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36)<돈자랑, 산랑자랑>

우현 띵호와 2021. 10. 10. 23:33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36)<돈자랑, 산랑자랑>

동갑내기 둘도 없는 친구

미화는 돈많은 홀아비에게 순덕은 성실한 농사꾼에게

각자 시집갔는데…

앞집 미화와 뒷집 순덕이는 동갑내기로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둘도 없는 친구다.

그러나 둘은 커가면서 모습도 행동거지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미화는 잽쌌고, 순덕이는 굼떴다.

미화는 말도 잘하고 생글생글 웃는 상이지만,

순덕이는 입이 무거운데다 표정도 무덤덤했다.

미화는 잘 토라졌지만, 순덕이는 화내는 법이 없었다.

열서너살이 되자 미화는 키도 훌쩍 자라

제 고모 박가분도 훔쳐 바르고 치마끈도 바짝 조여 허리는 잘룩하고

엉덩이는 골짜기를 드러내 걸음걸이도 살랑살랑거렸다.

반면에 순덕이는 펑퍼짐한 몸매에 모양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두 집안은 하나같이 빈농이다.

순덕이는 집안일에 팔을 걷어붙여 오뉴월 땡볕에 콩밭을 매고,

보리타작을 할 땐 손수 도리깨질도 한다.

하지만 앞집 미화는 농사철에 손이 모자라 쩔쩔매도 집안일은

좀 거들어도 들일은 절대 하는 법이 없었다.

“야, 이년아. 뒷집 순덕이 본 좀 받아라.” 제 어미가 고함치면

“엄마, 새까맣게 얼굴이 타면 부잣집 도련님이 쳐다나보겠어?”

이렇게 대꾸했다.

미화는 자나 깨나 부잣집에 시집가 팔자를 고쳐보겠다는 게 꿈이다.

혼기가 차올라 두 처녀에게도 매파가 들락날락거리고 혼담이 오가기 시작했다.

늘 붙어 지내던 미화와 순덕이 사이에도 은근히 긴장감이 감돌았다.

매파가 신랑감 하나를 찍어 놓고 미화네 집을 찾았다.

이목구비가 멀쩡하고 덩치가 큰 스물한살 덕배는

강 건너 마을에 사는데 사람이 무던한데다 성실하고 부지런해

알짜 신랑감으로 손색없다는 게 매파의 설명이다.

미화 어미가 귀가 솔깃해졌는데 미화는 조목조목 따지며 절대 반대다.

첫째로 가난하고, 둘째는 농사꾼이며, 셋째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산다는 것이다.

덕배한테 시집가라고 등을 떠밀면 강가에 신발을 벗어놓겠노라

으름장을 놓아 부모들도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

얼마 후 매파가 또 찾아왔다. 신랑감 보따리를 풀어놓는데

저잣거리에서 돈놀이를 하는 부자인데 흠이 두가지 있었다.

나이가 마흔이 넘었고 홀아비라는 것이다.

미화 어미가 펄펄 뛰었지만 미화가 덥석 물었다.

미화 아비도 입을 꾹 다물었다. 매파가 미화 아비에게 귓속말로

신부 값으로 논 세마지기를 제시한 것이다.

그해 가을, 저잣거리가 떠들썩하게 혼례를 치르고

미화는 대궐같은 기와집의 안방마님이 되었다.

이듬해 봄에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미화가 퇴짜 놓은 덕배와 순덕이가 조촐한 혼례를 올리고 가시버시가 되었다.

어느 장날, 순덕이 장에 갔다가 미화를 만나 그녀의 집으로 이끌려 갔다.

초가삼간에 사는 순덕이는 입을 쫙 벌렸다.

스물네칸 기와집 미화의 안방은 팔폭 병풍에 열여덟자 통영 자개농에 먹감 경대…

순덕이는 어머나 소리만 계속했다. “여봐라~ 점심상을 차리렸다.”

미화의 호령에 진수성찬 겸상이 올라왔다.

“순덕아, 돈 별거 아니더라. 서방님이 실컷 써보라고

무쭐한 전대를 던져주기에 비단옷 금비녀 옥팔찌…

사고 싶은 거 다 샀는데도 전대 속의 돈이 반도 안 줄었어.

호호호. 너 신랑 덕배는 장에 간다고 나설 때 돈을 얼마나 주던?”

대접은 잘 받았지만 미화가 건방 떠는 통에 메스꺼움을 참고

그 집을 나온 순덕이는 장을 봐서 집으로 돌아왔다.

장날에도 덕배는 새벽부터 해 떨어질 때까지 돌밭을 일구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순덕이가 사온 탁배기 한호리병과 돼지머리 고기를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먹고 나서 초저녁부터 순덕이 치마끈을 풀었다.

매년 겨울이면 덕배는 논 한마지기를 사든가 밭떼기 하나를 샀고,

순덕이는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았다.

이상한 소문이 귀에 잡혀 덕배 허락을 받고 순덕이 친정에 가서 보니

미화가 소문대로 보따리를 싸들고 앞집 제 친정에 와 있었다.

나이를 먹어 가뭄에 콩 나듯이 미화를 찾던 서방이 꼴에 첩살림을 차려

미화가 첩의 머리채를 잡았다가 서방한테 흠씬 두들겨 맞고

눈텡이가 밤텡이 되어 친정으로 온 것이다.

순덕이 미화에게 한마디했다.
“우리 신랑 첩 있었으면 좋겠네.

부엌에서 밥 짓는 데도 뒤에 와서 치마를 올리고

방걸레질 하는 데도 쓰러뜨리고….

도대체 귀찮아서 못 살겠어.” 몇 년 전 미화가 돈자랑한 메스꺼움을

순덕이는 신랑자랑으로 복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