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안시(白眼視)
남을 업신여기거나 무시하는 태도로 흘겨봄
[흰 백(白/0) 눈 안(目/6) 볼 시(見/5)]
눈은 보배다.
‘몸이 열이면 눈이 구할’이라는 말이 전하듯
눈이 잘 보이는 사람은 느끼지 못하지만
잠시만 불편해도 그 중요성을 절감한다.
오감 중에서도 視覺(시각)을 앞세우는 것은
보는 것으로 모든 것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눈은 마음의 거울’이라 했다.
온화한 눈빛의 사람에겐 절로 호감이 가고,
미인을 나타내는 성어 중에 눈이 아름다운
明眸皓齒(명모호치, 眸는 눈동자 모),
美目盼兮(미목반혜, 盼은 눈예쁠 반) 등의 말이 따로 있다.
하지만 해를 끼치는 상대에게는 눈이 찌푸려져 쌍심지를 켠다.
상대하기 싫은 위인에게는 흰 눈자위로 흘겨보거나(白眼視)
반대로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는 푸른 눈자위를 나타내는 등
자유자재의 사람이 있었다.
중국 三國時代(삼국시대) 이후 魏晉(위진)의 혼란기에
老莊(노장)의 철학에 심취했던 竹林七賢(죽림칠현) 중의
阮籍(완적, 210~263)이 그 주인공이다.
그도 처음에는 관료로 진출했는데 정변으로
권세를 차지하는 자가 무상하게 바뀌자
환멸을 느껴 산야에 묻혀 살았다.
어머니 장례 때도 슬픈 기색을 보이지 않았고,
칠현 중의 한 사람인 嵇康(혜강, 嵇는 산이름 혜)의 형에게도 무례했다.
唐(당)의 房玄齡(방현령) 등이 엮은 ‘晉書(진서)’의 내용을보자.
‘완적은 예교에 얽매이지 않고 능히 눈동자를 굴려
흰자위를 드러나게 하거나 호의의 푸른빛을 나타낼 수 있었다.
세속의 예의범절에 얽매인 선비를 보면
흰자위를 드러내 흘겨보며 대했다
(阮籍不拘禮敎 能爲靑白眼 見俗禮之士 以白眼對之/
완적불구예교 능위청백안 견속례지사 이백안대지).’
혜강의 형 嵇喜(혜희)가 찾아왔는데도 완적이 흰자위를 드러내자
그만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이 소식을 듣고 혜강이 술과 거문고를 갖고 찾아왔을 때는
반색을 하며 푸른 눈자위를 보였다.
여기에서 싫은 사람에게는 무시해서 흘겨보거나 냉랭하게 대할 때
흰자위로 본다는 말이 나왔다.
이렇게 흘긴 눈으로 사람을 대할 때
상대방도 따뜻한 시선을 보낼 리가 없다.
好惡(호오)가 분명한 것이 장점일수도 있지만
매사에 이렇게 대하다가는 적을 양산한다.
또 이렇게 피아를 갈라놓고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면
사회가 조용할 때가 없다.
靑眼(청안)으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