주를 다 부려도 부인은 꼼짝 않고 목석처럼

천정만 바라보고 누워있는 것이다.

풀칠만 하고 주섬주섬 바지춤을 올리고 사랑방으로 돌아간 조 대인은 상념에 젖었다.

‘뱀처럼 차가웠어. 한평생 저런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바람이 났는가.

춘분이를 투기해서? 그럴 리가. 첩살림을 차렸을 때도 가끔 합방을 하면

부인은 불덩어리였는데….’

며칠을 오만가지 생각으로 끙끙 앓던 조 대인은 걱정에 휩싸였을 때마다

찾는 단골 점쟁이에게 갔다.

봉사 점쟁이는 조 대인이 들어서자마자 “부인이 바람이 났네.”

조 대인은 다리가 후들거려 털썩 주저앉았다.

“간부(姦夫)는 누구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점쟁이가 한참 육갑을 뽑아보더니 “콕 집어 누구라고 나오지는 않지만, 하녀의 서방이네!”

점집을 나온 조 대인은 하늘이 노랗고 땅이 울렁거려

잠시 길가 남의 집 처마 밑에 앉았다가 주막으로 들어갔다.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세라 갓을 푹 눌러 쓰고 막걸리 한 호리병을

단숨에 비우자 좀 진정이 되었다.

‘우리 집에 하녀는 다섯, 그중에 서방 있는 년이 셋. 서방 둘은 우리집 밖에 살고,

하나는 우리집 안에서 살지. 우 서방? 아니야, 그 무던하고 착한 사람이

엄청난 일을 저지를 턱이 없어. 집 밖에 사는 서방은 뭘 하는지,

누군지 난 모르고 있지만 그 두놈 가운데 하나일 거야. 맞아,

요즘 들어 바깥출입이 잦더라.’

조 대인은 집으로 돌아와 친척 조카 뻘인 집사를 시켜

부인의 바깥출입을 미행시키고 하녀들의 서방인 소 장수와 짚신 장수의 동정도

살폈지만 헛수고였다. 끙끙 앓던 조 대인이 마침내 안채로 들어가

“부인, 나하고 어디 좀 가야겠소!” “어디를요?” 조 대인은 소리를 꿱 질렀다.

“무조건 따라오시오.”

두사람은 점집으로 갔다. 조 대인은 부인을 점쟁이 앞에 앉혔다.

점쟁이가 육갑을 짚더니 “금년 들어 간부와 딱 한번 통정을 했네!

간부는 하녀의 서방이야!” 조 대인은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부인은 태연하게 “그 간부는 어디 있습니까요?”

점쟁이가 말하길 “부인의 바로 뒤에 앉았네.”

부인이 뒤돌아보며 “주역 속의 육갑에 대인께서는 춘분이의 서방이 되어 있고,

올해 들어 처음으로 대인께서 안방을 찾은 것은 소첩이 하녀의 서방과

간통한 것으로 나왔네요.”

조 대인의 얼굴은 홍당무가 되었고, 점쟁이와 부인은 빙긋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