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수자천(毛遂自薦)
모수라는 사람이 자신을 추천하다.
[털 모(毛/0) 드디어 수(辶/9) 스스로 자(自/0) 천거할 천(艹/13)]
보통 사람들은 아무 데서나 나서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속이 찬 사람이라도 잘난 체 하면
‘제 코도 못 씻는 게 남의 부뚜막 걱정한다’고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꼭 나온다.
그래서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싶더라도 뒤로 빠진 채
남에게 미루는 일이 많아 ‘제가 춤추고 싶어서 동서를
권한다’는 속담이 남았다.
하지만 아주 가끔 ‘제 팔 제가 흔들기’란 속언이 있듯
만류를 무릅쓰고 자기가 앞장서서 일 처리를 나서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이들을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이런 사람이
이룩한 일을 보고는 뒤늦게 평가하는 것이다.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주인에게 스스로 추천한 사람의
원조는 毛遂(모수)라 이런 성어가 전한다.
그는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기원전 403년~221년)
趙(조)나라에 살았던 平原君(평원군)의 식객이었다.
각 제후국에서는 지혜와 술수를 갖춘 빈객들을
수천 명씩 거느렸는데 평원군도 戰國四公子(전국사공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다른 세 사람은 유명한 齊(제)나라의 孟嘗君(맹상군),
魏(위)의 信陵君(신릉군), 楚(초)의 春申君(춘신군)이다.
조나라 惠文王(혜문왕)의 동생이었던 평원군은
이름이 勝(승)으로 세 번이나 재상에 오를 만큼
빈객들의 지혜로 능력을 발휘했다.
당시의 강국 秦(진)나라가 조의 도읍 邯鄲
(한단, 邯은 조나라서울 한, 鄲은 한단 단)을 포위하자
조왕은 평원군을 시켜 楚(초)나라에 합종하도록 명했다.
평원군은 식객들 중에서 문무에 정통한
20명을 골라 데리고 가려 했다.
19명을 쉽게 고르고서 적당한 1명을 찾지 못해 고심할 때
모수라는 사람이 자청했다.
‘한 사람이 부족하면 원컨대 저를 수행원으로 데려가 주십시오
(今少一人 願君卽以遂備員而行矣/
금소일인 원군즉이수비원이행의)’. 그는 문하에 온지
3년이나 되었어도 별다른 재주를 보이지 못한 터라
평원군은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모수는 송곳이라도 주머니에 넣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뛰어날 기회가 없었다며 합류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
囊中之錐(낭중지추)라는 고사도 여기서 나왔다.
‘史記(사기)’ 평원군열전에 실려 있다.
후일담은 어떻게 됐을까.
모수는 다른 19명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할 때
초왕과 직접 담판하여 합종을 성사시켰다.
평원군은 귀국한 뒤 상객으로 대접했다.
이처럼 모수는 자신을 천거하여 어려운 일을 스스로
맡아 나선 격이니 제 팔을 잘 흔들었다.
그러나 낄 때나 빠질 때나 일의 전후도 모르고
나서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차츰 의미가
변질되기도 했으니 조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