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42)<황룡(黃龍)>

우현 띵호와 2021. 10. 11. 00:50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42)<황룡(黃龍)>

첫째·둘째 아들과 달리 늦둥이 셋째는 단번에 알성급제

유 대감은 사흘간 잔치 벌이고 정경부인은 몰래 대성통곡

잔치 끝나자 셋째가 앓아눕는데…

판서로 열두해를 봉직하다가 사직을 하고 낙향한 유 대감은 아들 셋을 뒀다.

첫째와 둘째는 둔재라 번번이 과거에 낙방해 유 대감과 정경부인 이씨의

애간장을 태웠는데, 늦게 본 셋째아들은 열일곱 나이에 단번에 알성급제를 했다.

어사화를 쓴 셋째아들이 백마를 타고 고향집으로 금의환향하자

유 대감은 사흘간 잔치를 벌였다.

소 잡고 돼지 잡고 사물패가 흥에 겨워 뛰고 명창이 지화자를 뽑고,

유 대감은 술잔을 받은 족족 들이켰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점은 정경부인 이씨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녀는 뒤뜰 별당에 문을 잠가놓고 이불을 덮어쓴 채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다.

유모 외에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호사다마라고, 3일 잔치가 끝나자 알성급제한 셋째가 앓아누웠다.

잔치 뒤끝의 배탈이려니 했는데 열흘이 지나도, 보름이 지나도

셋째 유장룡은 차도가 없었다.

용하다는 의원을 다 부르고 백약을 써봐도 허사였다.

귀티나게 잘생겼던 얼굴은 눈이 쑥 들어가고 광대뼈가 튀어나왔으며,

삐쩍 마른 손발은 싸늘해졌다. 한양 대궐에서 상경하라는 서찰이 내려왔건만

당사자는 생사의 기로에서 간들거렸다.

“저기 저기 또 온다. 무무문을 잠가~.” 병상에 누운 장룡은 악몽에 시달렸다.

대문을 잠그고 안마당에 횃불을 밝힌 채 하인들이 밤새도록 지켜도

장룡의 악몽은 그칠 줄 몰랐다.

정경부인 이씨가 아들 옆에 앉았다.
“장룡아, 귀신이 어디 있느냐. 정신 좀 차려라.”
“어어어머니, 매일 밤 귀신이 찾아와요. 다리를 절면서….”
“악!” 정경부인 이씨는 펄쩍 뛰었다.
이튿날 아침, 유모가 사색이 되었다.

집안을 샅샅이 뒤져도 정경부인 이씨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정경부인이 행방불명된 일은 살아날 것 같지 않던 장룡이

벌떡 일어나면서 묻혀버렸다.

장룡은 유 대감에게 큰절을 올리고 말잡이가 이끄는 말을 타고 한양으로 올라갔다.

정경부인의 행방은 묘연하기만 했다.

셋째아들을 살리기 위해 삭발을 하고 부처님에게 귀의했다는 점괘를 믿고

방방곡곡 절이란 절은 다 뒤졌지만 허사였다.

그렇게 십년하고도 몇년의 세월이 더 흘렀다.

유 대감이 이승을 하직하고 장룡은 임금 곁을 지키는 부승지까지 올라갔건만

정경부인은 생사조차 알 길이 없었다.

유 대감의 3년상을 탈상하는 날 밤, 늙은 유모가 셋째 상주 장룡과 독대를 했다.

오래도록 얘기를 나누며 장룡은 흐느끼고 늙은 유모도 울었다.

다음날, 아무도 모르게 장룡과 그의 하인, 유모가 산속으로 들어가

숨을 헐떡이며 외송 절벽 위에 다다랐다.

하인과 장룡이 밧줄을 감고 절벽 아래로 내려갔다.

아무도 발 딛지 않은 절벽 아래 넝쿨 속에 하얀 인골(人骨) 한쌍이 누워 있었다.

하나는 남자, 하나는 여자였다. 여자는 정경부인 이씨, 남자는 누구인가?
30년 하고도 몇해 전, 유모만이 알고 있는 사연은 이랬다.

어느날 밤, 정경부인 이씨 몸에 황룡이 치마 속으로 들어와

누런 남근을 정경부인의 옥문 속으로 깊이 찔러 넣는 것이 아닌가.

놀라서 잠을 깬 정경부인은 낙담으로 털썩 주저앉았다.

남편 유 대감이 한양에 가고 집에 없었던 것이다.

황룡과 방사를 치른 꿈을 꾸고 남자의 씨를 받아 자식을 낳으면

큰 인물이 된다는 걸 정경부인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남편은 집에 없었고, 새벽닭이 울면 그 꿈은 허사가 되는 법.

밤은 깊어 삼경에 유모의 부름을 받고 행랑아범이 안방으로 들어갔다.

박박 얽은 곰보에 절름발이인 행랑아범은 난생처음 여자와

그것도 주인집 안방마님과 교접을 했다.

이튿날, 정경부인은 행랑아범을 데리고 산속 외송 절벽 위로 가

절벽 중간 바위틈에서 자란 하수오를 캐오도록 부탁했다.

절벽 위 소나무 가지에 밧줄을 매고 한쪽은 몸에 묶어 절벽을 내려갈 때

정경부인은 은장도를 빼들고 밧줄을 끊었다.

장룡의 꿈에 나타난 장룡의 아버지,

행랑아범은 아들에게 자기의 유골을 수습해달라고 부탁하던 참이었다.

장룡은 씨 다른 형님들 모르게 아버지·어머니의 유골을 모아 한양으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