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화(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35)점괘

우현 띵호와 2021. 9. 22. 02:56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34)점괘

과거시험 세번이나 떨어진 ‘권오걸’
한양 가는길에 미친 점쟁이 만나…
외수염 잉어 살려주면 합격한다며
“자네 색시는 저 아이야”하고
주모 등에 업힌 아이를 가리키는데

예천 땅 용궁에서 거지꼴을 한 미친 점쟁이가 오늘도 킬킬거리며

저잣거리를 돌다가 허름한 국밥집에 들어갔다.

미친 점쟁이는 혼자 국밥을 먹던 말끔한 젊은이 앞에 서더니

“세번이나 떨어지고 또 끌끌” 하고 중얼거렸다.

얼굴이 박박 얽은 주모가 아기를 업은 채 “나가! 재수 없게” 하며

부지깽이로 내쫓으려는 걸 젊은이가 막아섰다.

“이분 밥값은 내가 내리다.”

젊은이는 점쟁이에게 술 한잔을 따르며 물었다.

“내가 과거에서 세번이나 떨어진 걸 어찌 알았수?”

점쟁이가 킬킬거리며 말을 받았다. “이마에 쓰여 있어.”

젊은이는 저도 모르게 이마를 만지며 속으로 내뱉었다.

‘안동에 사는 나를 한번도 본 적이 없을 텐데!’

젊은이는 더 바짝 다가앉아 물었다. “도사님, 그럼 이번에는…?”

점쟁이가 답했다. “외수염 잉어를 제 집으로 돌려보내줘.”

점쟁이는 술 한잔을 들이켜더니 또 다시 킬킬거리며 말했다.

“자네 색시는 저 아이야.” 그러면서 주모 등에 업힌

꾀죄죄한 아기를 가리키는 것이다.

“외수염 잉어….” 젊은이 권오걸은 국밥집을 나와

문경새재를 넘으면서 중얼거렸다.

그러다 하룻밤 묵고 가려고 남한강 나루터 주막집에 들어가 평상에 털썩 앉았다.

이때 손님 중 하나가 “오늘 저녁은 뭐여?” 하고 묻자

주모가 “잉어매운탕이구먼요” 하는 게 아닌가.

권오걸은 후다닥 부엌으로 뛰어들어갔다.

도마 위의 잉어를 내려치려는 주모 남편 손목을 가까스로 붙잡고는,

한쪽 수염이 떨어져나간 채 아직도 벌름벌름 숨을 쉬는 커다란 잉어를

다짜고짜 얼싸안고 내달려 남한강에 던져버렸다.

주막집으로 돌아온 권오걸은 술을 사서 손님들을 달래고 잉어 값을

두둑이 줘 주모를 다독였다.

한양으로 올라간 권오걸은 마침내 알성급제를 했다.

어사화를 휘날리며 고향으로 내려오던 권오걸은 걸음을 멈췄다.

미친 점쟁이의 마지막 점괘가 떠올랐다.

‘그 꾀죄죄한 여식이 나의 배필이 된다고?

그 천한 주모가 나의 장모가 된다고?’

어둠살이 내리는 예천 땅 용궁의 국밥집.

가마솥의 국은 설설 끓고 주모는 마당에서 파를 다듬고

아기는 부엌 아궁이 앞에 앉아 놀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부엌 뒷문으로 시커먼 남정네가 들어와 아기를 가마솥에

던져넣고는 자지러지는 비명을 뒤로한 채 사라졌다.

15년이 흘렀다.

상주 부사로 부임한 권오걸은 토호들이 마련한 연회에 참석했다.

권 부사를 시중들 기생은 이름이 부용이라 했다.

권 부사는 부용을 보자마자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인가” 중얼거리고,

부용도 권 부사 옆에 앉자 온몸이 불덩이가 되었다.

이방이 권 부사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부용이는 아직 머리를 올리지 않았습지요.”

주연이 파한 후 권 부사와 부용은 금침을 깔아놓은 뒷방으로 갔다.

그런데 부용이 갑자기

“나으리, 소첩은 나으리 품에 안길 수가 없습니다” 하더니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게 아닌가.

권 부사도한숨을 내뿜으며 말을 받았다.

“밤새 술잔이나 나누자꾸나.”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권 부사가 먼저 신세타령을 했다.

“내 나이 열아홉에 알성급제해 안동이 떠들썩하게 장가를 갔는데

첫날밤에 새신부가 급살을 맞더니 일년 반 만에 새장가를 가자마자

또 첫날밤에….” 권 부사는 방구들이 꺼질듯 한숨을 토하더니 부용에게 물었다.

“너는 무슨 사연이 있느냐?” “젖가슴 아래로 심한 화상을 입었습니다.”

“어쩌다?” “소첩의 고향은 예천 용궁입니다.

어머님이 국밥집을 했는데 소첩이 세살 때 어떤 남자가….”

권 부사는 촛불을 끄고 부용을 안았다.

“오늘 밤 나와 몸을 섞어도 너는 절대 죽지 않는다.”

“나으리 품에 안기면 죽어도 좋습니다.”

권 부사는 부용의 옷고름을 풀었다. 폭풍이 몰아쳤다.

부용은 죽지 않았다.

부용은 권 부사의 정실이 되어 아들딸 낳고 잘 살았다.