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

오 씨와 이 씨의 자식 명판결?

우현 띵호와 2023. 1. 10. 23:27

오 씨와 이 씨의 자식 명판결?

오 씨와 이 씨는 앞뒷집에 사는 데다 동갑이라 어릴 때부터

네 집 내 집이 따로 없이 형제처럼 함께 뒹굴며 자랐다. 
 
둘 다 비슷한 시기에 장가를 들었지만

오 씨 마누라는 가을 무 뽑듯이 아들을 쑥쑥 뽑아내는데

뒷집 이 씨네는 아들이고 딸이고 감감무소식이다.

의원을 찾아 온갖 약을 지어 먹었지만 백약이 무효다. 
 
설이 다가와 두 사람은 대목장을 보러갔다.

오 씨가 아이들 신발도 사고, 아이들이 뚫어놓은 문에

새로 바를 창호지 사는 걸 이 씨는 부럽게 바라봤다. 
 
대목장을 다 본 두 사람은 대폿집에 들러 거하게

뚝배기 잔을 나누고 집으로 돌아왔다. 
 
앞집 오 씨네 아들 셋은 동구 밖까지 나와 아버지 보따리를

나눠들고 집으로 들어가 떠들썩하게 자기 신발을 신어보고

야단인데 뒷집 이 씨네는 적막강산이다. 
 
제수를 부엌에 던진 이 씨는 창호를 손으로 뜯으며
"이놈의 문은 3년이 가도 5년이 가도 구멍 하나 안나니"라고

소리치다 발을 뻗치고 울었다. 
 
이 씨 마누라도 부엌에서 앞치마를 흠씬 적셨다.
설날은 여자들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이다. 
 
그믐날 밤에도 한두 시간 눈을 붙일까말까 한데다

설날은 꼭두새벽부터 차례상 차린다,

세배꾼들 상 차린다, 친척들 술상 차린다 정신이 없다. 
 
설날 저녁, 주막에서는 동네 남정네들의 윷판이 벌어졌다. 
이 씨는 오 씨를 뒷방으로 끌고 가 호젓이 단둘이서 술상을 마주했다. 
이 씨가 오 씨의 손을 두 손으로 덥석 잡고 애원했다. 
"내 청을 뿌리치지 말게." 
"무슨 일인가? 자네를 위한 일이라면 살인 빼고는 무엇이든 하겠네!" 
 
이 씨가 오 씨의 귀에 대고 소곤거리자

오 씨는 화들짝 놀라 손을 저으며 말했다.  
 
"그건 안 돼, 그건 안 되네!" 
이 씨는 울상이 돼 말했다. 
 
"이 사람아! 하루 이틀에 나온 생각이 아닐세.

천지신명과 자네와 나, 이렇게 셋만이 아는 일

내가 불쌍하지도 않은가?" 
 
이 씨는 통사정을 하고 오 씨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연거푸 동동주 석 잔을 들이켰다. 
밤은 깊어 삼경인데 피곤에 절어

이 씨 마누라는 안방에서 곯아 떨어졌다. 
 
안방 문을 열고 슬며시 들어와 옷을 벗고

이 씨 마누라를 껴안은 사람은 이 씨가 아니라 오 씨였다. 
 
확 풍기는 술 냄새에 고개를 돌리고 잠에 취해 고쟁이도

안 벗은 채 이 씨 마누라는 비몽사몽간에 일을 평상시처럼

치루고 말았다. 
 
이 씨 마누라가 다시 깊은 잠 속으로 빠진 걸 보고

오 씨는 슬며시 안방에서 빠져나오고 이 씨가 들어갔다. 
 
모심을 무렵 이 씨 마누라는 입덧을 하더니

추수가 끝나자 달덩이 같은 아들을 낳았다. 
이 씨 마누라는 감격에 겨워 흐느껴 울었다. 
요 녀석이 자라면서 신언서판이 뛰어났다. 
 
오 씨는 틈만 나면 담 너머로 이 씨 아들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오 씨가 어느 날 서당에 들렀더니 훈장은 출타하고

일곱 살 난 이 씨 아들이 훈장을 대신해 학동들에게

소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학동들 사이에 열 살, 열두 살, 열다섯 살인 오 씨 아들 셋도 끼어 있었다. 
어느 날 이 씨와 오 씨가 장에 가는데,

길에서 만난 훈장이 이 씨를 보고 
 
"아들이 천재요. 내년엔 초시를 보도록 합시다." 
오 씨는 속이 뒤집혔다. 
 
며칠 후 오 씨가 이 씨를 데리고 주막에 가서

벌컥벌컥 술을 마시더니 느닷없이 말했다. 
"내 아들, 돌려주게." 
단호하게 쏜 한마디가 비수처럼 이 씨의 가슴에 꽂혔다. 
 
몇날 며칠을 두고 둘은 멱살잡이를 하다가 술잔을 놓고

밤새도록 말다툼을 하다가 마침내 사또 앞까지 가는 송사가 됐다. 
 
오 씨는 천륜을 앞세우고 이 씨는 약조를 앞세우며

서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사또도 선뜻 결정할 수가 없었다. 
사또가 이 씨 아들을 데려오게 했다.

자초지종을 다 얘기하고 나서 사또가 물었다. 
 
"네 생각은 어떠냐?" 
일곱 살 그 녀석은 하늘을 쳐다보고 눈물을 훔치더니 말했다. 
 
"지난봄에 모심기 할 때 앞집에서 모가 모자라,

우리 집 남는 모를 얻어가 심었습니다.

가을 추수할 때 우리 집에서는 앞집에 대고

우리 모를 심어 추수한 나락을 내 놓으라 하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또는 큰소리로 말했다. 
 
"재판 끝! 쾅~" 
 
"오 씨는 듣거라! 앞으로 두 번 다시

그런 헛소리를 할 땐 곤장을 각오하라." 
 
"아버지, 집으로 갑시다.” 
아들의 손을 잡고 집으로 가며 이 씨는 눈물이 앞을 가려

몇 번이나 걸음을 멈췄다. 
정말 기가 막힌 명 판결이네요.

씨앗만 제공했다고 내 곡식이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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