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정월 대보름.

우현 띵호와 2024. 2. 24. 23:29

정월 대보름.    

정월대보름 아침에 눈을 뜨는 대로
밤, 호두, 은행 등 부럼을 깨어 물으면
1년 동안 부스럼이 나지 않고
이가 단단해진다고 하지요.

부럼은 보통 
본인의 나이 수대로 깨물며
한 번에 깨물어야 효과가 좋다고 합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소지왕 때의 이야기가 있다.
서기 488년 정월 보름날 소지왕이 행차에 나설 때이다.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더니 쥐가 말했다.

“이 까마귀 가는 곳을 살피세요.”
이에 소지왕은 장수를 시켜 따라가게 했다.
장수는 동남산 양피촌 못가에 이르러 

그만 까마귀를 놓쳐버렸다.

이때 갑자기 못 가운데서 풀옷을 입은 

한 노인이 봉투를 들고 나타났다.

“장수께서는 이 글을 왕에게 전하시오”
노인은 글이 써진 봉투를 건넨 뒤 물속으로 사라졌다.
왕이 봉투를 받아보자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라고 젹혀 있다.

이에 왕은 고민을 했다.
그러자 신하는 
“두 사람은 평민이고 한 사람은 왕을 가리킴이오니 

열어보시는 것이 어떨까 하옵니다.” 라고 이야기했다.

이에 왕은 신하의 조언에 따라 봉투를 뜯었다.
봉투에는 “사금갑(射琴匣) 즉 거문고갑을 쏘아라”라고

적혀있었다.

이에 왕은 대궐로 가서 왕비 침실에 세워둔 

거문고갑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그러자 거문고갑 속에

왕실에서 불공을 보살피는 승려가 죽었다.
알고보니 승려는 왕비와 짜고 소지왕을 해치려고 한 것.

왕비는 곧 사형되었고 

왕은 노인이 건네준 봉투 덕분에 죽음을 면하게 됐다.

이에 왕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까마귀를 

기리기 위해 정월대보름을 오기일(烏忌日) 

이라 하고 검은색 찰밥으로 제사를 지냈다.

이로 인해 정월대보름과 약밥이 유래됐다.

또 경주시 남산동에 지금도 있는 연못은 

글이 적힌 봉투가 나온 곳이라 해서 

서출지(書出池)라 부른다.

※ 경주의 서출지
소지왕 10년은 신라에 불교가 공인되기 40년 전이다.
신라 눌지왕 시대에 묵호자, 

소지왕 시대 아도 스님이 불교전파에 실패했다.
법흥왕 15년 이차돈의 순교로 

비로소 신라에 불교가 공인된 것이다.

당시 신라 귀족들은 민속신앙 특히 조상을 섬기는

신앙이 강해 쉽게 불교를 인정하지 않았다.

서출지의 전설은 전통적 민속신앙속에 

새로운 불교문화가 전래되는 과정에 

빚어지는 갈등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갑진년 한해의 출발을 알리고 농사일도 시작되니
이제 정녕 봄만 기다리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아홉가지 나물에 오곡밥을 먹고
귀밝이 술도 한잔마시고

마음속에 떠오를 둥근 보름달을 기약하며 

간절한 소원을 빌어 보는 하루 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