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언

에비타 에바 페론 묘비명에 담긴 명언

우현 띵호와 2023. 9. 17. 17:34

에비타 에바 페론 묘비명에 담긴 명언

에비타는 살아서는 '신데렐라',

죽어서는 '잠자는 미녀'로 아르헨티나

국민들 가슴속에 남아 있는 불멸의 퍼스트레이디로

아르헨티나 대통령 후안 페론의 부인이자 여배우

그리고 정치인이었던 에바 페론의 애칭입니다.

사생아로 태어난 빈민층의 딸로 온갖 역경을 딛고

'퍼스트레이디'가 된 에바 페론은 선동가로,

정치가로 또 빈민을 위한 봉사자로

아르헨티나 국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다가

불과 33세의 젊은 나이에 암으로 사망하며

짧은 생애를 마감함으로써 ​인생 그 자체만으로도

한편의 영화와 같은 삶을 뜨겁게 살다간

드라마틱한 인생사를 보여주면서

대통령제가 생긴 이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퍼스트레이디'로 각인되고 있습니다.

마리아 에바 두아르테 데 페론'이 에바 페론의 정식 이름인데요.

아르헨티나의 시골마을 로스 톨도스에서

사생아로 태어났습니다.

부유한 농장주였던 아버지는 정부였던

그녀의 어머니와 5명의 자식들을 두었으나

법적인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아버지에게서 버림받은 에바 페론의 어린 시절은

가난과 불행의 연속이었습니다.

도시로 나가 화려한 영화배우가 되는 꿈을 키웠던

어린 에바 페론은 학교에서 하는 연극과 연주회 등에서

재능을 발휘하기도 했다는데요.

그녀 나이 15살 무렵 과감히 가출을 감행하여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합니다.

꿈은 컸으나 가진 것 하나 없는 시골 소녀가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성공을 위해 어린 에바가 할 수 있는 일은

유일하게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아름다운 몸'을

내놓는 것이었습니다.

자기의 앞길을 이끌어 줄 것 같은 남자와는

주저 없이 관계를 가졌고 실속이 없으면

가차 없이 떠났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내어던지며 여러 명의 남자 품을

전전하며 삼류 극장의 삼류 배우로 시작했던

에바 페론은 영화배우, 라디오 성우 등으로

영역을 확장해 나갔고 1940년경에는 마침내

어느 정도 유명한 연예인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에바는 라디오 DJ를 하기도 했었는데

슬픈 듯하면서도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고 하는데요.

에바의 이런 목소리는 그녀의 우아한 미모와 함께

커다란 무기가 되어주었습니다.

어릴 적 꿈처럼 유명한 영화배우가 된

에바 페론에게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1944년 아르헨티나 서부 산후안에서 발생한

대지진으로 이재민 구호 기금 모금 행사에서

당시 노동부 장관 후안 페론을 만난 것입니다.

군부 쿠데타에 참여해 중요 인사로 떠오른

육군 대령 출신의 후안 페론은 첫 부인을 잃고

독신이었는데, 아름다운 여배우 에바를 만났으니

그 젊음과 미모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에바 또한 후안 페론이 자신에게 가져다줄 부와

명예를 한순간에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1945년 에바 두아르테는 페론이라는 성을 얻었고,

이어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후안 페론에게

에바 페론은 승리의 마스코트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사람들은 젊고 아름다운 에바를 '에비타'라

부르며 좋아했고, 후안은 아내의 덕을 톡톡히 보면서

선거를 승리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1946년 6월 아르헨티나 29대 대통령이 된

후안 페론의 부인으로서 에바 두아르테 데 페론은

퍼스트 레이디가 되었습니다.

기적과도 같은 신분 상승이었던 것입니다.

'페론주의(Peronism)'는 후안 페론

전 대통령과 그의 아내 에바 페론의

이름에서 나온 말입니다.

페론 대통령 부부가 추진했던 정책과 이념을 뜻하는 말입니다.

흔히 좌파 포퓨리즘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하지만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쉽지 않은 페론 대통령 부부의

'친서민 정책'을 뜻하는 말인데요.

후안 페론은 쿠데타 성공 후 노동부 장관과

복지부 장관을 지내면서 노동자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정책을 폈었고, 임금 인상,

노동자 복지 확대 정책 등으로 국민의 인기를 얻어

대통령이 되었는데요.

집권 후에도 '외국 자본 배제', '산업 국유화' 그리고

'임금 인상을 통한 노동자 수입 증대와 복지 확대' 등의

친서민 정책으로 노동자들의 탄탄한 지지를 받았습니다.

퍼스트레이디 에바 페론은 소프트파워로

그런 대통령 남편의 권력을 뒷받침했는데요.

