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남을녀(甲男乙女)
갑이란 남자와 을이란 여자, 평범한 보통사람들
[갑옷 갑(田/0) 사내 남(田/2) 새 을(乙/0) 계집 녀(女/0)]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산다.
그렇고 그런 비슷한 수준의 너와 내가 모여 있는 속에서는
뛰어난 재주의 鶴(학)이 우뚝할 수가 있다.
群鷄一鶴(군계일학)이라 해도
그 학을 둘러싼 여러 닭들이 있어야 존재가 부각된다.
사회를 이루는 여러 보통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 많은 중에서도
우리말에서는 유달리 낮춤말이 많다
‘어중이떠중이’는 여러 방면에서 모여든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사람들을 말하고,
‘멱 진 놈 섬 진 놈’은 짚으로 만든 여러 종류의 그릇으로
곡식을 옮기는 가지각색의 사람이다.
이에 비해 같은 평범한 사람들을 나타내는 데도
한자성어에는 객관적으로 나타내면서도
멸시의 의미는 없어 이채롭다.
가장 많이 쓰이는 甲男乙女(갑남을녀)는 물론이고
張三李四(장삼이사)는 이전 중국에서 가장 흔한 姓氏(성씨)인
장씨의 셋째 아들과 이씨의 넷째 아들을 가리켜 신분도 이름도
나지 않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됐다.
한 사람의 남자와 한 사람의 여자인 匹夫匹婦(필부필부)가
그렇고 땔나무와 물을 긷는 남녀의 樵童汲婦(초동급부),
절구질하는 보통사람 科臼中人(과구중인)도 마찬가지다.
어리석은 남녀라고 특별히 愚夫愚婦(우부우부)가 있으나
실제 어리석다고 하기보다 임금을 따르는 착한 백성이란 뜻이 강하고,
이 말이 미안한 듯 착하고 어진 사람들을 가리키는 보통사람
善男善女(선남선녀)가 따로 있다.
甲(갑)이라는 남자와 乙(을)이라는 여자,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사람 또는 특별히 내세울 것이 없는
보통사람의 대명사 갑남을녀는 앞의 여러 어려운 말보다 쉽고도
많이 사용되지만 언제부터 어디서 시작됐는지는 찾기 어렵다.
다만 六十甲子(육십갑자)의 앞 단위를 이루는
甲乙丙丁(갑을병정) 등의 10가지 天干(천간)에서
갑은 陽(양)이고 을은 陰(음) 등 순서대로 배열돼 있다.
성별로 보아 양이 남자, 을이 여자로 구분되고,
갑과 을은 흔히 불특정한 인물이나 사물을 가리키기도 하므로
갑남과 을녀는 각각 불특정한 남자, 불특정한 여자를 가리키게 됐다고 본다.
우리 고전에서도 이 말의 쓰임새는 적어
承政院日記(승정원일기) 한 곳에서 검색된다.
英祖(영조) 9년 조에 ‘장삼이사나 갑남을녀는
피차의 옳고 그름과 호오의 차이가 분분하게 일치되지 않는다
(張三李四 甲者乙者 彼此是非 好惡同異 紛然不一/
장삼이사 갑자을자 피차시비 호오동이 분연불일)’로
비슷하게 나온다.
모든 천차만별의 사람이 모여 사회를 이루기 때문에
특출한 부와 재주, 권력을 가졌더라도 제멋대로 굴다간
날아가는 세상이다.
자기보다 못하다고 ‘갑질‘을 부리다간 순식간에 매장되니
보통사람, 갑남을녀의 소중함을 알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