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문정지대소경중(問鼎之大小輕重)

우현 띵호와 2023. 12. 4. 17:40

문정지대소경중(問鼎之大小輕重)  

의 크기와 무게를 묻다,

큰 뜻의 속셈을 드러내다. 
 
[물을 문(口/8) 솥 정(鼎/0) 갈 지(丿/3) 큰 대(大/0)

작을 소(小/0) 가벼울 경(車/7) 무거울 중(車/2) 
밥을 짓거나 국을 끓이는 솥 중에서

밑에 발이 세 개 달린 것이 鼎(정)이다.  
 
솥발 세 개가 나란히 서 있는 모양은

셋이 가장 안정된 세력이라고 鼎立(정립), 鼎足(정족)
이라는 말로 남았다.  
 
고대 중국에서 정은 천하를 상징화는 보물로 여겼다.  
夏(하)의 시조 禹王(우왕)이 아홉 제후국에서

바친 청동을 녹여 九鼎(구정)을 만들었다. 
 
이것을 가진 제왕이 명실상부하게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구정은 성군만이 지닐 수 있었고

혼란스런 때는 자취를 감추기도 하는 등

행방은 모든 왕의 관심사가 됐다.  
 
솥의 크고 작음과 가볍고 무거움을 묻는다는 이 말은

그래서 천하를 지배하여 제왕이 될 속셈을 가지고 있거나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상황을 떠보는 것을 비유하게 됐다.  
 
구정은 ‘史記(사기)’와 ‘戰國策(전국책)’ 등

여러 사서에 등장하고, ‘左氏傳(좌씨전)’에
春秋五覇(춘추오패) 중의 한 사람인
楚莊王(초장왕, 재위 기원전 614~591) 이야기가 흥미를 끈다.  
 
야망이 컸던 장왕은 북방의 戎族(융족)을 토벌한 뒤

당시의 천자국인 周(주)나라 국경에까지 군사를 배치하여

여차하면 침범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아직 정통성은 주나라에 있었기 때문에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주나라 定王(정왕)은 장왕에 주눅 들어

대부인 王孫滿(왕손만)을 사절로 보내 회유했다. 
 
장왕은 평소에 궁금했던 구정에 대해

크기는 얼마며 무게는 어떤지 물었다 
 
(楚子問鼎之大小 輕重焉/
초자문정지대소 경중언).  
 
왕손만은 우왕이 주조한 구정이 폭군桀紂(걸주)를 피해

주나라에서 700년을 머물렀다며 대소경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군왕의 덕에 의해

소유가 결정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설명을 잇는다. 
 
‘천자의 덕이 있으면 작은 솥이라도 무겁게 버틸 수 있고,

덕이 흐려지면 큰 솥이라도 가볍게 옮길 수 있습니다 
 
(德之休明 雖小重也 其姦回昏亂 雖大輕也/
덕지휴명 수소중야 기간회혼란 수대경야).’ 
 
힘으로 솥을 옮긴다면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 된다는

이야기에 장왕은 야욕을 접었다.
宣公(선공) 3년조에 실려 있다.  
 
구정의 후일담도 신비감을 준다. 戰國時代
(전국시대)의 강국 秦(진)나라가 세력을 떨칠 때

武王(무왕, 재위 기원전 311~307)이 구정 한 개를 들다

다리가 부러져 사망했다. 
 
주나라가 망한 뒤 구정을 옮기다 泗水(사수)에 빠뜨렸는데

秦始皇(진시황)이 아무리 수색해도 찾지 못했고

그래서 통일제국이 15년 만에 단명으로 끝났다.  
 
모두 덕을 앞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라 한다.

남의 이야기지만 큰 뜻을 품고 지도자에

오르려는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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