대통령 후안 페론이 정치에 초점을 맞췄다면,

영부인 에바 페론은 '헐벗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미디어를 지배했고,

노조와 호의적인 관계를 맺고 유지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적극 지원하며 남편의 통치를 도운 것입니다.

대통령 선거전에서 이미 확신에 찬 연설과

미모로 대중들의 지지를 이끌어냈고

퍼스트레이디가 되어서는 '에바 페론 재단'을 설립하여

빈곤층을 지원하고 노동운동을 열정적으로 추진했습니다.

'에바 페론 재단'을 통해 자선 사업을 펼치며

병원 12곳과 학교 1,000여 개 그리고 수많은

양로원을 설립하였습니다.

또한 여성인권운동을 펼쳐

여성의 투표권 보장을 얻어내기도 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프랑스로부터 식량 배급 약속을 받아내고

스페인에서의 아동 구호 활동을 벌이고,

노동 단체와 기업 등의 헌금으로 설립한

'에바 페론 재단'으로 끝없는 자선 사업을 펼치면서

아르헨티나 민중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었고

어느새 노동자와 빈민들은 그런 에바 페론을

'성녀'로 떠받들고 있었습니다.

'페론주의'를 앞세운 수많은 개혁들은 좋은 평가를

내릴 만한 것들도 적지 않았으나

대부분은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한 것일 뿐

실질적으로는 나라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것들이 많았습니다.

겉으로는 노동자와 여성 등의 약자들을 위한

정책처럼 보였지만 실제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허세와 기만이 숨어 있었습니다.

"대중은 생각하지 않는다. 대중은 느낌에

본능적으로 반응한다."라고 말했던

에바 페론은 겉으로는 민중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엘리트주의자였던 것입니다.

폭발적인 인기의 이면에는 페론 대통령 부부의

실정을 비판하는 세력에 대한 탄압이 감춰져 있었고

비판세력이 제거된 아르헨티나는

정치적으로 경직되었고 후안 페론과 군부를 중심으로

하는 독재 속에서 부정부패가 들끓고 있었습니다.

19세기 말의 아르헨티나는 미국 GDP의 80%에 달하는

경제대국이었고 한때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곡물을

생산하는 국가였습니다.

그러나 후안 페론 집권기 이후 약 25년에 걸쳐

아르헨티나는 평균 1%대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며

침체기에 빠져들었습니다.

페론 부부의 인기 영합주의와 무분별한

복지정책들로 국고가 탕진되면서 경제의 성장

동력을 상실했던 것입니다.

빈부 격차를 줄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탄탄한 산업 기반을 닦거나 생산성을 끌어올리지는

못했던 것이지요.

'페론주의'의 모순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던 1950년

에바 페론은 자궁암 진단을 받게 됩니다.

다음 해 재선에 도전한 후안 페론은 에바 페론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합니다.

논란 끝에 군부의 압력으로 부통령 후보 자리에서

물러난 에바 페론은 병상에서 남편에게 표를 던졌고

후안 페론은 재선에 성공합니다.

다시 대통령이 된 후안 페론은 에비타 에바 페론을

'영적 지도자'의 자리에까지 올려놓았지만

그녀의 병은 낫지 못했고

1952년 7월 26일 오후 8시 25분, 에바 페론은

33세의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커다란 슬픔에 잠겼습니다.

국정은 중단되었고, 열흘 동안 조기가 게양되었습니다.

에비타 에바 페론의 시신은 방부 처리된 미라 상태로

대중에게 공개되었습니다.

'죽음의 예술'로 불릴 만큼 뛰어난 솜씨로 방부 처리된

에비타 미라는 그녀가 여전히 살아 있는 듯한 인상이었습니다.

아르헨티나 대중들은 에바 페론의 죽음을

광적으로 애도했으며 한 달간의 장례식은

국민들이 바치는 꽃들로 뒤덮였습니다.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

나는 그대를 떠나지 않아요....

(Don't cry for me Argentina.

The truth is I never left you ....)"

뮤지컬 '에비타'에서 여주인공 에비타가 부르는 노래입니다.

에바페론의 묘비명이 된 아마도 살아 있었다면

에비타가 남겼을 애절한 사랑의 노래일 것입니다.

뮤지컬 '에비타'의 여주인공은 바로

아르헨티나의 퍼스트레이디 에바 페론입니다.

에비타는 에바 페론의 애칭입니다.

 

 

'명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동을 주는 명언  (0) 2023.11.05
불기자심(不欺自心  (0) 2023.10.26
알리바바 마윈의 어록  (0) 2023.08.19
가슴속 깊이 새겨두어야 할 名言  (0) 2023.08.10
역주행의 비밀  (0) 2023.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